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사촌’ 신세계 정용진과 CJ 이재현의 ‘피의 동맹’ [권상집의 논전(論戰)]

권상집 한성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2024. 6. 2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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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통 겪는 CJ와 신세계, 쿠팡·C커머스 역습에 공동전선 구축

(시사저널=권상집 한성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CJ그룹과 신세계그룹은 소비자에게 가장 친숙한 기업이다. 두 기업이 영위하고 있는 사업이 식품, 물류, 콘텐츠, 유통, 쇼핑으로 소비자의 일상과 밀접한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술력 위주인 B2B 분야와 달리 B2C는 고객 만족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에 소비자의 기호가 급변하고 패러다임 변화를 몰고 오는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이 빈번하다는 점이다. B2C 사업은 레드오션의 축소판이다.

그 결과, CJ와 신세계는 최근 들어 성장통을 겪고 있다. 신세계는 자타 공인 유통공룡으로 불렸으나 쿠팡의 공습에 의해 유통 영역의 왕좌 자리를 내주었다. 이제 소비자는 유통과 쇼핑의 혁신가로 쿠팡을 제일 먼저 떠올린다. CJ그룹 역시 CJ올리브영을 제외하면 CJ제일제당과 CJ ENM의 실적이 저조한 상황이다. 고심 끝에 CJ 이재현 회장과 신세계 정용진 회장은 외사촌 간 전략적 동맹을 구축하는 승부수를 택했다.

(왼쪽)이재현 CJ 회, 정용진 신세계 회장 ⓒ시사저널 사진자료·연합뉴스

온리원, 그리고 퀀텀점프를 위한 협력

6월5일 CJ와 신세계는 서울 중구 CJ인재원에서 물류, 유통, 미디어 분야에서 전방위 협력이 담긴 사업제휴 합의서(MOU) 체결식을 진행했다. 김홍기 CJ주식회사 대표와 임영록 신세계그룹 경영전략실장 등 그룹 오너의 최측근 경영진이 합의서를 체결했다는 점은 두 오너인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결단과 사전 합의가 담겨 있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장소가 CJ인재원이란 점도 눈에 띈다.

CJ인재원은 이재현 회장이 어린 시절을 보낸 집터다. 그는 자신이 자란 터전에 그룹 인재 육성의 의지를 담은 연수원을 직접 세운 것으로 유명하다.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에서 정용진 회장과 전략적 제휴를 뛰어넘는 동맹을 약속한 장면은 외부의 적에 맞서려면 역시 믿을 수 있는 사람을 택해야 한다는 상징적 결론으로 귀결된다. 가장 어려운 상황에선 누구나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이와 손을 잡는다.

지난해 CJ그룹은 창립 70주년을 맞이했지만 그룹 차원의 대외 행사를 생략하고 '온리원(Onlyone) 재건 전략 회의'라는 비상경영회의를 진행했다. 최초, 최고, 차별화를 지향하는 온리원 정신과 달리 CJ는 지난해 CJ제일제당, CJ ENM, CJ CGV 등 주력 계열사 모두 실적 악화를 보였다. 그룹 내부에서도 세상의 빠른 변화에 현명하게 대응하지 못해 정체의 터널에 갇혔다고 인정할 정도로 CJ는 어려움을 겪었다.

신세계 역시 올해 3월 정용진 총괄부회장이 그룹 회장으로 승진하며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을 정면 돌파해 그룹이 최고의 고객 만족을 선사하는 기업으로 다시 한번 퀀텀점프를 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그룹의 경영전략실 역할을 한층 더 강화하고 혁신과 변화를 주도해 급변하는 패러다임에 대응하겠다는 것이 신세계의 의지다. 온리원 정신의 재건, 퀀텀점프를 통한 비상이 CJ와 신세계가 공동전선을 구축한 이유다.

