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폭염]②날씨 예측 불가…일주일 아닌 '2박3일' 휴가 쪼개는 MZ
'폭염·폭우 동시에' 이상기후 한반도 관통…"극단적 기후 계속"
[편집자주] 아직 한여름은 시작도 안 했지만 최고 기온 기록이 경신되고 있다. '가마솥더위' '불볕더위'라는 표현으론 부족하다. 말 그대로 무더위 기세가 '괴물'에 가깝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괴물폭염'이 바꿔놓은 일상을 들여다봤다.
(서울=뉴스1) 김예원 유수연 기자 = "일주일 통으로 휴가 쓰면 날씨 영향을 너무 받아서요. 더위와 비가 오락가락하잖아요."
경기 성남시에 거주하는 직장인 백세은 씨(25)는 올해 8월 여름휴가 일정을 어떻게 짜야 할지 고민이다. 몇 년 전부터 더위와 비 소식이 며칠 단위로 번갈아 들려오는 통에 자칫 일주일 넘는 장기 휴가를 갔다가 아까운 기회를 날릴 수 있어서다.
백 씨는 "비 오는 날과 휴가가 겹치기 싫어서 지난해엔 7월에 이틀, 8월에 3일 이런 식으로 휴가를 나눠 썼다"며 "올해도 날씨를 고려해서 어디로 놀러 갈지 정한 뒤 계획을 짜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 수원시에 사는 대학생 박예림 씨(21)는 올해 여름 방학 때 야구 관람 일정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걱정하고 있다. 박 씨는 "야구는 비가 오면 경기가 취소돼 장마철도 피해야 하고, 너무 더우면 관람에 문제가 생겨서 날짜를 정하기 까다롭다"며 "지난해 우천으로만 인한 경기 취소만 다섯 번이나 됐다. 기상청 예보를 참고해도 변수가 많아졌다"고 털어놨다.
폭염과 폭우가 동시에 찾아오는 이상기후가 여름 한반도를 관통하면서 휴가를 계획하는 직장인들이 고민에 빠졌다. 최근 몇 년간 기상 변수로 집중 호우 및 장마 예측이 어려워지고 장마 전 폭염도 일찍 찾아오는 탓에 봄, 가을 휴가로 일정을 변경하거나 단기 휴가를 여러 번 갔다 오는 등 대비책을 강구하는 모습이다.
이런 선택엔 최근 몇 년간 한반도에 자리 잡은 이상 기후가 그 배경으로 꼽힌다. 지난 19일 서울에는 올해 첫 폭염 특보가 발효되고 중부 지역엔 낮 기온이 35도 안팎으로 오르는 등 무더위가 지속됐다. 반면 같은 날 제주도는 시간당 최대 200㎜, 호남 및 경남은 최대 20㎜의 비가 내리는 등 상반된 날씨가 이어졌다.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은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는 장마,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는 뙤약볕이 이어지는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적 여름의 모습이 최근 바뀌고 있다"며 "앞으론 집중호우 및 높은 습도로 인한 무더위 등 양극단의 날씨가 번갈아 나타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국립기상과학원 예보연구부는 지난해 열린 한국기상학회 학술대회에서 "기후 위기가 심화하며 여름철 집중호우 등 이전엔 한반도에서 볼 수 없었던 형태의 이상 기후가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다"며 2021년, 2022년 장마가 끝나고 비가 더 많이 내린 점 등을 예시로 들었다.
이런 날씨가 지속되자 아예 늦봄 또는 초가을 무렵으로 휴가를 조정하는 직장인들도 적지 않다.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직장인 장 모 씨(33)는 올해 5월 중순쯤 제주도로 미리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장 씨는 "몇 년 전부터 한여름엔 시원한 사무실에서 에어컨을 쐬고, 봄이나 가을에 야외 활동이 활발한 휴가를 가는 식으로 하고 있다"며 "더운 날씨가 길어지니 늦가을쯤에 휴가를 가도 여름휴가 못지않은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조 모 씨(26)도 "지난해 여름 제주도에 태풍이 찾아와서 휴가 끝나고도 못 올라오는 경우를 주위에서 왕왕 봤다"며 "여름이 본격적으로 오기 전인 5월에 미리 휴가를 즐기고 7월엔 평소처럼 일하려 한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직장인 윤 모 씨(28)는 날씨 변수를 고려해 아예 실내 활동 위주로 여름휴가를 보낼 생각이다. 윤 씨는 "부모님이랑 휴가를 보내는데, 이번에 너무 덥기도 하고 비도 많이 올 것 같다고 9월쯤 실내 활동 위주로 2박3일 가량 휴가를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오락가락하는 날씨가 신경 쓰이기는 여름 축제를 준비하는 지자체들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야외 축제인 탓에 한낮 무더위가 이어지면 사람들의 발걸음도 줄어들뿐더러, 여름철 개화 시기 등을 이용한 꽃 축제의 경우 날씨에 따라 축제의 성공 여부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한 꽃 축제 담당자는 "꽃이 피고 지는 게 사람 마음대로 안 되지 않나. 6월에 하려던 축제였는데 꽃이 늦게 펴서 7월로 연기했다"며 "폭우가 이어지면 다음 주로 연기를 하던지 등 일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원도의 한 지역축제 담당자는 "아무래도 해가 비치는 시간에 유동 인구가 가장 적고 쉼터에서 쉬시는 분들이 많으시다"며 "일사병 등 온열질환을 대비해 구급차 항시 대기, 보건소 인력 배치 등 대비에 만전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kimye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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