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할 안되면 합병(?)…SK, 이번엔 ‘뒷문’ 경영 [홍길용의 화식열전]
SK이노 통한 우회상장 추진
자금난 처한 SK온 지원 명분
합병비율 대주주가 좌지우지
FI 이익 우선…소액주주 불리
미래에셋 만든 SPC 대박날수
SK E&S와 SK이노베이션이 합병을 추진하는 모양이다. 회사측 설명이 “여러 검토를 하고 있다”다. ‘부인’이 아니다. 회사의 주요한 내부 정보가 외부에 알려지는 경우는 두 가지다. 의도치 않게 새어 나갔거나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흘린 경우다. 후자라면 외부(시장)의 반응을 보기 위한 실험일 수 있다.
소식 첫날 SK이노베이션 주가는 폭등하고 SK㈜ 주가는 급락했다.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SK온은 전기차 시장의 부진으로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20일 SK이노베이션 주가 상승은 SK온에 투입할 자금이 이번 합병으로 마련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인 듯하다. 과연 SK이노베이션에만 유리한 거래할까? 21일 SK이노베이션 주가는 크게 하락했고 SK㈜는 약보합세에 그쳤다. 역시 시장은 유연하다.
▶ 대주주? 소액주주? …합병되면 유리한 쪽은
재무구조만 보면 SK온 지원자금이 절실한 SK이노베이션에게 SK E&S는 ‘돈 다발’이다. 연결재무제표 기준으로 SK이노베이션이 SK E&S 보다 훨씬 크지만 대부분이 자회사 자산이다. 자회사를 떼어낸 개별 재무제표로 보면 유동자산이 SK이노베이션 1조5000억원, SK E&S 7114억원으로 고작(?) 2배 차이다. 영업이익률은 SK E&S가 훨씬 높고 돈 버는 자회사도 압도적으로 많다.
인수합병(M&A)에서 중요한 것은 ‘디테일’이다. 이번 합병은 성사된다면 그 비율에 따라 SK이노베이션 대주주와 소액주주간 이해가 엇갈리는 구조다. SK이노베이션 최대주주인 SK㈜는 SK E&S도 지배한다. 소액주주는 그렇지 못하다. 합병이 이뤄지면 SK E&S의 기업가치가 높게 평가돼 대주주에는 유리하고 소액주주에는 불리할 수 있다. 비상장사 기업가치 평가는 지배주주의 선택에 따라 ‘고무줄’이다.
▶ 우선주 투자자 만족시키려면…SK E&S 1주당 29.3만원은 되야
‘디테일’의 핵심은 SK E&S 지배구조다. 이 회사는 그 동안 두 차례에 걸쳐 534만주가 넘는 우선주를 발행했다. 이를 통해 2조7675억원을 조달했다. 우선주 1주당 발행가는 약 58만7000원이다. 우선주는 발행 후 5년 후인 2026년과 2028년부터 보통주로 전환될 수 있다. 전환비율은 1:2다. 우선주 1주를 보통주 2주로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보통주 1주의 가치를 29만3000원 정도로 평가한 셈이다. SK E&S 재무적투자자(FI)들 입장에서는 이번 합병에서 보유 주식의 가치를 이 보다는 더 높게 인정받아야 한다.
SK E&S 주가가 29만3000원이 되려면 2023년말 기준 주가순자산비율(PBR) 1.8배여야 한다. SK이노베이션은 0.4배다. PBR 1.8배는 국내 대형 에너지 관련주에서 찾을 수 없는 높은 수준이다. 2023년 기준 SK E&S의 PER은 17.7배다. SK이노베이션이 42.9배로 더 높지만 최근 실적 부진 탓이다. SK이노베이션 주당순이익(EPS)은 2022년 1만8058원에서 2023년 2807원으로 급감했다. SK E&S의 시총이 16조7275억원이 으로 SK이노베이션의 11조원 보다 더 커야 한다.
▶ SK, 앞문 어려우면 뒷문 … 들어올 때도, 나갈 때도
SK E&S는 그동안 기업공개(IPO)를 추진해왔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상장 전 투자유치 방식으로 FI 자금을 받았다. 그런데 높은 주당 조달 가격이 또다시 걸림돌이 됐다. FI에게 빌린 돈을 회사 돈으로 갚지 않으려면 어쨌든 주식 시장의 문을 열어야 하다. 공모가를 부풀려 FI만 배를 불리는 상장은 이미 시장에서 눈치를 챘다.
앞문이 닫혔으면 뒷문이라도 찾아야 한다. 직진이 어려우면 우회로를 확보하면 된다. SK E&S가 상장사인 SK이노베이션과 합병하면 우회상장(back-door listing)이 가능하다. SK E&S의 FI는 우회상장 덕분에 보유주식을 팔아 투자회수(Exit)를 할 수 있게 된다. FI가 SK이노베이션 지분을 많이 확보할수록 SK E&S 대주주인 SK㈜의 SK이노베이션 지분율도 높아진다. SK이노베이션 소액주주와 SK㈜와 이해가 엇갈린다.
▶ SK이노베이션 소액주주…유상증자에 이어 합병까지
이번 합병이 이뤄진다면 통합법인에서 SK㈜와 FI의 지분율은 크게 높아질 듯하다. SK이노베이션 기존 소액주주들의 지분율은 낮아진다는 뜻이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해 9월에도 1조1434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당시 신주 발행가격은 13만9600원이다. 증자 이후에도 주가는 신주 발행가를 웃돌지 못했다. 지난 5월에는 10만원 선까지 무너졌다. 이번 합병 검토 소식으로 주가가 올랐지만 여전히 증자 때 발행가격 보다 아래다. 합병비율까지 불리해지면 증자에 이어 2년 연속으로 뒷통수를 맞는 꼴이 될 수 있다.
대박을 낼 수 있는 쪽도 있다. 2017년 주당 14만6066원에 제3배정 증자로 SK E&S 주주가 된 엠디프라임제일차는 이번에 우회 상장이 성공하면 보유 주식을 팔아 막대한 차익을 실현할 수 있다. 주당 29만3000원의 가치가 인정되면 시세차익 수익만 100%가 넘게 된다. 엠디프라임제일차에게는 호재이지만 소액주주들에게는 ‘오버행’(overhang) 잠재 악재가 될만하다. 엠디프라임은 미래에셋증권이 만든 특수목적법인(SPC)이다.
▶ 분할상장 안되면 분할합병…밸류업? 코리아디스카운트?
SK그룹은 최근 수년 간 상장으로 투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회사를 적극적으로 분할했다. 증시 활황일 때는 테마만 그럴듯하면 상장으로 큰 돈을 손쉽게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인기가 높던 공모주의 상장 후 주가가 부진하고 금리 상승으로 증시까지 어려워졌다.사정이 다급해지자 뒷문을 열어 FI를 입장시키는 방식을 택한 듯 하다. 했다.
이번 합병이 성사되면 분할 후 상장이 어려워진 계열사를 우회 상장으로 시장에 데뷔시키는 첫 사례가 될 전망이다. 대주주와 ‘뒷문’ 고객(FI)에 유리한 거래이지만 불법은 아니다. 잘못이라 지적하기 어렵다. 다만 그 결과가 기업가치나 주주들의 이익에 얼마나 보탬이 될 지는 살펴볼 일이다. 요즘 같은 때 SK 같은 대기업이 ‘밸류업’은 커녕 ‘코리아 디스카운트’만 떠올리게 한다면 곤란하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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