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맞짱]③파운드리 '왕좌의 게임'…승부처는 'AI'

백유진 2024. 6. 21.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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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최고 파운드리 TSMC, 1위 독주 지속
맞춤형으로 시장 변화…AI, 게임 체인저 주목
/그래픽=비즈워치
최근 반도체 업계 내 갈등이 격화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어려운 업황을 더욱 혹독하게 만든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은 아직 현재진행형이고, 업황을 살려낸 AI 반도체를 둘러싼 제조사들의 경쟁도 치열합니다. 시스템 반도체를 제조하는 파운드리(위탁생산) 시장에서도 수위를 사수하려는 1등과 이를 뺏기 위한 후발주자의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재 반도체 업계에서 벌어지는 '맞짱' 대결의 전말을 쉽게 풀어드립니다.[편집자]

틈새시장 잡아낸 TSMC

반도체 기업 형태는 크게 IDM(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 팹리스(Fabless), 파운드리(Foundry) 등으로 구분됩니다. IDM은 반도체 설계부터 완제품 생산까지 전 공정을 자체적으로 수행하는 종합 반도체 기업을 말하고요. 팹리스는 반도체를 직접 생산하지 않고 개발과 설계만을 담당하는 업체입니다. 

팹리스로부터 반도체 제조를 위탁받아 생산해 공급하는 곳이 파운드리입니다. 일반 제조업의 OEM(주문자위탁생산) 방식과 비슷한 개념인데요. 반도체 제조설비에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갑니다. 모든 기업이 반도체 제조설비를 직접 보유하고 생산하기 어려운 이유죠. 제조를 파운드리 업체에 넘기면서 팹리스 업체들은 첨단 기술 연구 개발(R&D)에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파운드리 사업은 1980년대 미국에서 공장 지을 돈이 없던 벤처 팹리스 업체들이 급증하며 시작됐습니다. 사업을 창조한 것은 대만의 TSMC인데요. TSMC는 당시 반도체 시장을 장악한 미국, 일본과 설계 기술력을 놓고 경쟁하는 대신, 이들과 손을 잡는 길을 택했습니다. 

당시 신생 팹리스 회사들은 제조설비를 갖춘 대기업에 제작을 의뢰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 과정에서 디자인·설계 기술 이전을 강요당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이에 TSMC는 다른 반도체 기업으로부터 설계도를 받아 위탁생산만 하는 파운드리 사업이 유망하다고 봤습니다. 위탁생산 업체인만큼 기술 유출 위험이 현저히 적기 때문이죠.

이같은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집니다. 1990년대 TSMC는 내로라하는 팹리스 업체의 러브콜이 이어지며 성장 흐름을 타기 시작했는데요. 1992년에는 초창기 출자받은 정부 지분을 처분, 민간 기업으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이어 2010년대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팹리스 회사를 지향하면서, TSMC는 급속도로 덩치를 키웠습니다. 

/사진=TSMC 제공

최초의 파운드리 업체로 틈새시장 공략에 성공한 TSMC는 지금까지도 전 세계 1위 파운드리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데요. 그 이유는 '고객사'에 있습니다. TSMC는 주요 빅테크 기업을 고객사로 확보하고 있는데요.

대표적인 게 애플과 엔비디아입니다. 애플은 2014년 출시한 아이폰6부터 TSMC에 칩셋 생산을 맡기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도 TSMC 매출의 절반가량은 애플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죠. 최근 AI(인공지능) 반도체 시장을 이끌고 있는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도 TSMC가 도맡아 생산하고 있습니다.

1위의 독주는 계속된다

AI 시대에는 파운드리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될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빅테크들이 자사 제품과 서비스에 최적화된 반도체를 자체 설계하려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체 설계한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전문성 있는 파운드리 업체의 몸값이 올라갈 수밖에 없겠죠. 

특히 AI 반도체 시장의 핵심은 '맞춤형'입니다. 이전까지 반도체 시장은 제조사가 특정 제품을 개발해 공급하는, 범용 제품 위주 구조였는데요. AI 반도체의 경우 성능·용량 등 고객이 요구하는 성능이 다양합니다.

최태원 SK 그룹 회장(왼쪽)과 TSMC 웨이저자 회장이 대만 타이베이 TSMC 본사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SK그룹 제공

최근 SK하이닉스가 TSMC의 손을 잡은 것도 이 때문인데요. SK하이닉스가 강점을 지닌 HBM 기술력에 TSMC의 특허 기술을 더해 고객 맞춤형 수요에 대응한다는 전략입니다. SK하이닉스는 5세대 HBM(고대역폭메모리)인 HBM3E까지 자체 공정으로 베이스 다이를 만들었는데요. 차세대 제품인 HBM4부터는 TSMC가 특허권을 갖고 있는 고유의 공정인 CoWoS(Chip on Wafer on Substrate) 기술을 활용할 예정입니다.

SK하이닉스 측은 "이 기술을 초미세 공정을 적용하면 다양한 기능을 추가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성능과 전력 효율 등 고객들의 폭넓은 요구에 부합하는 맞춤형 HBM을 생산할 계획"이라고 설명했습니다.

AI 열풍에 따라 TSMC의 4나노미터(㎚)와 5㎚ 공정을 기반으로 반도체를 생산하려는 고객들의 주문이 쏠리면서 TSMC의 실적 상승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1분기 TSMC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6.5% 증가한 5926억4400만 대만달러(약 25조3000억원)로 집계됐고요. 순이익 역시 9% 증가한 2255억 대만달러(약 9조6000억원)를 기록했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AI 반도체가 TSMC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10%에 이를 전망인데요. 이는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준입니다. 이어 앞으로 5년간 AI 반도체 매출이 연평균 50% 성장해 2028년에는 20%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죠.

