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미래세대 ‘원고’가 되다 [이승원의 기후 colse-up]

2024. 6. 21.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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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을 멸종시킨 운석처럼 인류는 엄청난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기후 문제의 경우, 우리는 공룡이 아닙니다. 우리가 바로 그 운석이죠.... 우리는 지구와 러시안 룰렛을 하고 있습니다.”(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6월 5일 ‘세계 환경의날’ 연설 중)

#. 12개월 연속 ‘역대 가장 더운 달’

지난 6월 5일은 충격적인 사실이 재확인된 날이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세계 환경의 날’ 연설을 하면서 또다시 목소리를 높이던 날이기도 하다.

이날 유럽연합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C3S)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 세계 평균 기온이 역대 5월 중 가장 높았고 지구 표면 평균 기온은 섭씨 15.9도로 조사됐다. 2015년 ‘파리 협정’을 통해 국제사회는 지구 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로 제한하자고 약속했지만 실상은 산업화 이전(1850~1900년) 5월 평균 기온과 비교해 1.52도 높았다. 특히 지난해 6월부터 12개월 연속 ‘역대 가장 더운 달’을 매달 기록 중이다.

구테흐스 총장은 코페르니쿠스 보고서를 언급하며 “지난 1년간 지구가 우리에게 무엇을 전달하려고 했는지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015년만 해도 기후시스템이 불안정해질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지만 지금은 “기후 지옥으로 가는 고속도로에 탈출구가 필요한 상황”이 됐다면서, “시급히 화석연료 생산 및 사용을 30%로 줄여야 하고 전세계 화석연료 회사의 광고를 금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세계기상기구(WMO)가 발표한 ‘전 지구 1년~10년 기후 업데이트 보고서’ 내용도 암울하다. 지난해 지구 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1.45도 가량 높아 역대 1위를 기록했다.

세계기상기구는 향후 5년(2024-2028) 동안 ▷매년 지구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1.1~1.9도 높아 질 것이며 ▷적어도 한 해의 평균 기온이 1.5도 이상 일시적으로 초과할 가능성 80% ▷가장 더웠던 2023년보다 더 더울 시기가 나타날 가능성 86% ▷5년 전체의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도를 넘을 가능성 47% 등을 언급했다. 파리협정이 무색하게 향후 5년 안에 1.5도 목표는 매우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지구가 제 기능을 상실해왔고 그 원죄는 인류가 갖고 있다는 문제 의식은 사실 하루이틀 된 얘기가 아니다. 그럼에도 유엔 사무총장의 절규는 회의장 안에서 잠시 주목받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세계 곳곳에서 소송전이 벌어지고 있다. 행정부와 입법부를 더이상 신뢰할 수도 없고, 미래에 희망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원고’가 돼 지루한 법적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린란드 일루리사트 남쪽에서 2021년 9월 17일 찍힌 빙하의 가장자리 모습 [로이터]

#. 한국 기후 소송... 아시아 최초

유엔환경계획(UNEP)이 2023년 발표한 기후소송 보고서에 따르면 2018~2023년 제기된 기후소송은 전 세계적으로 2180건에 달한다. 미국이 총 1522건으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이어 독일(38건), 브라질(30건), 인도네시아(12건) 등이 뒤를 이었다.

당장 2024년은 기후 문제에 있어서 대한민국에서도 중요한 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2020년 3월 19명의 청소년들은 국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기본권을 지키지 못한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했고 (무려 4년이나 지난) 올해 4월 23일, 5월 21일 1-2차 공개변론이 진행됐다. 참고로 헌재는 2020년 이 ‘청소년 기후소송’을 비롯해 영유아 등 어린이들의 ‘아기 기후소송’, ‘시민 기후소송’ 등 4개 사건을 병합 심리 중이다. 헌법상 환경권, 생명권, 건강권,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이다.

헤럴드경제가 꼼꼼히 정리한 4월 23일 1차 공개변론에 따르면 청구인측은 “우리나라의 배출 책임과 감축역량을 고려하면 (정부의 목표는) 부합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온실가스 감축 필요성을 인지하고 처음으로 목표를 세운 2010년을 기준으로 하면 2030년 배출량은 27%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반론에 나선 정부 측은 “하나의 수치를 기준으로 시행령의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위헌이라고 보는 것은 파리협정의 기본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 (중략) 경제 구조 역시 제조업 중심”이라며 즉각적 감축이 어렵다고 항변했다.

원고 측 소송을 진행 중인 윤세종 변호사는 “한국에서 원고 측에 유리한 판례가 나온다면 기후 소송을 제기하는 추세가 확산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위스 환경단체 ‘기후보호를 위한 노인(Klima Seniorinnen)’ 회원들이 지난 4월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기후 소송에서 승소한 뒤 환호하며 유럽인권재판소(ECHR)를 빠져나오고 있다. 64세 이상 스위스 여성 2400여명으로 구성된 이 단체는 2020년 11월 “스위스 정부가 온실가스를 감축하지 않아 자신들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했다. 재판부는 이 단체의 주장을 받아들여 정부에 3개월 이내에 8만유로(약 1억원)의 배상금 지급을 명령했다. [AFP]

#. 전세계 2200여건 ‘소송 진행 중’

기후 소송은 생존 싸움이다. 세대간 싸움이기도 하다. 기성 세대가 훼손시킨 지구를 어떻게든 되살려 후대들은 살아가야만 한다. 전세계적으로 소송이 이어지는 이유다. 몇몇 사례들을 보면 우리에게도 큰 교훈이 된다.

