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역사의 기관차다” [책&생각]

고명섭 기자 2024. 6. 21.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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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엥겔스 학술 정본 ‘메가’
한국어 번역본 2차분 3년 만에 출간
‘프랑스 계급투쟁’ ‘독일 농민전쟁’
1850년 전후에 쓴 중요 문헌 망라
과학적 사회주의 이론의 창시자 카를 마르크스(1818~1883). 위키미디어 코먼스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저작‧기고문‧초안
1849년 7월부터 1851년 6월까지
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이회진‧최호영‧서익진‧강신준 옮김 l 길 l 별책 포함 10만원

2021년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의 학술 정본인 ‘마르크스 엥겔스 전집’(MEGA, 메가)의 첫 한국어 번역본(전집 제2부 제3권 제1분책과 제2분책)이 출간된 이후 3년 만에 두 번째 번역본(전집 제1부 제10권)이 나왔다. 마르크스 사상 연구자 이회진(한국연구재단 인문학술연구교수)이 최호영(중앙대 중앙철학연구소 선임연구원), 서익진(프랑스 그르노블사회과학대학 경제학 박사), 강신준(동아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과 함께 우리말로 옮기고 책임편집자로서 번역문 전체를 수정했다.

메가판은 그동안 국내 번역본의 저본으로 통용되던 ‘마르크스 엥겔스 저작집’(MEW, 메프)과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 핵심은 엄밀한 문헌학적 고증을 거쳐 텍스트 자체를 애초의 모습 그대로 복원하고,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술을 빠짐없이 모두 한자리에 모았다는 데 있다. 이번에 나온 ‘전집 제1부 제10권’에서도 문헌학적 엄밀성과 저술 복원의 정밀성에 들인 공력이 그대로 확인된다. 해당 문헌들을 연대순으로 편집한 본문을 한 권에 담고, 본문의 집필 과정과 전승 과정, 텍스트의 변경사항과 교정사항, 주석과 해설을 별책에 담았다.

‘전집 제1부 제10권’은 1849년 7월부터 1851년 6월까지 2년 동안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쓴 저술 가운데, 사적인 편지를 뺀 모든 글을 연대순으로 묶었다. 이 책의 부제가 알려주는 대로, 여기에는 마르크스가 쓴 ‘1848년에서 1850년까지 프랑스 계급투쟁’, 엥겔스가 쓴 ‘독일 제국헌법투쟁’과 ‘독일 농민전쟁’ 같은 중요한 문헌이 들어 있다. 문헌들이 작성된 시기는 마르크스가 유럽의 반혁명 물결에 떠밀려 런던으로 망명한 때와 겹친다. 1849년 8월 런던에 도착한 마르크스에게는 일생에 가장 궁핍한 시기가 닥쳤고 경찰의 감시와 압박이 일상을 짓눌렀다.

그러는 중에도 마르크스는 최초의 국제적 공산주의 운동단체인 ‘공산주의자동맹’의 의장으로서 엥겔스와 함께 활동했다. 이 책에는 그 시절 공산주의자동맹 내부의 사상적‧실천적 갈등을 소상히 보여주는 회의록이 실려 있다. 이런 조직 활동에 더해 마르크스는 독일에서 펴내던 ‘신라인신문’의 뒤를 이어 ‘신라인신문-정치경제 평론’을 발행했다. 1850년 1년 동안 모두 6호까지 나온 이 간행물에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여러 편의 논문과 평론을 발표했는데, 여기에 실린 글들이 ‘전집 제1부 제10권’의 몸통을 이룬다. 이 글들에는 당대의 중요한 정치적‧사상적 문제에 대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이론적‧실천적 개입 양상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

이 시기에 마르크스가 쓴 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글이 ‘1848년에서 1850년까지 프랑스 계급투쟁’일 것이다. 이 글은 마르크스 문헌사 차원에서 보면 ‘공산당선언’(1848)과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1852) 사이에 놓인다. 1848년 프랑스 2월혁명이 ‘7월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회복한 뒤 혁명이 유럽으로 번져 나가다 나폴레옹의 조카 루이 보나파르트가 프랑스 공화국 대통령으로 당선돼 점차 반동화하는 격변의 시기를 다룬다. 마르크스는 이 글에서 자신이 세운 ‘역사적 유물론’을 동시대의 역사를 분석하는 데 처음으로 적용했다. 통상의 역사서술이 정치적 사건을 정치세력 사이의 갈등을 중심에 두고 서술하는 것과 달리, 이 글은 ‘토대와 상부구조’의 틀에서 정치적 사건을 경제적 토대로 소급해 설명한다. 근본 대립은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의 대립이다. 마르크스는 이 대립을 토대로 삼아 거기에서 파생하는 수많은 계급적 갈등을 통해 정치적 사건의 변화를 서술한다.

마르크스가 이 글에서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사명’ 가운데 하나로 ‘프롤레타리아트 계급 독재’라는 개념을 처음 제출한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계급차별을 전면적으로 폐지하는 데 더해 계급차별에 기초한 생산관계 전체를 폐지하고, 생산관계에 상응하는 사회관계 전체를 폐지하며, 사회관계에서 유래한 이념 전체를 전복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역사적 단계로 규정한다. 마르크스주의 변혁론의 가장 중요한 테제가 여기서 처음 등장한 것이다.

“혁명은 역사의 기관차다”라는 마르크스의 유명한 문장도 이 글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 혁명은 단순히 혁명가들의 주관적 의지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고 객관적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에야 일어날 수 있다. 그 문제에 대한 논의를 이 책에 실린 다른 글(‘평론: 1850년 5월에서 10월까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혁명의 요건으로 “근대의 생산력과 부르주아적 생산 형태가 서로 모순에 빠지는” 상황을 거론한다.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새로운 공황”으로 폭발할 때 그 결과로서 혁명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런 객관적 조건을 무시한 채 혁명을 일으키려는 시도는 모두 완강한 장벽에 부딪혀 “튕겨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론가의 머리와 혁명가의 심장이 언제나 하나를 이루는 것은 아님도 이 책은 알려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론가로서는 혁명의 객관적 조건을 강조했지만, 혁명가로서는 당대의 자본주의가 충분히 발전해 프롤레타리아혁명의 시기가 무르익어가고 있다는 전망을 놓지 않았다. 훗날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프랑스 계급투쟁’을 책으로 펴낼 때(1895년) ‘서문’에 이렇게 썼다. “역사는 우리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모든 사람이 틀렸음을 증명했다. 역사는 당시 대륙의 경제발전 수준이 자본주의적 생산을 철폐할 만큼 성숙하기에는 아직 한참 멀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 책 속의 마르크스 이론에는 빛과 함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구사하는 강렬한 문체에는 그 그림자를 뚫고 독자를 끌어당기는 힘이 여전히 있다. 루이 보나파르트 치하의 프랑스 부르주아지의 모습을 묘사하는 문장이 사례가 될 만하다. “부르주아지는 젊은 시절의 힘을 되찾기 위해 어렸을 때 옷을 끄집어내 자신의 노쇠한 사지에 걸치고 억지로 즐거워하려는 노인네와 같다.” 그 늙은 부르주아지의 공화국이 역사에 이바지하는 바가 하나 있는데, ‘혁명을 키우는 온실’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문장을 읽은 당대 독자들의 마음에 노쇠한 부르주아지의 나라를 하루라도 빨리 치우고 혁명을 불러와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일었음 직하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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