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간 시행 안됐는데···최저임금 구분 적용 법적 근거 사라지나
최저임금 구분 적용 88년 이후 36년간 시행된 적 無
소상공인, 노동 생산성 차이 등을 근거로 적용 주장
전문가들도 최저임금 구분 적용 필요하다고 지적해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다르게 적용할 수 있도록 마련된 법적 근거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일부 의원들이 관련 조항을 삭제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소상공인들은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한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폐기할 것을 촉구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최저임금법 개정안 발의 항의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발의된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소상공인의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채 경영 여건을 더욱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법에 명시돼 있는 최저임금 구분 적용 조항을 삭제하는 건 업종에 따른 노동 생산성 차이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이어 “최근 몇 년 새 급격하게 인상된 최저임금을 감내해온 소상공인을 위해 해당 조항을 삭제하려는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저임금법은 제4조 1항을 통해 ‘최저임금은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 생산성 및 소득 분배율 등을 고려하여 정한다. 이 경우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하여 정할 수 있다’고 명시하며 업종별 구분 적용 가능성을 열어뒀다. 하지만 최저임금 제도가 처음 도입된 1988년을 제외하고 업종별 구분 적용은 36년간 시행된 적 없다. 이에 소상공인들은 노동 강도와 생산성 차이를 근거로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구분 적용할 것을 촉구해왔다.
하지만 22대 국회가 개원한 후 일부 의원들이 4조 1항을 포함해 여러 조항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소상공인들의 반발은 커지고 있다. 최근 박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저임금 업종별 구분 적용 및 수습기간 감액 조항 삭제를 골자로 한 최저임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로 발의했다. 이외에도 정신·신체 장애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제외, 최저임금 효력 발생 시기 구분, 사업 종류별 최저임금 관련 전문 위원회 설치 규정 삭제 등의 내용이 법안에 담겨 있다. 이를 통해 최저임금법을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 안정과 차별 없는 적정 임금 보장이라는 원래 목적에 맞게 개정하겠다는 취지다.
소상공인들은 최저임금법 개정 추진이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입을 모았다. 유덕현 소상공인연합회 서울지회장은 “(업종별 구분 적용 조항 삭제는) 경영 여건 악화로 한계 상황에 내몰려 폐업 직전인 소상공인이 많은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대기업과 똑같은 기준으로 임금을 주라는 것”이라며 “소상공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법안을 폐기하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계상혁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장은 “영세 소상공인의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와 국회의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구분 적용의 근거를 없애자는 법안이 발의됐다”며 “최저임금 인상과 매출 하락으로 근무시간을 한계까지 늘려가며 생계를 이어가는 자영업자들을 사지로 내모는 법”이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도 소상공인의 사업적 특성을 고려해 업종별 구분 적용을 시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기용 인처대 경영학과 교수는 “소상공인 업종은 노동 집약적 산업이 많기 때문에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며 “산업별, 지역별로 최저임금을 구분해 제도를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해외에서도 업종별로 구분하는 사례가 많고, 기업과 소상공인에게 같은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건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소상공인이 고용 창출에 기여하는 부분을 고려해 제도를 적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자영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는 “업종별로 일의 난이도와 전문성이 요구되는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히 시간에 따라 임금을 적용하는 건 문제가 있다”며 “(최저임금 업종별 구분 적용의 근거가 되는) 법 조항을 삭제하는 것은 업계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현 기자 kate@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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