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평화 시대, 저마다 사랑을 탐닉했다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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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톨트 브레히트는 1929년 자신의 결혼 소식에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한 애인 엘리자베트 하우프트만이 쓴 희곡 '해피 엔드'를 연극 무대에 올리며 또다른 애인 카롤라 네어에게 주연을, 아내 헬레네 바이겔에게 조연을 맡겼다.
1차대전 직전 유럽의 문화사·정신사를 독특한 필치로 담아낸 '1913년 세기의 여름'으로 주목받은 독일 작가 플로리안 일리스는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에서 2차대전 발발하기 전 10년 동안 다채로운 인물들이 벌였던 사랑 행각들을 총망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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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
감정의 연대기 1929~1939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l 문학동네 l 3만원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1929년 자신의 결혼 소식에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한 애인 엘리자베트 하우프트만이 쓴 희곡 ‘해피 엔드’를 연극 무대에 올리며 또다른 애인 카롤라 네어에게 주연을, 아내 헬레네 바이겔에게 조연을 맡겼다. 남자 주연은 전 부인 마리안네 초프의 새 남편이자 자기 딸 한네의 계부였다. ‘질투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한때 비극적이었던 이런 성향을 오늘날까지 지니고 있는 건 속물들뿐입니다.”
1차대전 직전 유럽의 문화사·정신사를 독특한 필치로 담아낸 ‘1913년 세기의 여름’으로 주목받은 독일 작가 플로리안 일리스는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에서 2차대전 발발하기 전 10년 동안 다채로운 인물들이 벌였던 사랑 행각들을 총망라한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성사되지 못한 만남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토마스 만과 그의 자녀 클라우스·에리카 만, 스콧·젤다 피츠제럴드 부부, 파블로 피카소, 마를레네 디트리히, 한나 아렌트 등 수많은 명사들의 사랑 이야기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진행한다. 불륜과 배신, 이성애·동성애·양성애 등으로 얽히고설킨, 광기 어린 ‘즉물적 로맨스’의 모습들은 오늘날 ‘막장’ 드라마를 가볍게 넘어선다.
지은이는 이 시기 “믿을 수 없게도 냉정함을 숭배하는 문화”에 주목한다. 낭만주의가 스러지고 참혹한 전쟁을 겪고 난 뒤인 “1929년에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리고 그 누구도 과거를 떠올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모두들 그토록 정신없이 현재에 몰두하고 있다.” 독일 작가 쿠르트 투홀스키의 연인들 가운데 한 명이었던 언론인 리자 마티아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는 모두 차가운 평화 시대의 아주 평범한 자식들이었다. 우리는 모두 매정하리만치 냉정했다. 우리는 대부분 곧 다시 잘못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파시즘이 대두한 1933년은 책의 유일한 변곡점인데, 지은이는 사랑을 탐닉하던 사람들의 머리 위로 덮쳐오는 거대한 증오와 폭력의 그림자를 담담하지만 실감나게 그려낸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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