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사람을 바꾼다, 음악이 세상을 바꾼다 [음란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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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기능을 상실한 사람들이 있다.
"음악은 사람들에게 강력한 효과를 발휘합니다. 음악을 들을 때 뇌가 활성화되는 영역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곳이에요. 이런 이유로 음악은 정신건강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문화라고 할 수 있죠(〈소리와 음악 사이〉 중)."
"음악을 많이 들어야 해. 그래야 사람이 선해져."
'사람들과의 음악 활동이 신뢰와 협동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제목의 논문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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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기능을 상실한 사람들이 있다. 치료사가 붙어 회복을 돕는 과정은 당연히 필수다. 한데 이 치료사들이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도구가 있다. 바로 음악이다. 예를 한번 들어볼까. 만약 누군가 “안녕하세요?”라는 문장을 말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치료사는 거기에 멜로디를 부여한다. 그냥 “안녕하세요?”를 발화하는 것보다 선율을 입힐 경우 회복 속도가 압도적으로 빠르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입을 모아 증언한다. 음악이 단지 감상용을 넘어 치료용으로 널리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음악은 정말이지 탁월한 자극제다. 뇌를 자극해서 육체를 움직이게 한다. 파킨슨병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신체를 보다 부드럽게 움직이는 데 음악은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놀라워요. 평소엔 할 수 없는데 음악을 들으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이 생기면서 움직일 수 있게 되거든요.” 〈소리와 음악 사이〉라는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한 할머니의 고백이다. 넷플릭스 프로그램 〈익스플레인: 세계를 해설하다〉 중 한 회차로 나온다.
물론 맹신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아이를 더 스마트하게 키울 수 있다”라는 믿음은 잘못된 신화다.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다. 내가 증명한다. 우리 아버지는 클래식광이었다. 안타깝게도 그 아들은 그렇게 스마트하지 못하다. 아, 딱 하나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많이 접한 아이들의 언어 습득력이 그렇지 못한 경우보다 훨씬 낫다고 한다. 물론 장르는 무관하다.
그렇다면 인간 외의 영장류는 어떨까. 영장류도 음악에 반응한다. 그러나 두 가지 측면에서 인간과는 다르다. 먼저, 영장류에게는 인간과 비슷한 수준의 박자 감각이 없다. 우리는 음악에 맞춰 몸을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영장류를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인간은 아기 시절에도 음악에 맞춰서 몸을 흔들 줄 안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는 단순한 반응에 있지 않다. 이 점이 중요하다. 놀랍게도 오직 인간만이 음악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음악은 사람들에게 강력한 효과를 발휘합니다. 음악을 들을 때 뇌가 활성화되는 영역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곳이에요. 이런 이유로 음악은 정신건강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문화라고 할 수 있죠(〈소리와 음악 사이〉 중).”
내가 가장 자주 언급하는 음악 관련한 실험은 다음과 같다. 과학자들이 한 가지 상황 속에 서로 다른 두 조건을 설정하고 사람들의 반응을 기록했다. 우선 동일한 상황은 누군가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 다른 조건은 음악이 흐르고 있는 경우와 음악이 흐르고 있지 않은 경우였다.
반복 실험을 거친 결과 과학자들은 단언할 수 있었다. “음악이 흐르는 상황 속에서 인간은 타인에게 압도적으로 친절해진다.” 이 실험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친한 PD가 농담처럼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음악을 많이 들어야 해. 그래야 사람이 선해져.”
처음엔 그저 웃고 넘겼다. 그러나 이제는 그의 말을 믿는다.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디플롯)에서 과학자들은 여러 사례를 들면서 “인류의 진화를 이끈 건 약육강식이 아닌 타인에 대한 다정함이었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사람들과의 음악 활동이 신뢰와 협동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제목의 논문도 존재한다. 과연 그렇다. 우리는 음악을 들어야 한다. 음악을 통해 나라는 장벽을 넘어 타인이라는 세계와 만나야 한다. 조금 과장해서, 인류의 미래가 거기에 달려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다.
※이번 호로 ‘배순탁의 음란서생’ 연재를 마칩니다. 수고해주신 필자와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배순탁 (음악평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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