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정당정치는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나 [책&생각]

한겨레 2024. 6. 21.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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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들이 발명했다고 주장하는 민주주의는 폭정에 맞선 저항을 바탕으로 태어났으나 처음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민주적 권리를 위한 운동이 열정적으로 태동하던 1800년대 중엽까지, 서구 세계에서 민주주의는 유럽 문명이 쌓아 올린 모든 문명적 가치를 일거에 파괴할 수도 있는 평범하고 야만적인 사람들의 중우정치와 연관된 위험한 이념이자 제도로 인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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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삶과 죽음
대의 민주주의에서 파수꾼 민주주의로
존 킨 지음, 양현수 옮김 l 교양인(2017)

그리스인들이 발명했다고 주장하는 민주주의는 폭정에 맞선 저항을 바탕으로 태어났으나 처음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민주적 권리를 위한 운동이 열정적으로 태동하던 1800년대 중엽까지, 서구 세계에서 민주주의는 유럽 문명이 쌓아 올린 모든 문명적 가치를 일거에 파괴할 수도 있는 평범하고 야만적인 사람들의 중우정치와 연관된 위험한 이념이자 제도로 인식되었다. 민주주의는 그런 염려 속에서도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재산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격렬한, 때로는 폭력적인 투쟁을 거쳐 오늘날에 이른다.

민주주의는 파시즘의 위협이라는 20세기 전반기의 심각한 위협을 극복하고, 세계적인 탈식민화가 진행되면서 1950년에 이르러 점차 널리 확산되어 갔다. 2차대전 이후에야 비로소 아시아와 아프리카 식민지 인민들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성숙했다고 인정받을 수 있었다. 대한민국 역시 그런 국가 중 하나였다. ‘프리덤하우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20세기 말을 기준으로 유엔에 가입한 192개 국가 가운데 119개 국가가 어쨌든 ‘선거 민주주의’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민주주의의 세계사적 승리를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와 보통선거를 채택한 수많은 국가에서 시민의 정치적 권리가 제도적으로 소외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실제로 선거 때마다 빠짐없이 투표권을 행사하는 유권자들조차도, 민주적인 선거제도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제한하고 의도를 왜곡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있다. 이른바 ‘웨스트민스터 모델’(다수제 민주주의)에 기초한 정치제도를 선택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유권자들은 어쩔 수 없이 차악을 선택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주요 정당 간에 실질적인 정책 차이가 없기 때문에 정치는 인물 중심으로 돌고 돌며, 상대방이 얼마나 비열하고 하찮은 인간인가를 증명하는 데 끝없는 노력을 기울이는 일이 선거마다 반복된다. 한국의 선거제도 역시 매우 유사한 정치이념을 가지고 풍부한 정치자금을 지원받는 양대 정당으로 선택의 폭을 제한하며, 정치인들은 ‘모두 똑같다’는 대중의 인식을 강화시켜왔다.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의 후퇴를 이야기하고, 정당정치가 위축되는 현상을 빚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민주주의의 위기가 이야기될 때마다 대중의 정치적 참여와 감시만이 민주주의를 위기로부터 구원할 수 있다는 주장을 들어왔다. 흥미로운 점은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유권자의 정치적 무관심과 정당정치의 위축으로 민주주의의 위기란 말이 들려오는 시점에서 유난히 한국에서만 양대 정당의 당원 수가 증가하는 중이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전두환 시대 민정당처럼 명부에 이름만 올리고 당비를 내지 않는 유령 당원도 아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당원 중심의 대중정당’, “당심이 곧 민심”이기 때문에 국회의장도 다수당의 당원 투표로 선출하자는 말이 들려온다. 이것만 보면 오늘날 대한민국은 훌륭한 정당 민주주의가 실천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정말 현실도 그런가? 불과 1년 반쯤 전 국민의힘은 국민 여론조사를 빼고 당원 100% 투표로 대표를 선출했었다. 그 결과가 지난 총선이었다. 과연 오늘날 대한민국의 선거제도는 민의를 온전히 반영하고 있는가? 양대 정당의 당원이 아닌 국민의 마음은 정당정치에 반영될 필요가 없는 것인가? 민주주의는 본래 제도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어야 하지만, 지금 우리는 먼저 민의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제도부터 만들어야 한다.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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