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PTSD에 대한 편견과도 싸운 전쟁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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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 머피는 텍사스의 아일랜드계 소작농의 20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키 166cm에 체중 48kg의 어린 신병에 대한 선임병들의 의구심을 불식시키듯 그는 첫 전투에서 이탈리아군 장교를 저격하는 등 탁월한 사격술로 두각을 나타냈고, 이어진 이탈리아 본토 진격전에서도 매번 돋보이는 용기와 결단력으로 여러 차례 궁지에 몰린 부대원들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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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오디 머피는 텍사스의 아일랜드계 소작농의 20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너무 가난해서 그와 형제들은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 어려서부터 사냥을 해야 했다. 남매 중 성인이 될 때까지 생존한 이는 9명에 불과했다. 10세 무렵 아버지가 집을 나갔고, 14세 때 어머니마저 병으로 잃은 뒤 어린 동생 셋을 고아원에 보내야 했고 생계를 위해 온갖 잡일을 해야 했다.
그는 만 16세가 되던 1942년 6월 월급을 받기 위해 군에 자원입대했다. 해병대와 해군에 먼저 지원서를 냈다가 너무 왜소해 거부당했고, 어렵사리 육군으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보병 3사단 15연대 1대대 B중대 이등병으로 북아프리카 전역에 배치됐다. 연합군이 북아프리카 전역을 장악하고 유럽 탈환전을 준비하던 무렵이었다. 1943년 7월 이탈리아 시칠리아 상륙전이 그의 첫 전투였다.
키 166cm에 체중 48kg의 어린 신병에 대한 선임병들의 의구심을 불식시키듯 그는 첫 전투에서 이탈리아군 장교를 저격하는 등 탁월한 사격술로 두각을 나타냈고, 이어진 이탈리아 본토 진격전에서도 매번 돋보이는 용기와 결단력으로 여러 차례 궁지에 몰린 부대원들을 구했다. 적 벙커까지 달려가 제압한 뒤 적의 기관총으로 적들을 사살하는 등 가히 영화 같은 일들도 있었다. 그에게 명예훈장을 안긴 전투에서는 전차를 앞세운 적 2개 중대를 맞아 자신의 중대원들을 모두 퇴각하게 한 뒤 혼자서 포격으로 파괴된 아군 전차 기관총으로 적을 저지했다. 그는 일약 하사에서 소위로 진급했다.
중위로 제대한 그는 배우로도 데뷔해 자서전과 같은 제목의 영화(To Hell and Back) 등 총 44편에 출연했다. 심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고통받으며 그 사실을 거리낌 없이 공개함으로써 PTSD를 ‘겁쟁이들의 증상’으로 여기던 편견과도 영웅적으로 싸웠다. 그는 악천후 속 경비행기 파일럿 조종 미숙으로 인한 사고로 숨졌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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