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반도체 人·水·電 싸움… 인재·용수·전력망 공급 정부가 나서야” [M 인터뷰]

윤정선 기자 2024. 6. 2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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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 인터뷰 - ‘1호 법안’ 반도체특별법 발의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
세금감면보다 보조금 지원 필요
대기업 특혜 아닌 청년위한 투자
중견·중소기업 상속세 부담 커
성장세 이어갈땐 유예·감면해야
정치에 뜻품고 노동법부터 공부
삼전파업, 전직원 대변할까 의문
총선 패배는 체계적 지원 없던탓
차기 당대표, ‘맑은’ 사람이 돼야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반도체 산업 지원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곽성호 기자

“오랜 기간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면서 깨달은 것은 정부가 기업들을 이끌어가는 시대는 끝났다는 사실이다. 기업들이 세계 시장을 이끌어가도록 정부가 돕는 역할로 바뀌어야 한다. 1호 법안에 대한 고민도 거기에서부터 출발했다.” 삼성전자 평사원에서 사장까지 오른 ‘40년 삼성맨’ 출신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1일 서울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한 문화일보와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스마트폰 갤럭시 시리즈의 성공을 이끌었던 고 의원은 총선 때 1호 법안으로 약속한‘반도체 산업경쟁력 강화 특별법’을 지난 19일 발의했다.

경영인에서 정치인으로 옷을 갈아입은 그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설득에 결국 지난 1월 당 영입 인재로 정치에 발을 들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정치 입문 제안을 받은 이후 현재까지 불과 6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당 AI반도체특별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으며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국민의힘 내 16개 특위 중 초선이 위원장을 맡은 건, 고 의원과 의료개혁특위 위원장인 인요한 의원뿐이다. 고 의원은 1시간 30분 동안 진행한 인터뷰에서 반도체 특별법에 어떤 고민을 담았는지를 비롯해 정치 입문을 결심하게 된 배경, 국민의힘의 총선 패배에 대한 원인 분석, 현재 당 상황에 필요한 리더 등에 대해 망설임 없이 답변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1호 법안인 반도체 특별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은.

“세계 반도체 시장 경쟁은 이제 인·수·전(人·水·電) 싸움이다. 즉 반도체 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선 사람과 물, 전력을 충분히 갖춰야 한다. 특히 이 중 가장 시급한 건 전력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반도체 산업에 대한 국가 전력망 설치·확충에 관한 사항을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의무적으로 반영하도록 했다. 또 나머지 인력과 용수 공급에 관해서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특별법에 녹여냈다.”

―반도체 특별법엔 정부가 기업에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도 담았다.

“인·수·전 싸움만큼 중요한 게 ‘쩐의 전쟁’이다. 이전까지 반도체 산업과 관련된 발의 법안은 세금 감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세계 반도체 경쟁에서 다시 주도권을 잡으려면 정부가 직접 보조금을 지원해야 한다. 5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된 TSMC 일본 구마모토 공장이 28개월 만에 완공된 것은 ‘반도체 부활’을 내건 일본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 지원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보조금 지급은 반도체 기업에 대한 특혜가 아니라 민생과 청년들의 미래를 위한 투자로 봐야 한다.”

그러면서 고 의원은 “삼성전자에서 갤럭시 신화를 남겼고, 국회에선 청년의 미래를 남겼다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1호 법안으로 반도체 특별법을 발의한 것 역시 청년의 미래와 직결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회의원 후보자 시절 국회에 입성해 가장 이루고 싶은 목표에 대해서도 “청년의 미래를 만들 정치인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가난했던 유년시절 경험이 이처럼 청년들의 미래를 정치적 소명으로 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도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학교 책상에 앉아 품었던 꿈은 나이 40세가 됐을 무렵 먹고 싶을 때 언제든 불고기 백반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였다. 정말 어렵게 살았다. 하지만 가난했던 시절에도 불행하다는 생각은 없었다. 좀 불편한 거였다. 하지만 지금 시대의 청년들은 불편이라고만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인 것 같아 안타깝다.”

―반도체 분야 외 국회에서 시급하게 다뤄야 할 법안을 꼽자면.

“상속세다.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 중소·중견 경영진을 많이 알고, 또 많이 만난다. 삼성전자에서 일하면서 알게 된 협력업체 경영진을 만나도 그분들의 목소리는 상속세 문제 하나로 모인다. 손톱깎이 세계 1위 기업인 쓰리쎄븐은 상속세 부담을 견디지 못해 경영권을 넘겨야 했다. ‘히든 챔피언’으로 불리던 중견기업을 키운다는 방향을 가지고 이제라도 상속세를 손봐야 한다.”

―상속세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상속받은 이후에도 시장 점유율 등 성장세를 이어가거나 유지한다면, 상속세를 유예·감면해주는 것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계속해서 황금알을 낳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혜택은 회사 직원들과 가족, 그리고 협력업체와 지역사회 등 결국 사회에 돌아온다.”

―삼성전자 창사 이래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의 첫 파업이 있었다.

“반도체 패권을 둘러싼 절박한 지금의 국제 상황을 고려한 행동일까 하는 아쉬움과 한편으로 안타까움이 교차한다. 또 지금의 파업이 전체 삼성전자 근로자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나 싶기도 하다. 난 물음표다. 사실 정치에 입문을 결심하고 가장 먼저 공부한 게 노동법이었다. 당시 국회의원이 된다고 가정했을 때 가장 먼저 챙겨야 할 게 노동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근로자의 권리는 보호받아 마땅하다. 동시에 기업의 권리도 보장받아야 함이 마땅하다.”