[사례1. 스위스]

지난 4월 일군의 할머니들이 벅찬 미소를 보이며 유럽인권재판소(ECHR)를 빠져나왔다. 스위스 환경단체 ‘기후 보호를 위한 노인(Klima Seniorinnen)’ 회원인 이들이 이처럼 기뻐한 이유는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기후 소송’에서 승소했기 때문이었다. 64세 이상 스위스 여성 약 2400명으로 구성된 이 환경단체는 2020년 11월 ‘스위스 정부가 온실가스를 감축하지 않아 자신들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유럽인권재판소에 소송을 냈고, 재판부는 “스위스 정부가 국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2000명이 넘는 스위스 여성 노인들의 인권을 명백히 침해하는 것”이라며 이 단체에 3개월 이내에 8만 유로(약 1억원) 배상금 지급을 명령했다. 과거 세 차례나 스위스 국내에서 제기했던 소송이 기각된 바 있어서 이번 승소의 의미는 더 컸다.

이들은 노인 여성들이 폭염에 특히 취약하다는 점도 강조했는데 숫자로도 확인됐다. 2023년 7월 바르셀로나 세계보건연구소가 ‘네이처 메디신’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2022년 유럽 내 극심한 폭염으로 6만1000명 이상이 사망했고 절반 이상이 노인이었다. 이 중에서도 가장 고통스러운 여름을 겪은 집단은 여성 노인으로 분석됐고 실제 사망자는 남성보다 여성이 56% 많았다.

영국 가디언은 관련 내용을 전하며 “유럽인권재판소의 획기적인 판결로 세계 수많은 법원에서 기후소송 사건이 봇물 터지듯 길을 열어 주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례2. 독일 ]

2021년 4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청소년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의미있는 판결을 내렸다. 독일 연방기후보호법이 2030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하지 않아 ‘미래 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일부 위헌 판결을 내린 것이다. 헌재는 “인간 생활의 거의 모든 측면이 온실가스 배출을 포함하기 때문에 배출량을 줄이는 것은 모든 유형의 자유에 영향을 준다. 감축 부담을 2030년 이후로 넘기는 것은 젊은 세대들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변호인단은 “헌재가 독일 정부의 따귀를 소리 나게 때렸다”며 환호했다. 이처럼 사법부 판단이 내려지자 독일 연방정부와 의회도 신속히 움직였다. 탄소 감축 목표를 1990년 대비 55%에서 65%로 상향 조정하고 2040년 40%까지 감축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법을 개정해 다음해인 2022년 전격 통과시켰다.

[사례3. 미국]

미국 몬태나주의 청소년들이 주를 상대로 건 소송에서 원고측이 지난해 8월 승소하면서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미 역사상 첫 헌법상 기후소송으로 불리는 ‘헬드 대 몬태나주(Held v. State of Montana)’의 원고는 5세부터 22세 사이 젊은 세대들이다. 청소년 16명은 주 정부가 석탄 및 천연가스 생산 프로젝트 등을 허용함으로써 기후 위기를 악화시켰다면서 가족 목장을 위협하는 기상이변, 천식을 악화시키는 산불 연기, 원주민의 전통을 방해하는 자연 파괴 등 자신들이 목격한 피해를 직접 증언했다. 캐시 실리 몬태나주 지방법원 판사는 “원고들은 깨끗하고 건강한 환경에 대한 근본적 헌법적 권리를 갖고 있다”며 “주 정부의 지속적인 화석 연료 개발은 깨끗하고 건강한 환경에 대한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주 헌법의 조항을 위반했다”고 판결했다.

당시 소송을 맡았던 비영리 단체(Our Children‘s Trust)의 줄리아 올슨은 “오늘 판결은 인간이 초래한 기후 혼란의 파괴적인 영향으로부터 지구를 구하려는 이 세대의 노력에 전환점을 마련한 획기적인 판결”이라며 평가했다.

해당 소송이 더 부각된 이유는 몬태나주가 에너지의 3분의 1을 석탄 연소를 통해 얻는, 대표적인 석탄·가스 생산 주이기 때문이다. 이번 재판을 ‘획기적인 소송’이라며 주목한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몬태나주에는 5000개의 가스정, 4000개의 유정을 비롯해 4개의 정유소, 6개의 탄광이 있다. 수 십년간 화석연료에 크게 의존해온 몬태나주가 이제는 주 정책을 마련할 때 기후 문제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이 판결은 하와이, 유타 등에서 진행중인 소송에도 상당히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사례 4. 네덜란드]

기후 소송의 시작은 사실 네덜란드였다. 일명 ‘우르헨다’ 판결이다. 2013년 환경단체 우르헨다(Urgenda)와 일반시민 880여명이 ‘네덜란드 정부가 기후변화 대응책임을 소홀히 해 국민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며 제기한 민사소송이자, 정부의 책임을 법적으로 따지는 세계 첫 소송이었다. 네덜란드 대법원은 2019년 12월 ‘유럽인권조약상’ 생명권, 개인 생활권 등을 근거로 네덜란드 정부가 2020년까지 온실가스를 1990년 대비 25%줄어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6년이라는 긴 시간 소송 끝에 나온 결과였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정부와 입법부가 그 책임을 다했다면 이렇게 사법부까지 찾아갈 일은 없었을 것이다. 유아부터 청소년들까지 소송의 주체가 돼서 법정에 서게 만든 그 자체가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 생활권, 행복 추구권을 침해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암울한 숫자를 말하던 구테흐스 총장은 “좋은 소식은 우리가 운전대를 잡고 있다는 것”이라며 온도 상승을 1.5도 이하로 제한하기 위한 전쟁은 오늘날 지도자들 아래에서 승패가 결정될 것”이라며 희망을 놓지 않았다.

이 모든 상황이 주는 메시지는 하나로 수렴된다. 아직 인류에 희망은 조금이나마 남았고, 더 많은 무고한 이들이 법정으로 가기 전에 각국 정책결정권자들이 할 일이 많다는 것이다.

ho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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