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사랑도 동물혐오도 인간의 심리적 투사 [책&생각]

한겨레 2024. 6. 21.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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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서는 길고양이를 혐오하고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지만, 한쪽에서는 길고양이 밥을 챙기며 품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책은 이처럼 개에 대한 혐오와 사랑은 인간 내면의 불안과 계급의식 등을 투사한 심리적 구성물이자 도시문명 발달에 따른 역사적 산물로 분석한다.

'동물 보호'라는 명분 또한 인간의 탐욕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악용된 역사도 많다.

책을 닫고 나면, 오늘날 우리도 '동물 사랑'을 앞세워 다른 인간을 혐오하고 비하하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에 가닿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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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도시인들은 도시 미관, 광견병 위험 등을 이유로 길거리를 떠도는 개를 살해하는 것을 합법화했다. 그림은 런던에서 제작된 광견병 관련 포스터(1826). 동아시아 제공

벌거벗은 동물사
동물을 사랑하고 혐오하는 현대인의 탄생
이종식 지음 l 동아시아 l 1만5000원

한쪽에서는 길고양이를 혐오하고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지만, 한쪽에서는 길고양이 밥을 챙기며 품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한쪽에서는 대중의 열광적인 인기를 누리는 곰(푸바오)이 있지만, 한쪽에서는 쇠창살에 갇혀 웅담을 채취당하는 곰도 있다. 왜 어떤 사람은 동물을 사랑하지만 어떤 사람은 동물을 혐오할까? 왜 어떤 동물은 학대당하고 어떤 동물은 사랑받을까?

‘벌거벗은 동물사’는 도시를 중심으로 형성된 현대 문명이 강아지, 말, 젖소, 낙타, 물개, 닭 등의 동물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보여준다. 동물을 주인공으로 한 근현대사로, 풍부한 사료와 예리한 통찰, 다정한 문체는 책을 ‘순삭’하게 만든다.

먼저 개의 경우를 살펴보자. 인류의 대부분이 농촌에서 살아가던 전근대 시대에 개는 인간에게 그렇게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다. 소, 돼지, 말, 나귀, 닭, 오리 등이 더 중요했다. 근대화·도시화를 거치면서 말, 소, 돼지 등 큰 동물들은 도시 공간에서 퇴출당했지만, 개는 상대적으로 작은 덩치 덕분에 도시에 남게 됐다. 일부는 부유층의 애완견으로 살았지만, 대부분은 도시를 떠도는 배회견의 삶을 살았다. 19세기 대표 도시인 뉴욕, 파리, 런던의 시민들은 배회견을 싫어했다. 도시 미관, 광견병 위험 등의 이유를 들어 배회견 살해를 합법화했다. 매년 수천, 수만 마리가 죽어 나갔다.

도시에 인구가 집중되는 근대화는 젖소들의 운명을 가혹하게 만들었다. 도시인들에게 우유를 제공하기 위해 젖소 공장이 세워지고 젖소들은 공장에 갇혀 종일 젖이 짜내어졌다. 동아시아 제공

배회견이 도시인들의 미움을 한몸에 받은 배경에는 육종가들의 이득이 있었다. 육종가들은 신중하게 육종된 순종 혈통 강아지들의 상품 가치를 높이기 위해 배회견을 악마화했다. 애완견은 집 내부, 안정감, 편안함, 사랑, 청결과 연결시키고, 배회견은 집 외부, 위험, 공격, 질병, 무질서와 연결시키는 이분법 전략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여기에 더 족보 있는 애완견을 소유함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고자 하는 상류층의 구별짓기 욕망까지 가세하면서 개들의 등급이 더욱 촘촘하게 나눠졌다.

책은 이처럼 개에 대한 혐오와 사랑은 인간 내면의 불안과 계급의식 등을 투사한 심리적 구성물이자 도시문명 발달에 따른 역사적 산물로 분석한다. ‘동물 보호’라는 명분 또한 인간의 탐욕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악용된 역사도 많다. 미국은 필리핀 사람들이 동물을 학대하기 때문에 필리핀을 지배하고 가르쳐야 한다는 식민논리를 내세웠고, 청나라 말 중국에 입성한 유럽인들은 동물 보호를 이유로 중국인들을 무시하고 처벌했다. 책을 닫고 나면, 오늘날 우리도 ‘동물 사랑’을 앞세워 다른 인간을 혐오하고 비하하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에 가닿게 된다.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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