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망이 휘두르며 길을 내는 여자 야구 [사람IN]

나경희 기자 2024. 6. 21.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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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첫 고교야구대회였던 청룡기가 열린 이후, 고교야구 4대 메이저 대회 경기장을 밟은 여자 선수는 단 두 명이다.

중학교 2학년 때 들어간 화성시 동탄 리틀야구단에서도, 주니어야구단에서도, 경기장에서도 또래 여자 선수를 마주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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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이 주목한 이 주의 사람.  더불어 사는 사람 이야기에서 여운을 음미해보세요.
78년 고교야구 황금사자기 역사에서 여자 선수 최초로 출전한 손가은 선수가 6월2일 경기도 광주시 팀업캠퍼스 야구장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1946년 첫 고교야구대회였던 청룡기가 열린 이후, 고교야구 4대 메이저 대회 경기장을 밟은 여자 선수는 단 두 명이다. 1999년 대통령배 준결승전에 선발투수로 등판한 덕수정보고등학교(현 덕수고) 투수 안향미 선수, 2023년 봉황대기 경기와 지난 5월19일 2024년 황금사자기에 출전한 화성동탄 BC 타자 손가은 선수(18)다.

초등학교 5학년 체육 시간에 티볼에 빠져 야구에 입문한 손가은 선수는 야구의 매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선수 아홉 명이 각자 자기 자리에 서서 자기가 맡은 일을 해내는 게, 그래서 같이 작전을 성공시키는 게 재밌어요.” 내가 잘해도 팀이 못하면 질 수도 있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거꾸로 제가 못했는데 팀이 잘해서 이길 수도 있잖아요. 그게 진짜 짜릿해요.”

‘팀 스포츠’라서 좋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늘 혼자이기도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들어간 화성시 동탄 리틀야구단에서도, 주니어야구단에서도, 경기장에서도 또래 여자 선수를 마주친 적이 없다. 관중석에서 경기를 보던 학부모들은 “저기 여자애도 있다”라며 놀라워했다. “신경 쓰이지는 않아요. 여기 여자 선수가 있는 건 사실이니까(웃음).” 지난해 전국여자야구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사회인 야구팀 ‘블랙펄스’에서 유일한 고등학생으로 뛰고 있는 그는 실력보다 여자 선수라는 사실 하나로 주목받는 게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잘해야 해요. 남학생들은 여자 야구선수를 저밖에 못 봤으니까 제가 못하면 ‘여자 야구 수준이 저거밖에 안 돼?’ 할 거고, 반대로 여자 경기에서 제가 못하면 ‘남학생들이랑 같이 뛴다더니 저거밖에 못해?’ 생각할 테니까요.”

경기 화성시 나루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손가은 선수는 평일에는 여느 학생처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학교 수업을 듣는다. 일주일에 한 번 야구 레슨을 받고, 토요일마다 취미로 야구를 즐기는 여러 고등학교 학생들로 이루어진 화성동탄 BC 선수로 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여자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 2학년 때 국가대표팀 상비군 선수로 발탁되기도 한 그는 올해가 마지막인 고교야구 선수 생활에 집중하기 위해 국가대표팀 선발전에 지원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앞으로도 야구를 쭉 하고 싶다는 딸의 선택을 응원하지만, 미래가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여자 야구 고교팀은 물론 실업팀, 프로팀도 없는 현실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없으면 감독님이 라인업 짤 때 고민하는 선수, ‘얘 없으면 안 되겠다’ 싶은 그런 선수”로 활약하다 “리틀야구단이나 유소년 팀에서 코치나 감독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은” 손가은 선수의 꿈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제 스스로도 좀 신기한데, 앞일은 별로 생각하지 않아요. 마지막 남은 1년 동안 고교야구 경기에서 어떻게 안타를 칠까, 방망이를 돌리다 보면 하나쯤은 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해요.”

나경희 기자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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