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삼희의 환경칼럼] 부채 200조 기업의 ‘송전망 2만㎞ 늘리기’ 꿈

한삼희 환경칼럼니스트 2024. 6. 21.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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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송전선 증설 163㎞였는데 향후 15년간 2만㎞ 늘린다는 포부
2050 탄소 중립 위해서도 꼭 필요한 투자지만
부채 200조원에 짓눌린 한전에 가능한 일이겠는지
지난 5월 8일 강원도 동해. 송전선 부족으로 가동을 멈춘 석탄화력발전소 모습. /김지호 기자

동해안 석탄발전소가 여덟 곳 있는데 전기 생산을 못 하고 놀고 있다고 한다. 송전망이 부족한 탓이다. 동해안 석탄·원자력 발전소 단지에서 생산하는 전기를 수도권으로 운반할 고압 직류 송전선은 원래 완공 목표 시점이 2021년이었지만 2026년으로 연기됐다. 발전소는 한 단지에 모아 건설하기 때문에 해당 지역 주민, 지자체와 합의를 끌어내면 된다. 송전선은 10여 지역 수백km를 거친다. 동의를 얻어내는 작업이 몇 곱절 힘들 수밖에 없다. 쟁점은 보상 규모인데, 토지 재산을 보는 주민들 관점이 달라졌다. 공공 사업 보상은 공시지가, 실거래가, 감정가 등 법적 근거가 있는 공적 기준으로 이뤄진다. 반면 주민들은 토지의 잠재 가치를 본다. 어디는 산업단지가 생기고 어디는 신도시가 들어서서 대박 났다는 얘기를 듣는다. 송전 철탑이 들어서면 그런 기대는 접어야 한다. 한전이 내미는 보상 수준에 만족할 리가 없다. 지중화를 얘기들 하지만 그러려면 비용이 적으면 7배, 많게는 20배 든다.

2013~14년 정점을 거친 밀양 송전탑 사태로 송전선 건설은 더 까다로워졌다. 2003~2022년의 20년 동안 증설된 765·345·154kV 고압 송전망은 총 8556km(회선 길이)다. 노무현 정부에선 연평균 530km씩 건설했다. 이명박(445km), 박근혜 정부(483km) 때도 그럭저럭 증설 속도를 유지했는데 문재인 정부 5년은 연평균 252km밖에 안 됐다. 송전선 노선 건설에 평균 13년 걸린다니 문 정부의 실적 부진을 문 정부 탓으로만 볼 수는 없다. 윤석열 정부의 작년 실적은 163km로 더 곤두박질쳤다. 지금대로 놔둬선 안 되겠다고 윤 정부가 작년 말 내놓은 것이 국가 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 법안이었다. 한전에 맡겨둬선 지지부진이니 정부 부처들이 나서 지역 동의, 관청 인허가를 풀어 전력망 구축 속도를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특별 법안은 민간 자본 투입을 둘러싼 민영화 논란 등이 얽히면서 21대 국회에선 무산됐다.

탈원전 에너지 전환을 정부 정체성으로 삼다시피 했던 문재인 정부가 송전망 확충엔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태양광·풍력의 설비 이용률은 20~30%다. 송전선에 전력이 가득 찰 때도 있지만 텅 비어 있는 시간이 더 많다. 발전 설비도 흩어져 있다. 송전선을 3배 이상은 만들어 놔야 석탄·원자력 발전소만큼의 전력을 운반할 수 있다. 문 정부는 태양광·풍력의 확장 초기 단계였기 때문에 당장 몇 년은 문제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목표를 그럴싸하게 세워놓고는 장기적 이행 방안은 등한시했다.

문재인 정부는 해상 풍력을 2030년까지 12GW(표준 원전 12기 설비 용량)까지 확충하겠다는 의욕적인 목표도 내걸었다. 문 대통령은 2021년 2월 신안 해상 풍력 투자 협약식에 참석해 “완전히 가슴 뛰는 프로젝트”라면서 발전기를 1000기 세워 세계 최대 해상 풍력 단지를 세우겠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 가동 중인 전국의 해상 풍력은 그 목표치의 1% 수준에 머물러 있다. 10%도 아니고 1%다. 생산 전력을 운반할 송전망이 없는데 누가 발전기를 갖추겠는가. 호남은 무질서한 태양광 보급에 따른 전력망 과부하로 작년에 이어 올봄에도 태양광 전기 생산을 인위적으로 줄이는 출력 제한을 시행했다. 이젠 태양광을 새로 설치해도 2030년까지는 송전선에 연결될 가망이 없다고 한다.

윤석열 정부는 작년 4월 10차 송·변전 설비 계획을 발표했다. 2036년까지 56조원을 투입해 연간 1500km씩 연결해 가겠다는 것이다. 호남의 태양광 송전 병목도 육지 송전망 다섯 세트와 서해 고압 직류 송전망으로 해소하겠다고 했다. 지난 60년간 세운 전체 송전망 3만5000km의 64%(2만2500km)를 15년 내에 구축하겠다는 대담한 구상이다. 문 정부 시절 증설 계획보다 두 배 늘려 잡았다. 다리 상판 올리려면 튼튼한 교각부터 세워야 한다는 상식에 입각해 보면 방향은 맞는다. 2050 탄소 중립이 실현되려면 전력 수요가 지금의 2.5배로 늘게 된다. 튼튼한 송전망 구축 없이는 애초 불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한전을 짓누르는 재정 적자다. 문 정부 5년 동안 전기 요금 인상을 억제한 포퓰리즘 정책으로 한전 부채가 108조원에서 202조원까지 늘었다. 2022년엔 하루 1000억원꼴로 회사채를 발행해 카드 돌려막기식으로 연명했다. 인공호흡기를 달고 숨 쉬는 거나 다름없는 한전이 무슨 방법으로 송전선을 작년 속도의 아홉 배로 늘려가겠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송전망 2만km 확충’의 첫걸음은 역시 전기 요금 인상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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