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출신 란코프 교수가 말하는 1968년 북한의 푸에블로함 납치사건때 소련의 반응
러시아 출신의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20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은 미·소 냉전시대에 비교하면 많이 다르지만, 당연히 동맹의 부활로 봐야 한다”며 “이는 미·중 대립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초래한 제2차 냉전의 새로운 사건 중 하나”로 평가했다. 란코프 교수는 이날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푸틴의 방북 목적에 대해 “북한으로부터 포탄 등 군수물자를 얻고 서방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북한을 활용하는 것 외에도 한국의 대(對)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을 막기 위한 측면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직접적 지원에 나서면 언제든 북한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강화한다는 메시지를 줬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회담이 “푸틴은 북한을, 김정은은 러시아를 이용한 것”이라며 “여기엔 사상의 연대성이 별로 없어서 우크라이나에서 휴전이 되면 양국 관계는 기반이 약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 러·북이 이번에 맺은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조약’은 1961년의 자동개입 조항과 유사하게 ‘어느 일방이 무력침공을 당하면 군사적 지원한다’고 돼 있어 우려가 크다.
“러·북은 과거에 해체된 동맹을 부활시켰는데 문제의 조항은 북한이 침략당하면 지원한다는 의미지, 북한이 남한을 침략할 때 지원한다는 뜻이 아니다. 북한은 앞으로 다시 남침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의 전술핵 개발의 기본 목적은 제2차 남침 준비용이다. 북한은 6·25 때처럼 침략을 감행하면서 ‘남한으로부터 침략을 당했기 때문에 반격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조항은 러시아가 ‘반격으로 위장한 침략’을 무조건 지지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 역사적으로 그런 사례가 있나.
“1968년 북한의 푸에블로함 납치 사건이다. 당시 크렘린궁은 북한의 일방적인 행동 때문에 위험한 위기에 연루될 공포가 있었다. 이 때문에 당시 러시아 정부는 비밀리에 ‘푸에블로함 납치로 인한 위기는 북한이 일방적으로 시작한 것이므로 북한을 보호할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북한이 일으킨 위기가 전쟁으로 확산할 경우엔 ‘보호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북한에 알려주기로 결정했다. 지금 상황도 비슷할 수 있다.”
-한국은 러시아의 핵심 군사 기술이 이전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러시아의 정찰위성 기술 이전 가능성은 존재한다. 미사일 기술은 이전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핵 기술 이전 가능성은 없다.”
- 왜 러시아의 핵 기술 이전 가능성은 없다고 보나.
“핵보유국 지위는 일종의 특권인데, 러시아는 그 특권을 가진 나라가 적을수록 좋다는 입장이다. 그 독점권을 지키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북한이 핵 개발을 더 하게 되면 러시아 입장에서도 골치 아픈 문제가 생긴다.”
- 이번 러·북 회담의 후속 조치는.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를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에서 북한에 대한 제재를 가로막으려 노력할 것이다. 러·북 공동 군사훈련도 하겠지만, 그 규모가 크지는 않을 것이다. 러시아 기업이 북한에 가서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시도할 수 있다. 이런 장면은 1980년대 중반과 (김정은 집권 후인) 2014~2015년에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러시아 기업들은 짧은 시간 내에 북한이 돈을 벌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 돈을 잃어버리는 나라라는 것을 배우고 철수할 것이다.”
- 러·북 관계의 장래에 대해 비관적인가.
“양국 관계를 보면 장기적인 협력 기반이 없다. 양국 경제는 아무런 호환성이 없다. 러시아가 북한에서 수입할 수 있는 분야는 임업, 수산업에서 일할 수 있는 값싼 노동력이다.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는 2017년 기준 3만명이 있었는데, 약 2만명이 귀국하고, 현재는 1만명 정도 있을 텐데 앞으로 10만명이 될 수도 있다.”
- 푸틴은 방북 직전에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 공급하지 않은 것에 대해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는데, 전형적인 이중 플레이 아닌가.
“푸틴을 비롯한 러시아 지도부의 희망은 남북 등거리 외교다. 당분간 남북 등거리 외교를 해서 한국과는 경제 교류하고, 북한을 이용해 미국을 압박하며 필요할 때 포탄을 얻기를 바란다. 러시아는 한국과의 관계가 러·북 관계보다 훨씬 큰 가치가 있다는 것을 잘 안다. 러시아는 북한에 가까이 다가갈 때도 한국과의 관계에 지나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할 것이다.”
-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화하고 있는데 러시아의 내부 상황은 어떤가.
“군사 지출을 통해 성장을 촉진하는 ‘군사적 케인즈주의’ 영향으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후 지난 2년 동안 경제 상황이 좋아졌다. 올해도 성장률이 높다. (러시아는 지난해 3% 성장했으며 올해도 2.6%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국제통화기금이 전망했다.) 이게 얼마나 지속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푸틴 정부는 러시아의 일반인들이 전쟁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 있다. 러시아 지인들과 연락해보면 제재 효과가 거의 없는 것 같다.”
◇란코프 교수는 누구?
1980년 17세 때 러시아 레닌그라드 국립대 동양학부에 입학하면서 남북한에 관심을 가져왔다. 북한 김일성 종합대에 유학한 경험이 있으며 ‘조선 시대의 당파 싸움’을 주제로 같은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소련의 붕괴를 전후로 한 공산주의 체제 및 북한 사회 분석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3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미 대통령 초대로 백악관에서 대북 정책을 조언했다. 2004년부터 국민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푸에블로함 납치 사건
1968년 1월 동해의 공해상에서 미 해군의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함이 북한군의 공격을 받아 나포됐다. 미국은 핵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를 한반도 인근으로 보내고, 공군에 비상 출격 대기령을 내려 위기가 고조됐다. 사건 발생 후 11개월 만인 1968년 12월 수십 차례의 비밀 협상 끝에 82명의 생존 승무원과 시체 1구가 판문점을 통해 송환됐다. 북한은 푸에블로함을 평양 보통강에 전시, 반미 의식 고취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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