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흐르는 돼지 축사로… ‘동물 복지’는 불가능한가[북리뷰]

장상민 기자 2024. 6. 21.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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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거벗은 동물사
이종식 지음│동아시아
■ 돼지 복지
윤진현 지음│한겨레출판
■ 슬픈 수족관
존 하그로브│하워드 추아이언 지음│오필선 옮김│목수책방
인간의 필요에 따라 동물 사육
애완견 아닌 소·말 도시서 추방
돼지는 ‘살 찌우기’로만 길러져
핀란드선 이동 보장되는 농장도
수족관속 범고래 스트레스 극심
“바다 울타리 만들어줘야” 대안
국내 1호 동물복지 양돈장인 ‘더불어행복한농장’의 돼지들이 움직이기 충분한 공간에서 사육되고 있다. 한겨레출판·목수책방 제공

국내 반려동물 가구는 전체 가구의 15%인 310만 가구에 이른다. 600만 마리의 강아지와 250만 마리의 고양이가 2만 명에 육박하는 수의사와 함께 사는 세상은 동물과 인간의 평등이 당연한 듯 느껴지게 한다.

하지만 포스텍에서 과학사를 가르치는 이종식 교수는 ‘벌거벗은 동물사’를 통해 동물권과 동물 복지는 당연한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랫동안 인류사(史)는 ‘자연’ 정복의 역사였고 여기에는 동물을 상황에 따라 사냥하거나 길들이고 추방하는 일도 포함되기에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언제나 논쟁적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책에서 도시화의 역사를 짚으며 개로 대표되는 애완동물과 소, 말 등의 가축을 비교한다. 비좁은 도시 생활을 택한 사람들은 자연스레 가축을 도시 외곽으로 추방한다. 그에 반해 작은 몸집의 개는 반려로 선택된다. 도시에서 함께 사는 개는 다시 애완견과 배회견으로 나뉜다. 애완견은 육종의 이름으로, 배회견은 도시미관의 이름으로 학대당했다는 점도 짚는다. 나아가 개 도살장과 젖소 착유 시설 등은 시민들의 눈살이 찌푸려지지 않도록 교외에 감춰졌다는 사실도 놓치지 않는다. 이처럼 저자는 오랫동안 동물을 편의대로 위치시킨 관성으로 인해 단순한 선의에 기대는 동물권은 명확한 한계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188쪽, 1만5000원.

윤진현 전남대 동물자원학부 교수는 식탁 위 고기의 모습으로 더 익숙한 돼지의 이야기를 ‘돼지 복지’에 담았다. 저자와 돼지의 첫 만남은 실습 방문했던 양돈장에서 시작됐다. 다른 실습생들이 기피했던 농장에서 그는 ‘살찌우기’의 목적으로만 사육되는 돼지의 삶을 마주하게 된다.

‘공장식 축산’ 속에서 태어난 지 수 분만에 거세당하는 수퇘지와 비좁은 우리에서 분뇨를 온몸에 바른 채 끝없이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는 암퇘지는 그가 연구를 계속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그는 핀란드로 떠나 클래식이 들려오는 임신 축사와 충분한 이동이 보장되는 사육 환경을 배우고 한국에 돌아왔다.

윤 교수는 축산의 역사가 짧은 한국에서 최고의 사육시설을 갖춘 복지 축산이 단숨에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최초의 동물복지 농장인 ‘더불어 행복한 농장’에서 발견한 가능성과 동물복지 농장에 도전하고 싶은 농장주가 60%에 이른다는 점을 근거로, 정부가 실현 가능한 수준에서 조금씩 바꿔나가야 할 ‘동물복지 인증’의 길을 자세한 수치로 제시한다. 328쪽, 2만 원.

조련사 존 하그로브가 범고래 타카라에게 입 맞추고 있다. 한겨레출판·목수책방 제공

도시인들이 필요한 고기를 끔찍한 살육 현장없이 얻기 위해 돼지를 도시 밖으로 밀어냈다면 ‘슬픈 수족관’ 속 범고래는 정반대로 도시 안으로 끌려온 동물이다. 범고래는 거대한 대양의 포식자로 알려져 있지만 저자 존 하그로브가 본 동물원 ‘씨월드’의 범고래는 조련사를 등에 태우기도 하고 물살을 헤치고 튀어 올라 조련사와 입을 맞추기도 하는 신비로운 생명체였다.

각고의 노력 끝에 저자는 씨월드의 범고래 조련사가 돼 오랜 꿈을 이룬다. 그때부터 ‘쇼-범고래’의 진실을 알아간다. 그들이 마치 인간과 진정한 친구가 된 듯 쇼를 하는 이유는 단 두 가지였다. 첫째는 먹이 보상이며 둘째는 쇼를 하는 동안 만이라도 지느러미를 뒤틀리게 할 정도로 좁은 수조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체수를 늘리기 위해 강제 인공수정시킨 뒤 어미에게서 새끼를 빼앗아 다른 동물원에 팔아버리기도 한다.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범고래들은 평균 수명의 절반 혹은 반의 반도 살지 못한 채 죽어갔다.

마침내 극심한 스트레스로 범고래 ‘틸리쿰’이 한 조련사를 물어 죽이자 씨월드는 침묵했다. 죽음에 관해 설명하는 일은 자신들의 오랜 학대를 설명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을 죽인 범고래는 격리 수용됐다. 너무도 사랑했던 범고래와 동료를 잃은 뒤 저자는 모든 것을 폭로하기 시작했다. 진실을 알게 된 시민들의 불매와 질타로 범고래의 사육과 쇼는 금지됐지만 여전히 잡혀 온 범고래들은 각각의 수족관에 남아있다. 저자는 큰 바다 울타리인 생추어리를 만들어 범고래에게 자유로운 여생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을 지켜보며 지난날 인간들의 오락과 욕심을 반성해야 한다는 말이 아프게 다가온다. 400쪽, 2만5000원.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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