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침’의 문화문법

최태호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2024. 6. 21.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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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아내와 인천대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동문 쪽으로 가면 먹을 수 있는 곳도 많고, 쉴만한 곳도 많았다. 아내가 커피 한 잔 하자고 해서 간 곳에 옷가게를 같이 하는 이른바 ‘SHOP IN SHOP’이 하나 있었다. 커피를 마시고 한 바퀴 돌아본다고 가더니 한참 후에 그냥 가자고 한다. “왜, 좋은 것 있으면 사지?” 했더니, “침 발라 놓고 왔지.”라고 한다. 여자들은 참 이상하다. 집에 옷이 엄청나게 많은데도 “옷이 없다.”고 하면서, 또 다른 옷을 보러 다닌다. 홈쇼핑에 예쁜 옷이 있어서 샀는데, 주일에 입고 갔더니, 그 옷을 입은 사람이 네 명이나 있다고 다시는 안 입을 거란다. 싸게 샀다고 “교회갈 때 입을 거야.” 하고 좋아하던 얼굴에 오히려 수심이 가득하다. 과거에 필자도 새 옷이라고 5000원 주고 샀는데, 학교에 갔더니 학생이 똑같은 옷을 입고 앉아 있었던 적이 있다. 얼굴이 화끈거렸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아내도 그런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옷을 보려고 갔는데, 혹시나 하고 조금 더 생각해 보려고 ‘침 발라 놓고’ 나온 모양이다.

이 정도 얘기하면 한국인들은 무슨 뜻인지 다 알고 있지만, 외국인 학생들은 머리를 갸우뚱 거린다. 왜 옷에 침을 발라놓고 나오는지 이해를 못한다. 물론 진짜로 침을 바르는 것도 아닌데, 왜 침 바른다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우선 ‘침 발라 놓다’라는 말은 ‘가지고 싶어서 자신의 소유로 정해두다’는 뜻이다. ‘입에 침 바른 소리’는 ‘겉만 번지르르하게 꾸며서 남이 듣기 좋도록 하는 말’이다. ‘제 침 발라 꼰 새끼가 제일이다’라는 말은 ‘자기가 직접 힘을 들여 한 일이 제일 만족스럽고 믿음직하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우리말에서 ‘침’은 그 의미가 다양하다. 한국인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다. 이러한 말은 문화를 적용해야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필자는 오래 전부터 문화문법을 강조해 왔다.

일반적으로 ‘침’이라고 하면 ‘침샘에서 분비되며 무색의 끈기가 있는 액체 혼합물’을 이르는 말이다(고려대한국어대사전). 소화 효소인 프티알린을 함유하고 있어서 녹말을 엿당으로 분해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가 하면 벌레의 몸에 있는 ‘독을 쏘는 바늘 모양의 것’도 침(針)이라고 하고, ‘전체가 가늘고 끝이 뾰족하게 생긴 모양의 물건’도 침이라고 하고, ‘사람이나 마소 등의 혈을 찔러 병을 다스리는 데이 쓰는 바늘’도 침(鍼)이라 한다. 또한 과거에는 많이 있었는데, 요즘은 보기 힘든 ‘침(沈) 담근 감’도 있다. 여기서는 ‘소금기가 스며들어 배게 하는 작용’을 말한다. 이제 예문을 몇 가지 보자.

태호는 손에 침을 퉤퉤 뱉더니 삽자루를 쥐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태호가 세종시에서는 침을 제일 잘 놓는다고 해.
그 옷은 내가 침 발라 놓은 것이야. 건드리지 마!
장에 가면 침 담근 감 좀 사와요. 그게 제일 맛있어.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어린 시절에 할아버지로부터 “이놈, 침 놓을 거야.”하는 말 들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실 그때는 침이 무엇인지도 몰랐는데, 눈치로 그냥 “아픈 것이겠구나.” 하고 지레 겁을 먹곤 하였다. 때로는 사람에게 따끔한 충고의 말을 해 줄 때도 ‘침 놓다’라는 표현을 한다. ‘일침을 가하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침 먹은 지네’라는 말도 있다. ‘할 말이 있으면서 못 하고 있거나 겁이 나서 기운을 못 쓰고 있는 사람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사람들은 평소에 흔히 하는 말이기 때문에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지만, 그 뜻을 생각해 보면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말이 많다. 특히 우리말은 건강이나 음식에 관한 것들이 많아서 문화를 바르게 알아야 의미가 통하는 어휘가 많다. 우리는 먹는 것(食)은 곧 약(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태호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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