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공격당하면 같이 싸운다... "지체 없이 군사지원"[북러정상회담]

김경준 2024. 6. 21. 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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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시절 군사동맹 복원 수준
군사적 자동개입에 준하는 수준 포함
대통령실 "엄중 우려 표명...규탄성명"
19일 평양 금수산 영빈관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포괄적 전략동반자관계' 조약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평양=노동신문 뉴스1

북한이 러시아와 과거 냉전 시절의 군사 동맹을 사실상 복원했다. 북한은 조약 체결 만 하루도 지나지 않은 20일 오전에 이례적으로 전문을 공개했다. 조건을 달았지만 북러 양국은 "지체 없이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명시했다. 냉전 시대인 1961년 북한과 구소련이 체결했던 '조소동맹'의 부활이다. 뒤늦게 대응에 나선 우리 정부는 이날 오후 북러 조약에 대한 규탄 성명을 내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재검토 가능성으로 맞받았다.


군사 분야만 보면 '조소동맹' 부활 수준

북한이 이날 공개한 전문은 표면적으론 동맹보다 낮은 '포괄적 전략동반자관계 조약'이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군사 분야 간 관계만 뜯어놓고 보면 '동맹 조약'에 버금가는 수준이 분명하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제4조다. 북러는 "쌍방 중 어느 일방이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러시아연방의 법에 준하여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적시했다. '유엔헌장 제51조'와 '북한·러시아 국내법'이라는 조건도 '방지턱'으로 볼 순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 의견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이들 조건을 근거로 "조소 동맹 수준에는 못 미친다"고 평가했지만, '군사적 위협이 발생하는 즉시 서로 협의한다'는 내용의 제3조와 연계하면 자동개입에 준하는 수준의 조항이라는 게 중론이다.

그래픽=박구원 기자

이에 대해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자위권 행사 권리를 규정하고 있는 유엔헌장 51조는 오히려 북러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조건"이라며 "북러의 국내법에 준한다는 표현 역시 제3조에서 '무력 침략행위의 직접적 위협이 조성되는 경우, 가능한 실천적 조치들의 합의를 위해 지체 없이 협상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법의 제한을 받는다기보다 즉각적 자동개입 성격이 훨씬 강하다"고 설명했다.

이는 북한뿐 아니라 러시아에 득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의 우크라이나 전쟁 개입은 물론 유사시 러시아의 한반도 전쟁 개입과 가능성을 모두 열어놓은 조항"이라며 "향후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포탄 등을 제도화한 방식으로 지원받을 수 있는 법적 토대"라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나선 러시아에 대한 북한의 노골적 지원을 예상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군사정찰위성 기술 지원 정당성 확보 조항도

군사 기술 협력을 암시한 제8조도 예사롭지 않다. 북러는 "쌍방은 방위능력을 강화할 목적하에 공동 조치들을 취하기 위한 제도들을 마련한다"고 규정했다. 당장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기술 지원을 하고 있는 러시아의가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로 해석된다. 북한이 원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대기권 재진입, 핵추진잠수함 기술을 이전하기 위한 기초 단계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임 교수는 "북러 군사협력협정 또는 상호방위협정 등 별도의 법적 조치가 뒤따를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제도 마련을 위해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평양을 방문한 블라디마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9일 금수산 영빈관에서 푸틴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선물한 아우루스 차량을 서로 몰아보며 친교를 다졌다고 조선중앙TV가 20일 보도했다. 조선중앙TV 캡처

조약 체결 하루도 안 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문을 공개한 것을 두고도 고도의 노림수가 있다는 분석이다. 현승수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러시아라는 강대국 대통령이 북한을 찾아 김 위원장에게 특별한 선물 보따리를 안겨줬다는 점을 공개해 체제 공고화를 꾀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혹시 모를 러시아의 변심에 대비해 확실히 하려는 차원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미일 동맹에 맞서 북러의 끈끈한 파트너십을 과시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는 얘기다. 다만 박 교수는 "북한이 '동맹' 문서를 공개하면서, 비교적 북한에 우호적인 유럽 국가들마저 적으로 돌린 것은 장기적 관점에서 패착일 수 있다"며 "당장 내달 열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북한도 러시아와 함께 논의 대상에 오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러의 동맹에 준하는 군사협력에 대해 우리 정부는 이날 규탄 성명을 냈다. 장호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 직후 브리핑을 통해 "북러가 체결한 상호 군사 경제 협력 강화에 대해 엄중한 우려를 표하고 이를 규탄한다"며 "정부는 안보를 위협하는 어떤 행위에 대해서도 국제사회와 함께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재검토 가능성도 내비쳤다. 다만 북러의 결속 강화가 우리 정부의 대응 미숙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윤석열 정부 대미편향외교의 결과"라며 "정부는 반성과 성찰을 통해 국익중시의 균형외교로 전환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했다.

김경준 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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