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남북호’, 부산항의 헤리티지와 원양산업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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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5, 6월은 북태평양과 베링해에서 조업하는 원양어선들이 출항하는 시기다.
원양어선은 높은 파도 등 주위 환경이 불규칙하고 거친 먼바다에서 장기간 조업한다.
우리나라 원양산업은 한국전쟁 이후 아직 변변한 산업이 없던 1960, 1970년대에 외화 획득의 일등 공신이자 경제 역군으로 역할을 톡톡히 했다.
1971년 원양산업 수출액(5510만 달러)은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10억 6761만 달러)의 약 5%를 넘어서기도 하는 등 성장에 기여한 바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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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5, 6월은 북태평양과 베링해에서 조업하는 원양어선들이 출항하는 시기다. 원양어선은 높은 파도 등 주위 환경이 불규칙하고 거친 먼바다에서 장기간 조업한다. 그 특성상 출항 전 안전 점검이 중요하다. 특히 베링해는 우리 원양 트롤어선이 출어하는 해역 중 사고 위험이 높은 편으로 각별한 주의와 철저한 안전 관리가 필수적이다. 부산해양수산청은 우리 어선들이 안전하게 조업할 수 있도록 출어 전 매년 비상 상황 대처 훈련, 선박시설 등을 관계기관과 합동으로 점검하고 있으며 올해도 ‘남북호’를 비롯한 다수 선박을 대상으로 점검을 실시했다.
세월의 흔적이 엿보이기도 하는 ‘남북호’는 1974년 건조된 이후 약 50년간 부산항을 모항으로 줄곧 원양어업을 해 왔다. 특히 1978년에는 국내 최초로 남극 크릴새우 시험 조업에도 참여한 역사적 의미가 있는 선박이기도 하다. 곧 2026년 개항 150주년을 맞이하는 부산항과 함께 우리나라 원양어업의 역사를 만들어 온 ‘부산항의 헤리티지’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우리나라 원양산업은 한국전쟁 이후 아직 변변한 산업이 없던 1960, 1970년대에 외화 획득의 일등 공신이자 경제 역군으로 역할을 톡톡히 했다. 1971년 원양산업 수출액(5510만 달러)은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10억 6761만 달러)의 약 5%를 넘어서기도 하는 등 성장에 기여한 바가 컸다.
하지만 이후 국가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점차 잊혀져 갔다. 그 과정에서 어선은 노후화했고, 근로 환경은 더 열악해졌으며, 한국인이 기피하는 일자리는 외국인 노동자로 대체되며 점차 더 선호하지 않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선원 수급의 어려움, 낮은 수익성 등 원양산업은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해 있지만 가장 근본적이고 심각한 문제는 ‘어선의 노후화’이다. 선령 31년 이상 원양어선 비율이 무려 81.4%(총 204척 중 166척, 2022년 기준)에 달한다. 물론 그간 개선을 위한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원양어선 현대화를 돕기 위해 정부도 원양어선 안전펀드 등 지원을 지속하고 있지만, 열악한 원양업계의 상황과 미래 수익에 대한 불확실성, 어선 건조 비용 상승 등으로 원양어선 신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원양 수산물은 국내 수산물 공급의 약 11%(총 360만 t 중 40t, 2022년 기준)를 차지한다. 우리가 흔하게 식탁에서 접할 수 있는 명태 오징어 대구 등 국민 수산물의 대부분이 원양어선에서 어획한 것으로, 원양어업은 우리 밥상 물가의 최전선에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원양어선의 노후화가 오랜 기간 해결되지 않는다면 원양산업은 언젠가는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수 있고, 이는 우리의 밥상 물가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실질적 지원에 대한 고민이 절실한 시점이다.
어려운 시절 원양어업으로 발돋움을 시작한 우리나라는 현재 경제 규모 세계 13위(2023년 GDP 기준) 국가로 성장했다. 원양산업은 어려움 속에서도 의지를 갖고 도전해 온 우리 경제의 현장이다. 실질적인 지원과 자구 노력으로 원양산업이 부산항에서 국민의 희망을 끌어올리는 역사를 다시 만들어 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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