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데 진심인 시와 소설의 오마주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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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최진영(43)의 3년여 보폭은 단연 두드러진다.
최진영의 소설은 살리는 데 있고자 해서일 거다.
"이번 시집의 시를 쓰는 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는 시인의 고백과도 동닿는데, 흔한 수사에 출처를 애써 '최진영'이라 밝힌 건, 시의 마음이 바로 소설의 마음이고 지금 문학의 마음이길 바란 때문 아닐까.
안희연의 "무척 절박했던" 저 믿음이 최진영의 새 단편집 '쓰게 될 것'에서 또 고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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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게 될 것
최진영 지음 l 안온북스 l 1만6800원
당근밭 걷기
안희연 지음 l 문학동네 l 1만2000원
소설가 최진영(43)의 3년여 보폭은 단연 두드러진다. 타작품 추천사, 강연, 도서전에서도 분주하되 매사 곡진하다. 최진영의 소설은 살리는 데 있고자 해서일 거다. 지난해 장편 ‘단 한 사람’이 가장 최근 증거다.
“단 한 사람”은 시인 안희연(38)이 4년 만에 펴낸 시집 ‘당근밭 걷기’에도 등장(시 ‘긍휼의 뜻’)한다. “이번 시집의 시를 쓰는 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는 시인의 고백과도 동닿는데, 흔한 수사에 출처를 애써 ‘최진영’이라 밝힌 건, 시의 마음이 바로 소설의 마음이고 지금 문학의 마음이길 바란 때문 아닐까.
“결말은 필요 없어요/ 협곡을 뛰어넘기 위해 필요한 건 두 다리가 아니에요// 여기 이렇게 주저앉아/ 깊어져가는 계단이면 돼요/ 단춧구멍만한 믿음이면 돼요”(‘미결’ 중)
“솥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신기를 신비로 바꿔 말하는 연습을 하며 솥을 지킨다/ 떠나지 않는 사람이 된다는 것/ 내겐 그것이 중요하다” (‘굉장한 삶’ 중)
안희연의 “무척 절박했던” 저 믿음이 최진영의 새 단편집 ‘쓰게 될 것’에서 또 고스란하다. 누구도 어른답지 못해 누구도 살릴 수 없다는 디스토피아 대신, 누구든 살리고자 누구든 어른다울 수 있다는 미래상이 최진영의 태도다. 지난 3년치 8편은 ‘어른됨’으로 관통되고, 가장 먼저 쓰인 ‘유진’(2020)을 거듭 봐야 하는 이유가 된다.
고교 시절 친구에 대한 죄책감, 질투가 영향을 미친 탓인지 어떤 열의나 사람에 대한 신뢰 없이 대학에 진학한 최유진. 그가 새삼 농담까지 건네고 자신을 드러내게 한 이 있었으니, 아르바이트하게 된 레스토랑의 40대 매니저 이유진이다. 권위가 우아하게 넘치던 매니저는 영업 종료하면 고급 향수를 뿌린 한없이 다정한 언니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유진이 세 사는 지하방을 여섯 아르바이트생들이 다녀간 뒤로, 레스토랑의 격조, 위엄, 화목 따위 ‘분위기’는 퇴색해버린다. 이유진은 20대들의 이런 태도를 훌닦지도 바로잡지도 않았다. 거의 20년 만에 부고로 듣게 된 이름 이유진은 이제 40대가 된 최유진에게 어른다움을 아득히 되짚게 한다. “우울감과 무기력은 내 몸을 통째로 받아들이는 안락한 소파였다”던 한 시절의 최유진에게 이유진은 또 다른 소파였으나 최유진은 누군가에게 그랬던가, 그러는가.
어떤 재앙에도 동생 여름(썸머)을 지키겠다는 언니 봄의 이야기 ‘썸머의 마술과학’, 전쟁 중 아이를 지킨 엄마가 이제 살아남아 어른이 된 ‘나’로 이어지는 (그래서 지키기 위해 총도) ‘쓰게 될 것’, 소녀의 첫사랑에 개입하는 어른 서진의 ‘ㅊㅅㄹ’ 등은 훨씬 결연한 ‘살림’의 형상이며, 기어코 ‘삶’을 ‘쓰게 될 것’이란 최진영의 문학관을 구성한다. “살아야 한다면 사는 게 낫다.”
2022년 단편들이 빼어나다. ‘홈 스위트 홈’과 ‘썸머의 마술과학’. 단편집에 묶이니 새 맥락이 더해진다. 가사 ‘홈 스위트 홈’의 과거가 ‘차고 뜨거운’이라 해도 좋겠다. ‘썸머의 마술과학’에서 시 쓰는 엄마를 시인 안희연이라 한들 무슨 문제겠는가. 사람 살리는 문학들의 계주를 상상해본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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