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하락의 역설... 문제아 공모주인데, CB 발행에 문전성시
‘부진한 주가 흐름=저평가’ 해석에 200억 CB는 흥행 성공
반도체 후공정 분야의 에이엘티가 부진한 주가 흐름 속에서도 좋은 조건으로 200억 원 규모 전환사채를 발행했다. 에이엘티는 지난해 7월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후 주가(종가 기준)가 공모가(2만5000원)를 넘은 날이 닷새에 불과해 공모가 거품 지적을 받았었다.
에이엘티는 최소 2년 반 동안 이자 걱정 없이 조달금을 쓸 수 있게 됐다. 채권 이율이 0%이기 때문이다. 전환사채 투자자가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가격은 현재 시세보다 25% 이상 비싼 2만5500원으로 정해졌다. 전환사채를 인수한 기관 투자자들이 채권 이자 수익 없이 주가 상승 기대만으로 투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에이엘티 개인 주주들은 기관 투자자 베팅대로 주가가 반등할 것인지 주목하고 있다.
에이엘티는 이달 13일 기관 투자자 세 곳을 대상으로 200억 원 규모 전환사채(제7회)를 발행했다. 포커스자산운용이 160억 원, 오라이언자산운용이 20억 원, 제이비우리캐피탈이 20억 원을 투자했다. 회사 측은 청주시 제2공장 건축에 150억 원을 투입하고, 나머지 50억 원을 채무 상환에 쓰겠다고 밝혔다.
에이엘티는 회사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으로 전환사채를 찍었다. 우선 표면 이자율·만기 이자율 모두 0%다. 채권자가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하지 않고 만기(2029년 6월 13일)까지 5년간 들고 있어도 이자를 전혀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중간에 주식으로 바꿔 전환가액보다 높은 가격에 주식을 팔아야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다.
주식 전환가액은 현 주가 수준보다 비싼 2만5500원으로 정해졌다. 할증이 붙었기 때문이다. 통상 전환사채 전환가액은 기준 주가에 10%가량 할인율을 적용해 정해진다. 그런데 에이엘티의 전환사채 전환가액은 기준 주가를 정하는 세 가지 방식 중 가장 높은 가격에 25.655% 프리미엄까지 더해 결정됐다. 이번 전환가액은 전환사채 발행 결정 전날인 10일 종가(2만350원) 대비로는 25.3% 높은 수준이다. 전환사채 보유자는 주가가 전환가액 2만5500원보다 비쌀 때 주식을 팔아야만 차익을 얻을 수 있다. 투자자들은 주가가 하락할 경우 회사가 전환가액을 낮춰주는 리픽싱 장치도 포기했다.
에이엘티는 최소 2년 6개월간은 원금 조기 상환 걱정 없이 자금을 활용할 수 있다. 전환사채 보유자가 만기 전 원금 상환을 요구하는 풋옵션(조기 상환 청구권) 행사 가 가능 시기가 2026년 10월부터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전환사채 발행일로부터 1~2년 후 풋옵션 행사가 가능한 것을 감안하면 에이엘티는 상대적으로 더 넉넉한 시간을 보장받은 셈이다.
에이엘티는 반도체 후공정에 속하는 시스템반도체 테스트 사업을 하는 회사다.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 상태에서 양품과 불량을 판정하는 웨이퍼 테스트 부문이 회사 전체 매출의 97%가량을 차지한다.
일부 투자자는 에이엘티가 신사업으로 집중하는 림컷(rim-cut) 분야를 좋게 본 것으로 알려졌다. 림컷은 고정밀 레이저 기술을 이용해 타이코 웨이퍼(초박막 고전력 웨이퍼) 테두리를 잘라내는 공정으로, 에이엘티가 특허 출원했다. 림컷 공정은 현재 진입 장벽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에이엘티의 림컷 사업부 매출은 2022년 15억 원에서 2023년 47억 원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포커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에이엘티의 신사업인 림컷 공정의 마진이 높고, 회사가 다른 비교 기업 대비 저평가된 것으로 판단해 투자를 결정했다”고 했다. 포커스자산운용은 이번에 5개 펀드를 만들어서 에이엘티에 투자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메자닌(전환사채·신주인수권부사채 등 채권과 주식의 중간 성격인 금융 상품) 전문 펀드 운용사인 포커스·오라이언 등이 만기까지 채권으로만 들고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어쨌든 주가가 지금보다는 오를 거라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에이엘티는 지난해 7월 27일 공모금 225억 원을 끌어모으며 코스닥시장에 상장했다. 공모가는 희망 범위 상단(2만500원)을 훌쩍 넘는 2만5000원으로 결정됐는데, 상장 이후 주가가 공모가 아래에서 움직이면서 몸값이 지나치게 높게 평가됐었다는 평이 많다. 20일 종가는 1만8550원으로, 공모가 대비 26% 하락했다.
상장 전 2대 주주(당시 지분 12.65%)였던 신기술투자회사 디에이밸류인베스트먼트(디에이밸류-어니스트 신기술투자조합 제1호)는 이달 18일 남아 있던 주식 50만1799주(5.6%)를 전량 처분했다. 주당 1만7317원에 시간 외 대량 매매(블록딜)로 모두 매도했다. 총 87억 원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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