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김정은 '군사협력' 폭주…전문가들 우려, 일부 신중론도
"군사동맹 복원" "정치적 선물"…북러 '군사지원 조약'에 해석 분분
북한과 러시아가 정상회담에서 체결한 '무력 침공을 받을 경우 모든 군사적 원조를 제공한다'는 조약을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북러가 예상을 뛰어넘고 1961년 체결한 조약 수준으로 군사동맹을 복원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지속적인 지원을 받기 위해 '정치적 선물'을 준 것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20일 북한 선전매체 노동신문은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전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체결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로씨야련방(러시아) 사이의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의 전문을 보도했다. 특히 조약 제4조는 '어느 일방이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는 경우 타방은 지체없이 자기가 보유한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규정한다.
이 조항은 1961년 '조·소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 조약'에 명기된 '자동군사개입'과 유사하다. 어느 한쪽이 침공을 받으면 상대방이 지체 없이 군사적 지원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돕는다는 내용이었고 관련 조약은 소련이 해체되고 자동 폐기됐다. 이후 2000년 체결한 '북러 친선조약'에는 자동군사개입 조항이 빠졌다가 이번에 1961년 수준에 가깝게 군사협력을 강화한 것이다.
현승수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러 간 군사협력 가능성'에 대해 "러시아가 북한과 관계를 '군사 조약'이 아닌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라고 규정한 이유는 분명 있을 것"이라며 "북러 간 군사협력은 러시아의 전략상 비공개 원칙 아래 은밀하고 지속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이어 "협력 수위는 러-우크라 전쟁 추이 등에 따라 확대되거나 축소될 수 있다"고 했다.
현 선임연구위원은 "이번 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면서도 "다만 푸틴 대통령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러시아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군사적 도발을 북한의 생존권리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정당화하고 있는 인상을 준다"고 말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은 "이번 조약 체결로 북러 관계는 냉전시대의 군사동맹 관계를 완전히 복원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북핵에 맞서기 위해 미국의 확장억제(핵우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현재의 우리 안보정책은 근본적으로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일각에선 북한이 우크라와 전쟁 중인 러시아에 KN-23(북한판 이스칸데르), KN-24(북한판 에이태큼스), KN-25(초대형방사포) 등 신형 유도무기 3종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군사정찰위성 등 우주기술을 이전받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북러 간 군사동맹을 우려하는 시각과 달리 이번 조약 체결이 정치적 이벤트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이날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 통화에서 "러-우크라 전쟁이 발발 할 때부터 북한과 러시아는 동맹국 이상으로 군사협력을 시작했다"며 "북한이 러시아의 우크라 침략을 지지했고 무기를 제공했기 때문에 김정은에게 '정치적 선물'을 준 것"이라고 했다.
천 전 수석은 "이번 북러 조약은 1961년 조약을 다시 복원시킨 것이지만 양국 간 군사협력이 강화되는 일은 기대하기 어렵다"며 "군사협력이 이행될진 조금 더 두고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이 침공을 받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며 "침공을 할 나라가 없는데 함께 싸운다는 이야기 자체가 군사적으로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러 조약은 러시아의 한반도 전쟁 개입, 북한의 우크라 전쟁 개입 가능성을 모두 열어놓은 조항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서도 "다만 북러 간 군사동맹을 구축하기 위해선 액션플랜 등이 마련돼야 하는 만큼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 단계에서는 북러 간 군사원조 조약이 정세변화에 따라 선언으로 그칠지 여부도 지켜 봐야할 대목"이라고 했다.
'1961년 vs 2024년'…군사동맹 수준 다른 까닭
정부가 북한과 러시아 간 체결한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조약 제4조에는 '무력 침공을 받을 경우 모든 군사적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1961년 양국 간 체결한 군사동맹을 완전 복원했다고 분석하고 있지만 정부가 이에 대해 유보적 입장을 내는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북러 정상회담 조약에 유사시 자동 군사개입으로 해석될 조항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 "푸틴 대통령의 방북 계기에 체결된 러북 간 조약의 구체 내용에 대해선 정부 차원의 검토 작업을 하고 있다"며 "추후 정부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북러 간 군사협력 역사는 1961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북한은 소련과 '조·소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 조약'을 체결하면서 제1조에 '어느 일방이 무력 침공을 당함으로써 전쟁상태에 처하는 경우 상대방은 지체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온갖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을 넣었다. 이를 두고 당시 '유사시 자동군사개입'이란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소련이 해체되고 냉전시대도 끝나면서 2000년 2월 러시아는 이 조약을 폐기하고 자동군사개입 조항을 뺀 '북·러 친선·선린·협조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다. 친선 조약에는 북러 중 한쪽에 침략 위기 발생시 즉각 접촉한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과거보다 낮은 수준의 협약 내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푸틴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전날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조약을 체결했다. 특히 조약 4조에는 '어느 일방이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는 경우 타방은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로씨야련방법(러시아연방법)에 준하여 지체없이 자기가 보유한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번 조약의 내용만 보면 1961년 조약과 매우 흡사하지만 정부는 '러시아 연방법에 준하여'라는 단서 조항이 들어가 엄연히 다른 조약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연방법에 따르면 러시아 영토 밖에서 러시아의 군사력을 사용하는 문제의 결정은 상원의 권한이라고 적시돼 있다. 상원 결정은 재적의원 과반수로 결정되고 있다. 이 때문에 과거처럼 '지체없이 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국내법에 따라 군사지원을 하겠다는 한 단계 낮은 수준의 협약으로 판단된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이에 대해 "1961년 당시 북한과 소련이 가졌던 조약 수준에는 못 미친다"며 "이번 조약에는 유엔 헌장과 국내법이 있어서 '자동군사개입'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만 1961년 조약에는 조금 못 미치지만 어쨌든 이번 것도 군사적인 지원 포함한 상호지원을 얘기하고 있어 동맹에 가까워보이긴 한다"고 했다.
임수석 대변인은 이날 "러북 간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 등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평가에 따라 동맹과 우방국들을 포함한 국제사회와 함께 우리 안보를 위협하는 행위에 대해 그에 상응해 엄중하고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푸틴 대통령의 방북 결과 우리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러북이 조약을 체결하고 유엔 안보리(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정면 위반하는 군사기술협력 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데 대해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은 러북 간 군사협력을 강력히 규탄하면서 러시아와 전투 중인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장 실장은 이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이후 브리핑을 통해 "우크라에 대한 무기지원 문제는 재검토할 예정"이라고 했다. 지금까지의 비살상무기 지원 방침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또 장 실장은 "러시아와 북한 간 무기 운송과 환적에 관여한 선박 4척, 기관 5개, 개인 8명을 독자제재 대상으로 지정한다"며 "우크라 전쟁 이후 시행되고 있는 러시아에 대한 수출통제 관련해선 현재 1152개에서 243개 신규품목을 추가 지정하기로 결정하면서 총 1402개 품목이 앞으로 제재 대상"이라고 밝혔다.
김인한 기자 science.inh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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