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왕좌왕 감세론, 흙탕물 속 ‘어대한’
윤석열 정권의 통치 방식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가령 감세론을 보자.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2024년 6월16일 한국방송(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내놓은 구상을 추진한다면 상속세와 종합부동산세 관련 제도는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성태윤 실장은 “서울 아파트 한 채 정도를 물려받는 데 과도한 상속세 부담을 갖지 않는 정도로 만들어야 한다”며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 및 공제 확대, 종부세 완화 등을 언급했다. 장기적으로 상속세는 유산 취득세 또는 자본이득세 등 형태로 개편하고 종부세는 사실상 전면 폐지해야 한다는 견해도 덧붙였다.
상속세·종부세 완화 방침 ‘화들짝’ 철회
그러나 <한겨레> 6월17일 보도를 보면, 중산층도 상속세 부담이 커졌다는 식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에 가깝다. 보도에 따르면 애초 상속세를 내는 사람 비중 자체가 적고, 그중에서도 상당한 자산을 소유한 계층이 주로 상속세 부담을 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 상속세 부담을 완화하는 것은 재벌 등 초고소득층만을 위한 일이 될 수 있다. 정부가 실제 성태윤 실장의 구상을 실현하려 한다면 상당한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을 거란 뜻이다.
그런데 성태윤 실장의 구상을 정말 추진하는 것인지는 아직 의문이다. 앞의 발언이 화제가 되자 대통령실은 바로 “검토안 중 하나일 뿐”이라는 ‘톤다운’에 가까운 입장을 내놨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도 다음날 “확정된 방안은 아니며 검토 가능한 대안”이라고 했다. 그러잖아도 세수 부족으로 곤혹스러운 상황이라 감세 논쟁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뛰어들 상황은 아니라는 걸까?
일단 던져놓고 보는 윤석열 정권의 스타일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배임죄 폐지론’을 통해서도 재확인된다. 애초의 논점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방안이었다.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에게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배임죄 처벌을 목적으로 한 소송이 남발될 수 있다고 우려하자 “배임죄는 현행 유지보다 폐지가 낫다”고 한 게 이복현발 ‘배임죄 폐지론’의 맥락이다.
그런데 먼저 궁금해지는 건 왜 다른 사람도 아닌 이복현 원장이 앞에 나서느냐는 거다. 이 문제 관련 주무부처는 법무부다. 금감원은 금융위의 관리·감독을 받을 뿐 정부기관이 아니다. 금감원장이 자신의 고유 업무가 아닌 대목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건 아무리 봐도 부자연스럽다. 그저 개인 의견을 밝힌 거로 보면 될까? 그러기에는 대통령이 검사 시절부터 중용해온 측근 인사라는 점이 걸린다. 이러니 실제 정권 차원에서 이러한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건지 아닌지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유력한 가설은 방점이 ‘이슈 파이팅’ 자체에 찍힌 게 아니냐는 거다. 최근 보수언론은 연금개혁 등 주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1주택자 종부세 완화까지 언급하는 더불어민주당의 행보에 긴장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연금개혁, 종부세 완화 등의 주제는 보수가 주도해야 하는 이슈인데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거다. 이 빼앗긴 주도권을 되찾는 걸 정권이 우선했다고 보면 근래의 부자연스러운 일들은 어느 정도 설명된다.
컨트롤타워 없는 여당의 혼돈
물론 이 경우라 해도 이해되지 않는 대목은 있다. 대통령실 참모나 금감원장을 맡은 옛 측근 인사가 논란을 감수하고 나서는 게 아니라, 입법적 자율권을 갖고 있어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운 여당 의원이 같은 역할을 했으면 훨씬 그림이 깔끔하지 않았겠냐는 거다. 즉, 여기서 의문은 도대체 왜 여당은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느냐는 대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여당은 현재 컨트롤타워가 사실상 없다. 국정을 전략적으로 뒷받침하는 행보를 이어가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거기다 관심이 다른 데로 가 있다. 최근 여당의 최대 관심사는 전당대회이고, 전당대회의 최대 쟁점은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대표가 되느냐 마느냐다. 여론조사 등 각종 지표는 한동훈 전 위원장이 유리한 고지를 점했음을 보여준다. ‘어대한’(어차피 대표는 한동훈)이란 얘기가 나올 정도다. 그런데 최근 ‘찐윤’ 이철규 의원은 “‘어대한’은 당원을 모욕하는 말”이라고 했다. 일부 친윤 인사들은 실제 당원 여론이 투표에 반영되면 여론조사와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다보니 “‘친윤 대 친한’ 구도도 아니고 그냥 ‘친윤 대 한동훈’ 구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한동훈만은 안 된다”는 식의, 용산의 의향이 반영된 게 아니라면 형성될 수 없는 구도다.
당내 친윤 그룹은 몇 겹의 방어선을 치려는 생각이다. 1차 방어선은 친윤 또는 유사 친윤 인사를 내세워 당원 조직표를 ‘영끌’해 한동훈 전 위원장이 대표가 되는 걸 막는 거다. 대표를 내주더라도 최고위원회를 장악해 지도부 내 다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견제 수단을 확보하는 게 2차 방어선이다. 재보궐선거 패배 등을 고리로 제2의 이준석 사태 같은 ‘극약처방’이 동원되는 3차 방어선도 생각해볼 수 있다. 뒤로 갈수록 무리수이고,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 걸리는 정도가 커진다. 1차 방어선에서 끝내는 게 상책이다.
그런 사정이 있다보니 마음이 급한 모양이다. 이철규 의원은 6월17일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동훈 전 위원장 주변 인물들을 겨냥해 “당원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분들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고 했다. 일종의 ‘색깔론’을 제기한 거로 볼 수 있다. 여기에 ‘주변’으로 지목된 왕년의 ‘진보 논객’ 등이 논쟁에 가세하면서 전당대회는 시작도 하기 전에 흙탕물 싸움이 돼버렸다.
어쨌든 ‘어대한’이라고 치면, ‘한동훈의 국민의힘’은 지금의 국민의힘과 어떻게 다를까? 이철규 의원의 ‘색깔론’은 윤석열-한동훈 갈등의 빈틈을 노린 일격이다. 역으로 말하면 지지층 분열은 한동훈 전 위원장의 약점이다. 이걸 극복하기 위해선 “윤석열 대통령과 끝장을 보자는 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지지층에 줘야 한다. 그러려면 범야권이 주장하는 각종 특검 등에 수세적으로 대처하면서 ‘이재명-조국 심판론’ 같은 소재를 활용한 공세를 펴나갈 수밖에 없다. 즉, ‘한동훈의 국민의힘’은 용산과의 관계에선 가끔 삐거덕거릴 것이나, 범야권과의 관계에선 일상적 갈등 상태를 풀지 않는 쪽으로 노선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그건 지금과 비교해 무엇이 얼마나 나아지는 것일까? 의문은 해소되지 않는다.
‘친윤 vs 한동훈’ 색깔론까지?
물론 다른 사람이 대표가 되면 또 다른 방식의 의문이 제기될 거다. 중요한 건 대통령의 마구잡이식 좌충우돌 국정운영 스타일을 제어할 수 있는 여당이 되지 않으면 이 문제는 해결이 안 된다는 거다. 그런데 여전히 답은 보이지 않고 갈 길은 멀다. 우왕좌왕 ‘감세론’과 흙탕물 속의 ‘어대한’은 바로 이 사실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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