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받다, 청소하다…사라질 네 가지 직업의 ‘장례식 풍경’ [책&생각]

양선아 기자 2024. 6. 21.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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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프고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라 웃으면 안 되는데 책을 읽다 포복절도하고 말았다.

지난 2018년 '고기로 태어나서'로 한국출판문화상(교양부문)을 받았던 한승태 작가가 최근 펴낸 '어떤 동사의 멸종'이라는 책 얘기다.

그의 바람대로 독자들은 '한승태식 블랙 유머' 코드에 빠져 한참을 웃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는 지금은 만날 수 있고 언젠가는 사라질지도 모르는 네 가지 노동에 대해 머리로 생각해보고 마음으로 느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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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 상담사·택배 상하차 직원
르포작가 한승태의 생생한 체험기
노동 환경과 구체적 실태 보여줘
‘한승태식 블랙 유머’가 돋보여
‘어떤 동사의 멸종’의 저자 한승태씨가 빌딩 청소 노동자 직업세계에 뛰어들어 청소를 하는 모습이다. 한승태 제공

어떤 동사의 멸종
사라지는 직업들의 비망록
한승태 지음 l 시대의창 l 1만8500원

퀴닝
꽃게잡이 선원에서 돼지농장 똥꾼까지, 잊힐 게 뻔한 사소한 삶들의 기록
한승태 지음 l 시대의창 l 1만8500원

서글프고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라 웃으면 안 되는데 책을 읽다 포복절도하고 말았다. 지난 2018년 ‘고기로 태어나서’로 한국출판문화상(교양부문)을 받았던 한승태 작가가 최근 펴낸 ‘어떤 동사의 멸종’이라는 책 얘기다.

르포 작가, 체험 작가로 불리는 한승태 작가가 이번엔 미래 사회에 사라질 것으로 전망되는 직업들만 골라 그 직업세계 속으로 뛰어들었다. 저자는 대체 가능성이 90퍼센트 이상인 직업 가운데 가능한 한 평범하고 역사가 오래된 직업을 선택했다.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이 하루에 한번 이상 그 서비스를 받거나 직접 마주치는 직업이 선택 기준이었는데, 콜센터 상담사, 택배 물류센터 상하차 직원, 뷔페식당 요리사, 빌딩 청소부가 그가 택한 직업이다.

한승태 작가가 요리사로 일하면서 정리하던 음식물쓰레기통 장면들. 한승태 제공

책 제목에서 ‘멸종’이라는 표현을 썼듯이, 이 책은 앞으로 사라지게 될 이 네 가지 노동의 “장례식 풍경”을 담았다. 저자는 그 장례식 풍경이 “오열하고 곳곳에서 곡소리가 터져 나오는 모습”이 아닌 “떠나간 이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오랜만에 함께 모여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드는” 장례식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의 바람대로 독자들은 ‘한승태식 블랙 유머’ 코드에 빠져 한참을 웃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는 지금은 만날 수 있고 언젠가는 사라질지도 모르는 네 가지 노동에 대해 머리로 생각해보고 마음으로 느껴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자본주의 사회의 톱니바퀴가 되어 모든 것을 무감하게 지나쳤던 나 자신이 보이면서 일상의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온다. 빠르고 편리하다고만 생각했던 새벽 배송 물건을 받고서는, 이 물건이 내게 오기까지 물류센터에서 상하차 직원들이 밤새 먼지 더미 속에서 고생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이 식당 조리실에서는 어떤 조리사가 어떤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빌딩 청소부로 일하면서 사무실 소독하는 모습. 한승태 제공

책에서 가장 압권인 부분은 콜센터 상담사에 등장하는 기상천외한 고객들에 대한 묘사 부분이다. “우리 개가 고기 밑에 깔린 핏물 흡수하는 거, 그걸 뜯어 먹었는데 내가 걱정돼서 이게 개가 먹어도 되는 건지 물어보려고 글을 올렸는데 아무도 대답을 안 해주면 어떡해요?”라고 묻는 ‘개 사랑’ 고객은 “우리 개가 잘못되면 그쪽에서 책임져요”라고 우긴다. 해당 마트에서는 당일 장을 봐서 당일 배달한다고 상담사가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그 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 안다”며 오늘 주문할 테니 3일 후에 보내달라고 떼를 쓰는 고객이며 “김정환 님 본인 맞으시죠?”라는 질문에 “그건 왜 묻는 건데?”라며 다짜고짜 따지는 고객 유형까지 보고 나면, 인간에 대한 혐오 감정이 저절로 올라온다. 콜센터 상담사들의 감정 노동이 얼마나 힘들지 가슴으로 이해하게 된다. 오죽하면 저자는 자신의 묘비명을 “콜센터가 제일 힘들었다”라고 쓰겠다고 하고, 차라리 이 직업은 사라지는 편이 낫다고까지 생각했겠는가.

심각한 얘기지만 우울하지 않게 글을 쓰고 삶 속에 숨어 있는 보물 같은 사람 이야기까지 빼곡하게 기록한 저자의 기록을 읽고 나면 저자의 다른 책도 읽고 싶은 마음이 든다. 마침 저자가 꽃게잡이 선원에서 돼지농장 똥꾼까지 체험한 뒤 쓴 ‘인간의 조건’이 초판의 오류를 바로잡고 문장을 대폭 다듬어 ‘퀴닝’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됐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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