―당 전체적으로 봤을 때 지난 총선 결과가 좋지 않았다. 거야 독주로 반도체 특별법 등 법안 통과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지난 총선을 직접 뛴 입장에서 국민의힘 패배 원인을 꼽자면.

“후보자를 지원하는 시스템이 불비했다. 나처럼 전략공천 된 후보도 있고, 국민추천제를 거쳐 공천된 후보 등 다양한 출신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선거에 나왔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각 후보에게 또 해당 지역구에 맞는 ‘카드’를 당에서 더 적극적으로 지원했어야 했다. 예를 들어 현장유세에서 효과적인 키워드가 강남이냐 강북이냐 또 전략공천이냐 국민추천제냐에 따라 다를 수 있을 텐데 그런 차별화된 지원이 많지 않았다. 그런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다. 지금 비상상황이라고 불리는 당의 위기를 돌파하는 데 있어 앞으로 어떤 대표가 와야 한다 생각하나.

“정치가 굉장히 많은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 점에서 맑은 사람이 새 당 대표로 왔으면 한다. 맑은 사람은 깨끗한 사람도 뜻하지만 혼탁한 상황에서도 맑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국회로 출근하게 되면서 후배들에게 ‘국회의사당 옆에 흐르는 한강에다가 깨끗한 물 한 바가지 붓는 심정으로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울러 포용력이 큰 사람이 지금 당에 필요한 리더라고 생각한다. 하나 더 꼽으면 108석에도 불구하고 거야와 경쟁할 수 있는 전략을 제시하고 힘을 불어넣는 대표가 필요하다.”

고 의원은 지난 2016년 갤럭시 노트7 배터리 폭발 사고 당시 임직원들과 책임지고 수습한 경험이 있다. 이 같은 기업 경영에 있어 치명적 비상상황에서도 고 의원은 문제 원인 분석부터 사고 방지 대책 마련과 다음 제품 개발까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결과적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끝으로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 ‘고동진이 정치판에 들어가고 변했다’고 말하면, 난 지금 이 자리에서 바로 내려올 거다. 삼성전자에서 동료들과 같이 고객과 거래처만 생각하며 한평생 살아왔다. 이젠 국회의원이 돼 고객이 국민이고, 협력업체는 더불어민주당이다. 동료는 나와 같이 일하는 보좌진, 그리고 집권 여당이다 보니 같이 머리를 맞대고 정책을 고민하는 공무원들이다. 앞으로 내놓아야 할 제품은 스마트폰이 아닌 정책이다. 정책에서 성과를 내지 않으면 그간 쌓아온 ‘고동진’이라는 이름은 아무 의미가 없다. 평범한 국회의원 중 한 명이 되려 했다면 난 애초부터 이 판에 들어오지 않았을 거다.”

윤정선·염유섭 기자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9일 국회 의안과에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법안을 제출하고 있다. 뉴시스

■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40년 한길’ 삼성맨 출신… 한동훈 권유로 정치입문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월 한동훈 당시 비상대책위원장과 첫 통화에서 청년 문제를 논의한 후 정치 입문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기업인 고동진’이 삼성 스마트폰 갤럭시를 남겼다면 ‘정치인 고동진’은 청년의 미래, 청년이 닮고 싶어 했던 멘토 정치인으로 기억되길 희망한다고 설명했다.

고 의원은 2021년 12월 삼성전자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뒤 삼성전자 고문으로 지내다 지난해 3월 회사를 떠났다. 이후 본인의 40년간 삼성전자 근무 경험을 통해 청년 직장인들에게 주는 조언을 담은 ‘일이란 무엇인가’를 출간했다. 책 관련 인터뷰 등을 마친 지난 1월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았다고 한다. 올해 63세인 본인과 띠동갑 차이(12살)가 나는 한 전 위원장이었다. 그는 “지난 1월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안 받으니까 ‘한동훈입니다. 사장님 잠시 전화 가능할까요’라고 문자가 왔다”고 웃으며 말했다.

고 의원은 4시간 후 한 전 위원장과 통화에서 대한민국 청년의 미래를 두고 논의를 나눴다고 했다. 그는 “대화가 끝나도 30초간 서로 전화를 끊지 않았다”며 “이후 한 전 위원장이 부산을 방문했을 때 등 1∼2차례 더 통화를 하면서 국민의힘이 나아갈 방향, 청년 문제를 논의했고 정치 입문을 결심했다”고 했다. 평사원부터 시작해 40년 ‘삼성맨’이었던 기업인 고동진이 정치인 고동진으로 변신한 순간이다.

고 의원은 존경하는 인물로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꼽았다. 의원실 방에 이 창업주가 생전 매던 넥타이(사진)가 액자에 담겨 보관됐을 정도다. 이 넥타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직접 선물했다. 그는 “이병철 창업주는 내가 워낙 존경했던 사람이었다”며 “이건희 회장은 철학자에 가까웠는데, 업무 보고를 들어가면 쳐다보는데 눈이 매서우면서 굉장히 따뜻했다. 부하 직원들에게 ‘먹으면서 (보고를) 하라’고 종종 말했다”고 했다.

고 의원은 4·10 총선 출마 전 이재용 회장을 만나 ‘후배들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삼성전자 대표 시절 몸에 밴 대로 지금도 새벽 5시에 일어나 독서로 일과를 시작한다.

고 의원이 기업인 시절부터 간직한 좌우명은 ‘자겸즉인필복, 자과즉인필의(自謙則人必服, 自誇則人必疑)’. 자신을 낮추면 주위에 사람이 따를 것이고 자신을 과시하면 주변의 의심을 살 것이란 뜻이다. 의원실에 족자로도 걸려있다.

염유섭 기자 yuseob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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