CJ와 신세계가 동맹을 맺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쿠팡과 중국계 이커머스 기업인 알리익스프레스, 테무는 두 기업 모두에 업계 경쟁자 또는 파괴자다. 쿠팡은 CJ와 신세계의 경영전략회의에 빈번히 등장하는 경계 대상 1호다. 둘째, CJ와 신세계는 예전부터 상대를 배려해 사업 영역을 넘나들지 않았다. 생활문화 기업임에도 두 기업은 지켜야 할 선을 지켰다.

김홍기 CJ주식회사 대표(왼쪽 세 번째), 임영록 신세계그룹 경영전략실장(왼쪽 네 번째) 등이 6월5일 '사업제휴 합의서 체결식'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신세계 제공

공동전선 뛰어넘는 프런티어 정신 필요

전략적 동맹은 두 기업에 수많은 성과를 단기간에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CJ대한통운은 연간 최소 5000만 건 이상의 G마켓과 SSG닷컴 배송을 맡게 되었다. 신세계 계열사인 G마켓은 대한통운의 서비스를 통해 익일 택배 주문 마감시간을 오후 8시에서 자정으로 연장한다. 쿠팡과 사실상 동일 수준의 익일 배송체계를 구축했다. 신세계는 유통, CJ는 물류에 집중함으로써 밸류체인을 완벽히 장악할 수 있다.

미디어 및 콘텐츠는 또 다른 시너지가 예상되는 분야다. 이재현 회장과 정용진 회장은 소비자를 자신들의 세계관에 가두기 위한 락인(Lock-in) 효과에 관심을 갖는 경영자다. 그동안 두 기업은 콘텐츠, 스포츠, 쇼핑몰 등 온라인과 오프라인 플랫폼에 집중 투자해 왔다. CJ ENM 콘텐츠를 스타필드에서 즐기고 신세계와 CJ ONE 포인트를 공유하는 멤버십 통합이 가시화될 전망이다. 단기 성과는 바로 나타날 것이다.

CJ와 신세계의 목표는 악화된 실적과 주가를 회복하는 데 있다. 저조한 실적은 두 기업의 협력을 통한 시너지 창출로 일정 부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정용진 회장은 실무진 간 협력 논의를 한 차원 더 높은 성과와 동맹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이번 MOU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통과 쇼핑, 콘텐츠에서 이뤄진 두 기업의 상호 협력은 경쟁자에게 높은 진입장벽으로 다가오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주가 회복에 있다. 주가는 매출과 영업이익이 받쳐준다고 해서 무조건 오르지 않는다. 시장은 냉정해 두 기업의 협력 그 이상을 기대하고 요구하고 주문한다. CJ는 제일제당에서 시작해 물류, 유통,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산업을 개척했지만 지난 10년간 그 이상의 혁신을 선보인 프런티어 정신을 보여주지 못했다. 글로벌 OTT의 강세, 쿠팡의 산업 경계선 파괴에 맞서기 위한 온리원 재건이 필요하다.

신세계 역시 마찬가지다. 신세계는 국내 고유의 유통 명가지만 소비자들은 신세계에서 새로운 세계가 아닌 백화점이라는 올드한 세계 그 이상을 읽지 못한다. 스타필드, SSG닷컴, 신세계 야구단 등 새로운 시도는 그룹이 지향하는 구독경제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소비자들은 락인되지 않고 쿠팡, 네이버쇼핑 등 온라인 이커머스 기업으로 손쉽게 이탈했다. 퀀텀점프를 위한 변화를 시장은 요구한다.

CJ와 신세계는 굳건한 동맹으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 안정적인 수익 창출원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규모의 경제를 넘어 범위의 경제, 혁신성장을 추구하기 위해선 프런티어 정신이 급선무다. 격변하는 환경에 맞서기 위한 전략적 동맹은 방어적 자세다. 프런티어 정신으로 산업을 재정의하고 사업의 변곡점을 개척하는 공격적 자세가 CJ와 신세계엔 필요하다. 온리원과 퀀텀점프는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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