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예술서 얻는 ‘초월적 감정’… 영감의 원천이 되다[북리뷰]

신재우 기자 2024. 6. 21.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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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리뷰
경외심│대커 켈트너 지음│이한나 옮김│위즈덤하우스
‘거대함’과 마주쳤을 때 느끼는
공경-공포 사이의 복잡한 정서
정치·인류학 관점서 세밀 분석
인간의 뇌에서‘경외심’느끼면
도파민 분비되고 염증반응 줄어
전에 없던 혁신적 사고 갖기도
심리학자 대커 켈트너는 책 ‘경외심’을 통해 대자연, 음악, 시각디자인, 심적인 아름다움 등 여덟 가지 분야에서 인간이 경이로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이 같은 경외심은 우리가 세상과 관계를 맺고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탐험하게 해준다. 게티이미지뱅크

보기만 해도 입이 떡 벌어지는 설악산의 절경, 선 하나하나에 영혼이 담긴 듯한 박서보 화백의 작품, 혹은 귀가 아닌 마음을 울리는 듯한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연주를 마주할 때 우리 안에 솟구치는 감정이 있다. 기쁨이라고 표현하기엔 거대하고 놀라움이라고 표현하기엔 뭉클한 이 감정은 무엇이라고 콕 짚어 말하기가 어렵다. 하나의 감정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지 의문마저 드는 순간 심리학자이자 감정 전문가인 대커 켈트너가 도움을 건넨다. “우리가 세상과 관계를 맺고 열린 마음으로 이 세상을 탐험하게 해주는” 감정이자 “우리 뇌와 몸이 태생적으로 품는 기본 욕구”에 해당하는 이 감정의 이름은 바로 ‘경외심’(awe)이다.

‘경외심’은 같은 라틴어 어원을 공유하는 ‘경탄할 만큼 멋지다’(awesome)와 ‘무섭도록 끔찍하다’(awful)는 기분이 양립하는 복잡하고 애매한 감정이다. 정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웠던 만큼 초기 연구는 수많은 난관에 부딪혔다. 명확한 정의와 측정을 기반으로 한 과학계에서 경외심은 연구할 수 없는 정서로 여겨졌다. 그리고 2003년, 켈트너는 동료인 뉴욕대의 조너선 하이트와 함께 이를 정의 내리는 첫 작업에 착수했다. 막스 베버의 정치이론부터 서로 다른 문화권의 인류학자들이 다룬 연구들을 총체적으로 살펴본 이들이 내린 경외심에 대한 최초의 정의는 “세상에 대한 기존 이해를 뛰어넘는 거대한 무언가와 마주했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저자가 이토록 ‘경외심’의 의미를 정확하게 밝히고 싶어 한 데는 이유가 있다. 자신의 동생이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 그가 느꼈던 겸허하고 순수한 기분이 그의 삶을 바꿔놓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에게 생긴 변화는 실제 연구를 통해 증명됐다. 총 26개국에서 의사, 운동선수, 음악가, 시인, 미술가, 성직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를 통해 그는 이 벅찬 감정이 우리 사회를 다채롭게 할 뿐만 아니라 옥시토신과 도파민을 분비하게 하고 면역계 염증 반응을 줄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를 통해 밝혀낸 또 다른 사실도 있다. 연구에 참여한 창작자들은 경외심이 새로운 창작의 영감이 됐다고 하나같이 말했고 이들이 만들어낸 음악과 미술, 문학 작품은 다시 새로운 문화 활동의 원천이 됐다. 경외심은 또 다른 경외심을 낳는 놀라운 감정이다.

흔히 우리는 경외의 마음을 신이나 영적인 것에서 발견한다고 여긴다. 이 때문에 경외심은 종교적인 의미로 자주 사용되기도 하지만 사실 경외심은 유발하기 쉬운 감정이다. 인간의 뇌는 곳곳에서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게 설계됐다. 저자가 꼽은 경이의 종류만 여덟 가지에 달한다. 심적인 아름다움, 집단 열광, 대자연, 음악, 시각디자인, 영성과 종교, 삶과 죽음, 그리고 통찰까지. 그중에서도 가장 쉽게 경외심을 경험하는 방식은 지금 당장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우리 뇌가 경외심을 느끼는 자극의 특징은 어려운 수수께끼가 있거나 규모가 크고 통합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대자연은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동시에 가늠할 수 없는 크기를 갖고 있다. 여기에 비용 또한 들지 않는다. 대자연이 언제나 우리에게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은 인류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장 자크 루소는 교도소에 수감된 철학자 친구를 면회하러 가던 길에 파리 외곽 언덕길에서 낭만주의를 생각해냈다. 아이작 뉴턴은 무지개를 보고 느낀 신비로움을 통해 색채 이론과 감각, 빛 물리학에 관한 연구 성과를 이루었다.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이뤄지는 메커니즘도 유사하다. 예술 작품이 주는 시청각 신호는 학습된 해석과 사회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전전두피질에 도달한다. 그리고 그간 받지 못했던 충격과 웅장함을 마주했다면? 전전두피질은 새로운 관념과 급진적인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는 이것을 ‘영감’이라고 부른다.

경외심이 가져오는 대표적인 심리적 변화는 ‘작은 자기’ 효과다. 책에 언급된 실험에 따르면 탁 트인 자연경관이 내려다보이는 요세미티 계곡을 다녀온 실험 참가자들은 이후 종이에 자신의 모습을 그리라는 과제에서 계곡을 다녀오지 않은 참가자들보다 확연하게 작게 자신을 그렸다. 경외심을 더 많이 느끼는 환경에 노출되는 것만으로 우리는 세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자기가 사라지는 감각을 경험하고 겸허해지게 한다.

이외에도 책에 소개된 경외심과 관련된 연구 사례와 개별적인 경험들은 혐오와 나르시시즘을 바탕으로 점점 자기중심적이고 경쟁적으로 변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희망처럼 읽히기도 한다. 특수한 한두 경우를 제외하고 사례 대부분에서 돈과 재산이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은 특히 고무적이다.

켈트너가 자문으로 참여하기도 한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에는 기쁨·슬픔·분노·까칠·소심이란 감정이 캐릭터로 등장한다. 최근 개봉한 속편에서 사춘기를 맞은 주인공 라일리의 머릿속에는 불안·당황·부럽·따분이라는 새로운 감정이 찾아왔다. 그리고 저자는 미래의 라일리에게 찾아올 ‘경외심’을 상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라일리는 갓 성인이 된 나이에 알맞게 젊은 사람만이 지닌 심적인 아름다움과 만나 파티에서 춤을 추고 삶의 의미에 대해 늦은 밤까지 대화를 나눌지도 모른다.” 초롱초롱한 눈을 가진 ‘경외심’ 캐릭터가 라일리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찾아오길 바라게 된다. 448쪽, 2만3000원.

신재우 기자 shin2roo@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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