/그래픽=비즈워치

멀고 먼 '파운드리 1위'

삼성전자는 기술력을 앞세워 TSMC에 도전하고 있는데요. 특히 삼성전자가 TSMC를 따라잡기 위해 내세운 기술은 '게이트올어라운드(GAA)'입니다. GAA는 기존 공정인 핀펫(FinFET)보다 전력 효율이 높은 차세대 기술인데요. 핀펫보다 게이트와 채널의 접점 면적이 넓어져 더 정교하게 전류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데이터 처리 속도가 빠르고 전력 효율이 높은 것이 특징입니다.

TSMC는 2나노 공정부터 GAA 기술을 도입하기로 한 반면, 삼성전자는 이미 지난 2022년 양산을 시작한 3나노 공정부터 GAA 공법을 도입해 수율을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5월 당시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장이었던 경계현 전 부문장이 대전 카이스트(KAIST)에서 진행한 특별 강연에서 "TSMC가 2나노 공정에 들어오는 시점부터는 앞설 수 있다"며 "5년 안에 한 번 해보겠다”고 강조하기도 한 것도 GAA 기술에 대한 자신감 덕분이었죠.

/그래픽=비즈워치

하지만 삼성전자에게 아직도 TSMC라는 벽은 높기만 합니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TSMC의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61.7%로 전 분기 대비 0.5%P(포인트) 올랐습니다.

이에 비해 같은 기간 삼성전자는 전 분기 대비 0.3% 하락한 11%의 점유율로 2위를 차지했는데요. 이에 삼성전자와 TSMC 간 파운드리 점유율 격차는 기존 49.9%에서 50.7%로 벌어졌습니다. 시장 2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1위와의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모양새죠.

이는 고객사 부재 탓이 큽니다. 파운드리는 철저한 수주형 산업이기 때문에, 고객사의 주문이 없다면 기술력이 뛰어나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삼성전자는 아직 2·3나노 등 첨단 공정에서 이렇다 할 빅테크 고객사의 주문을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지는데요. 장기간 축적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고객사와 오랜 신뢰를 쌓아온 TSMC에 비해, 삼성전자는 상대적으로 업력이 짧아 경쟁에 불리한 상황이죠.

뿐만 아니라 삼성전자가 TSMC처럼 순수 파운드리 업체가 아니라는 것도 약점으로 꼽힙니다. 반도체 설계와 생산을 병행하는 삼성전자의 사업 구조 특성상 순수 파운드리 사업에만 집중하는 TSMC의 시장 지배력을 따라잡는 것은 무리가 있겠죠. 더군다나 파운드리 업체가 팹리스 사업도 영위하고 있다면, 순수 팹리스 업체들은 기술 유출에 대해 우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사업부를 분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이유죠.

AI가 흐름 바꿀까

다만 최근에는 이러한 단점이 오히려 장점으로 바뀔 수 있다는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는데요. AI 반도체 시장에서는 종합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가 오히려 유리할 수 있다는 겁니다. 파운드리, 메모리, 패키지를 통합해 맞춤형 칩 수요에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특히 이는 파운드리 1위인 TSMC가 절대로 갖출 수 없는, 삼성전자만 할 수 있는 차별화 전략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은데요. 현재 삼성전자는 파운드리와 메모리, 어드밴스드 패키지 사업을 모두 보유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업계에서 직접 설계한 반도체 회로를 직접 제조하고 패키징해 공급할 수 있는 곳은 삼성전자가 유일하죠.

지난 12일(현지시각)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삼성 파운드리 포럼 2024'에서 삼성전자가 'AI 솔루션 턴키 서비스'를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일 겁니다.

이날 최시영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 사장은 지고연설에서 "AI를 중심으로 모든 기술이 혁명적으로 변하는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건 AI 구현을 가능하게 하는 고성능·저전력 반도체"라며 "삼성전자는 AI 반도체에 최적화된 GAA 공정 기술과 적은 전력 소비로도 고속 데이터 처리가 가능한 광학 소자 기술 등을 통해 AI 시대에 고객들이 필요로 하는 원스톱 AI 솔루션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삼성 AI 솔루션./사진=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메모리, 패키지 사업 분야간 협력을 통해 고성능·저전력·고대역폭 강점을 갖춘 통합 AI 솔루션을 선보일 계획입니다. 이를 활용하면 파운드리, 메모리, 패키지 업체를 각각 사용하는 것보다 칩 개발부터 생산에 걸리는 시간을 약 20% 단축할 수 있다는 게 삼성전자 측 설명입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의 고객사 확보에도 초록불이 켜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KB증권은 삼성 파운드리 고객 수가 지난 2022년 100개에서 오는 2026년에는 169개, 2028년에는 210개에 달할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6년 만에 고객사가 2배 이상 증가한다는 것이죠. 더불어 AI 반도체 수요 증가에 힘입어 2028년 삼성 파운드리 점유율은 24%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게 KB증권의 관측입니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올해 삼성 파운드리 매출은 전년 대비 최대 26% 성장할 것으로 예상돼 TSMC 최대 매출 증가율(25%)과 유사할 전망"이라며 "선단 공정의 선택지가 제한적인 상태에서, GAA 공정 안정성 측면에서 TSMC 대비 상대적 우위에 있는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점유율은 지난해 12%에서 5년 만에 2배 확대가 기대된다"고 내다봤습니다.[시리즈 끝]

백유진 (byj@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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