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째 ‘반쪽 국회’…정치 실종, ‘사법 만능주의’에 기대는 여야

이우연 기자 2024. 6. 21.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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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민주주의 심각하게 퇴행”
20일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 고용노동부 장관과 환경부 장관의 빈 자리가 눈에 띈다. 연합뉴스

국회 원 구성을 둘러싼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갈등이 계속되면서, 여야 간 합의의 정치가 실종되고 그 자리를 ‘사법 만능주의’가 차지하고 있다. 야당에 협조를 구해야 할 여당은 11개 상임위원회 임의 배정 문제를 헌법재판소로 가져가고, 야당은 국회에 출석하지 않는 정부를 동행명령권과 고발 카드로 압박하며 ‘정치의 사법화’를 극대화하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퇴행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0일 당 비상대책위 회의에서 “어제 민주당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운영위원회를 여야가 1년씩 맡자’고 제안했는데, 민주당은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을 1년간 행사하지 말라는 등 황당한 요구로 뿌리쳤다”며 “극심한 대치 국면을 해소하려는 여당의 진정어린 제안에 이런 오만한 말장난이나 하면서 무조건 민주당의 폭주애 동참하라는 건 여당 의원까지 이재명 대표의 ‘방탄부대’로, ‘명심독재’의 길에 줄세우기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원 구성이 불법이라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해놓고, 그 다음날 상임위원장을 번갈아가며 하자는 게 말이 되느냐”며 “이러다가 대통령도 1년씩 돌아가면서 하자고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주말까지도 여야가 견해 차를 좁히지 못해 원 구성 협상이 답보 상태에 머무를 경우, 다음주 초 본회의에서 남은 7개 상임위원장도 야당끼리 선출할 가능성이 높다.

두 당의 원 구성 줄다리기는 ‘입씨름’을 넘은 상황이다. 국민의힘은 우원식 국회의장의 상임위 임의 배정과 야당 단독 상임위원장 선출이 무효라며, 지난 18일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민주당에선 “윤 대통령이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우리도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상임위를 다른 야당들과만 운영 중인 민주당 역시 사법 조처를 거론하며 정부·여당을 압박하고 있다. 민주당은 피감기관 인사들이 상임위 활동을 거부하는 여당에 발 맞춰 상임위에 출석하지 않자, 법사위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국토교통위, 보건복지위 등에서 이들을 증인으로 채택하는 입법청문회에 동시다발적으로 나서고 있다. 청문회 증인이 출석하지 않으면 동행명령권과 강제구인, 고발 등의 조처가 가능하다는 점을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 법사위원들은 내부적으로 검사 출신 의원들로 꾸려진 일명 ‘체포조’까지 구성해놨다.

여야는 상대 당을 겨냥한 국회법 개정안도 쏟아내고 있다. 여야 합의와 관행을 중시하는 국회의 오랜 전통이 깨지고, 제도 만능주의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날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보면, 소수 여당이 된 국민의힘을 압박하기 위한 국회법 개정안이 민주당 의원 주도로 여럿 발의됐다. 고위 공직자들이 정당한 이유 없이 국회 출석 요구에 불응할 시 처벌·고발하도록 하는 개정안(전현희 의원 대표발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의 숙려 기간을 줄이는 개정안(진성준 의원), 여야 간사 협의 없이 상임위를 열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황정아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국민의힘에서는 신속처리대상 안건의 지정과 심사 과정, 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자구 심사에 대한 권한쟁의심판 청구 등이 있을 경우 헌법재판소의 결정까지 국회가 해당 법안의 표결을 금지하도록 하는 개정안(신동욱 의원) 등이 발의돼 있다.

전문가들은 여야가 협상과 대화, 즉 ‘정치’ 대신 사법부의 판단에 기대고 있는 현실에 우려를 표했다. 이재묵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회의 관행은 국회 내 정치가 살아 있을 때 작동되는 것인데 지금 국회는 모든 갈등을 사법적으로 풀려고 한다”며 “가장 기초적인 원 구성부터 제대로 협상을 못하고 있는데 정치인들이 직업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이 판단 불능 상태라는 것을 자인하는 셈”이라며 “정치 영역에서는 관습법이 성문법보다 우선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런 관행을 무시하고 ‘법에 의한 지배’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민주주의 퇴행”이라고 꼬집었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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