우리나라 보물 관덕정 속 목벽화 행방은? [취재후]

강인희 2024. 6. 2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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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자 제주지역 한 일간지의 ‘관덕정 목벽화 오리무중’ 관련 기사 일부 발췌


우리나라 보물 관덕정…목벽화 원본이 사라졌다고?

지난달 15일 제주의 한 일간지에 관덕정 내부에 있는 '목벽화 원본이 오리무중'이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관덕정은 조선 세종 30년(1448년) 안무사 신숙청이 병사의 훈련과 무예수련장으로 창건했고, 우리나라 보물로 지정됐습니다.

관덕정 내부 기둥 위에 8점의 목벽화가 있는데, 현재 있는 건 모사본이고 원본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겁니다.

관덕정이 오랜 세월 제주도민과 애환을 함께해 온 만큼, 목벽화의 행방을 취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물 제주 관덕정 외경


관덕정 마지막 복원, 18년 전으로 거슬러 가다

관덕정은 일제강점기인 1924년 지붕 처마가 잘려 나가는 등 원형 훼손으로 보수만 10차례 진행됐습니다

마지막 복원은 2003년부터 2006년 사이 사업비 27억 원을 들여 대대적으로 진행됐고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복원된 목벽화 8점은 기존 목벽화 위에 새로 그린 것일까?

옛 목벽화를 떼어 냈다면 과연 어디 있는 것일까?

취재진은 우선 KBS 제주방송총국 자료실에 있는 과거 관덕정 복원 영상에서부터, 당시 문화재청의 수리 기록까지 찾아 나섰습니다


하지만 기존 목벽화가 희미해졌다거나 옛 목벽화를 복원했다라고만 돼 있을 뿐, 기존 것을 떼어 냈는지와 보관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2006년 관덕정 복원 당시 문화재청 수리보고서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40년 역사의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의 수장고도 확인해 보기로 했습니다.

비공개 장소인 수장고 취재를 위해 협조 공문을 보내고, 일정을 어렵게 조율했습니다.

취재진은 굳게 닫혔던 수장고에 들어가 수장고 입구 문 오른쪽 벽 한편에 가지런히 보관돼 있는 관덕정 목벽화들 확인했습니다.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수장고에 세로로 세워져 보관 중인 목벽화


그런데 원본이 아니었습니다.

부용식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연구과장은 "수장고 속 목벽화는 18년 전 떼어낸 목벽화 원본이 아니"라며 "1976년과 1994년 국가 사업으로 모사 사업이 이뤄졌고 이는 당시 제작한 모사본으로 제주시의 요청으로 모사본 열넉 점과 재현도를 보관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18년 전 문화재청 담당자를 수소문했고, 서면 질의서를 보낸지 일주일만인 지난달 27일에 "2006년 색바랜 목벽화는 떼어냈고 제주시의 요청으로 이관했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의 실마리도 더해졌습니다.

"제주돌문화공원 수장고에도 나무 부재들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렵게 수장고 밖으로 꺼낸 색바랜 나무 부재에는 '별창방 남', '별창방 북' 이라고만 기재돼 있었습니다.

단청만 남아 있어 그 용도를 알기 쉽지 않아, 2006년 관덕정을 복원하며 떼어냈다는 목벽화의 사진과 비교해 봤습니다.

비교적 선명한 단청과 보일 듯 말 듯 한 그림의 흔적은 수리보고서 사진 속 목벽화였습니다.

(위) 2006년 관덕정 복원 직전 목벽화 모습 (아래) 돌문화공원 수장고 보관 관덕정 목벽화


제주돌문화공원 관계자는 "2006년에 제주시가 관덕정을 복원하며 나온 나무 부재들에 대해 위탁을 요청해 보관하고 있다"며 "돌문화공원 측 역시, 관덕정 부재로만 알았지 목벽화인 줄은 알지 못했다고"설명했습니다.

2016년 관덕정 관리가 제주시에서 제주도세계유산본부로 이관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보물 관덕정을 수리하며 나온 목부재들의 상세한 용도와 보관 기록까지는 유산본부로 넘어오지 못했던 겁니다 .

제주도세계유산본부 측은 "언론사에서 목벽화 행방에 의문을 제기하자, 찾기 시작했다."면서 "기록들이 정확하게 남아 있지 않아서 찾는 과정이 굉장히 힘들었고, 나무 부재들이 크기도 크고 다 뒤져야 해 어려움이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행히, 취재 열이틀만에 용도도 모른 채 스러져 갈 뻔한 수리보고서 사진 속 관덕정 목벽화의 행방은 확인됐습니다.

보물 속 보물…관덕정 목벽화의 가치는?

행방을 찾느라 한바탕 홍역을 치렀던 관덕정 목벽화, 과연 어떤 가치를 담고 있을까요?

모두 8점으로 1963년 우리나라 보물로 지정된 관덕정의 남북방향 대들보 아래 목부재 양면에 그려졌습니다.

제주 관덕정 목벽화 구성과 위치도


2006년 보수 후 관덕정 목벽화 ‘적벽대첩도’ -남측(안)


삼국지연의의 대표 전투인 적벽대전을 묘사한 그림.

누가 그렸는지 모르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제주의 바다를 지키자는 뜻이 담겼을 거란 해석입니다.

2006년 보수 후 관덕정 목벽화 ‘취과양주귤만거’ -남측(밖)


술에 취해 가마를 타고 가는 당나라의 인기 시인 두보의 이야기도 벽화로 표현됐습니다.

여인들이 애정을 표현하기 위해 던지는 것, 바로 노란 귤입니다.

보기 드물게 귤을 소재로 한 중국의 옛 이야기를 찾아 그린 것은, 제주지역 특색을 살리려고 한 취지가 엿보인다는 분석입니다.

‘상산사호’ 남측(밖) ‘십장생도’ 북측(밖) ‘수렵도’ 북측(안)


이 밖에도 진시황 때 난리를 피해 태평한 나날을 보냈다는 4명의 노인 이야기와 십장생도, 수렵도까지 생생히 표현됐습니다.

이재호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누가 그렸는지 알 수 없지만 그림의 양식은 조선 말기로 추정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조선 시대 관아 건물의 옛 부재도 상당히 귀하고, 관아 건물에 직접 주제를 가지고 그림을 그린 단청 벽화는 우리나라에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가치가 특별하고 생각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관덕정 목벽화 원본…"상태·활용방안 실태조사 실시"

KBS 취재로 18년 만에 행방이 확인된 관덕정 목벽화 원본에 대한 실태조사가 시작됩니다.
제주도세계유산본부는 최근 국가유산청 산하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에 이번 관덕정 목벽화 원본에 대한 상태 측정과 보존 처리 방안, 활용 계획 등 전반적인 조사를 의뢰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조사가 관덕정 목벽화 원본뿐 아니라 관덕정 복원 과정에서 나온 옛 처마와 대들보,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수장고에 따로 보관된 목벽화 모사본 등을 한데 모아 보관하고 그 가치도 되새기는 계기가 될지 주목됩니다.

선조들의 숨결이 깃든 문화유산과 유물을 미래 세대에 온전히 전승해야 한다는 것.

행방조차 찾기 어려웠던 관덕정 목벽화가 주는 교훈입니다.

촬영기자 고성호 부수홍 강재윤
그래픽 서경환 고준용 조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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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희 기자 (inhe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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