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과 경복궁 담장 개방하면 세계적 도시 풍경 만들 수 있어

김태훈 논설위원 2024. 6. 2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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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의 뉴스 읽기] 궁궐 담장 개방의 효과
이런 경복궁 어떤가요? - 담장이 없는 경복궁 모습을 광화문 밖에서 봤을 때의 풍경(위). 광화문과 흥례문, 근정전, 그 뒤의 북악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경복궁 밖에서 찍은 사진과 안에서 찍은 사진을 합성했다. /사진=조인원 기자, 그래픽=이철원

서울시가 시청 앞 서울광장에 광장 숲을 조성하면서 덕수궁 동쪽 돌담 개방을 둘러싼 찬반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지난해 시작된 광장 숲 조성 사업은 시청 앞 광장 1만2459㎡에 나무와 꽃 등을 심어 도심 속 숲이 있는 공원으로 탈바꿈하는 프로젝트다. 광장 주변에 이미 소나무 숲이 조성돼 있다. 장기적으로는 대한제국 유적인 광장 서쪽의 덕수궁과 동쪽의 환구단을 연계해 역사 보행 공간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1차 사업으로 지난 연말 환구단 정문을 가로막고 있던 철제 담장을 걷어냈다. 서울시는 서울광장과 마주 보는 덕수궁의 동쪽 담장도 헐거나 투명 담장으로 교체해 내부 풍경을 서울광장에서 볼 수 있게 하고 싶어 한다. 성사된다면 서울 도심의 모습을 바꾸는 큰 변화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강병근 서울시 총괄건축가(건국대 건축과 명예교수)는 “도시는 상상력이다. 덕수궁 돌담이 개방되면 궁궐 내부의 아름다운 전각과 연못, 녹지가 서울광장과 어울려 멋진 조경 자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광장을 광장 숲으로 조성하면서 왜 덕수궁에 주목했는가.

서울광장은 자동차만 다니던 시청 앞 교차로였다. 그때는 덕수궁 담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민이 찾는 광장으로 쓰임이 바뀌면서 덕수궁을 서울광장과 연계하는 방안을 고민하게 됐다. 덕수궁 옆에 국세청 남대문 별관이 있었다. 그걸 철거했더니 남대문 별관에 가려졌던 성공회 성당의 아름다운 모습이 드러나며 주변 풍경이 확 달라졌다. 덕수궁에도 그런 변화를 주고 싶다.

그래픽=정인성
강병근 서울시 총괄건축가. /박상훈 기자

-유럽의 궁전 담장은 대부분 내부를 볼 수 있는 투시형 담장이던데.

영국 버킹엄궁이나 프랑스 베르사유궁, 독일 샤를로텐부르크와 오스트리아 쇤브룬궁 담장은 모두 밖에서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게 돼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궁전은 대개 그 시대 건축미의 정수를 담고 있는데, 우리 궁궐은 그 아름다움을 담 안에 숨긴다. 반면, 유럽 궁전의 투시형 담장은 궁 내부의 건물과 정원이 지닌 아름다움을 담장 안에 가두지 않고 공개해 주변과 조화를 이루게 한다. 버킹엄궁 안에서 열리는 근위병 교대식을 담장 밖에서 구경할 수 있는 것도 투시형 담장 덕분이다. 바로크 양식인 베르사유와 쇤브룬, 신고전주의 양식인 버킹엄 담장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다.

바로크 양식으로 만들어진 베르사유궁의 화려한 담장. /플리커

-덕수궁 담장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다양한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담장 개방이 어렵다면 담을 눈높이 아래로 낮추거나 투명한 유리 담장으로 바꿀 수 있다. 담을 그대로 두고 눈높이 부분만 뚫어도 내부와 외부가 연결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야간에 조명이 환하게 켜진 덕수궁 전각과 궁 안의 울창한 나무숲을 서울광장이나 세종대로를 걸으며 감상한다고 상상해보라. 서울 도심의 야경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다만 궁궐이 크면 담장 개방으로 인한 안전 유지 부담이 클 수 있다. 덕수궁은 다른 궁궐들보다 작아 그런 부담도 덜하다.

-국가유산청(옛 문화재청)이 반대한다.

보존과 보전의 차이를 강조하고 싶다. 국가유산청은 보존을 지상 과제로 삼는다. 원래 모습대로 지키는 게 원칙이고, 훼손된 문화재 복원도 원형을 되살리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반면, 유럽은 보전을 강조한다. 보전은 원형을 가급적 유지하되 현대의 가치도 반영하는 개념이다.

-구체적인 보전 사례가 있는가.

독일 국회의사당은 제국 시기인 1894년 건축됐다가 1933년 방화 사건 이후 방치됐고 2차 대전 폭격으로 돌로 만든 상부의 돔이 파괴됐다. 통일 후 국회로 쓰기 위해 폐허로 남아 있던 건물을 1994년부터 5년에 걸쳐 복원했는데 그때 석재로 복원하지 않고 유리 돔으로 교체했다. 민주주의 국가의 의정 활동은 국민에게 숨김없이 공개돼야 한다는 생각을 그 변형에 담았다. 우리 궁궐 담장에도 이런 현대적 가치를 부여했으면 한다.

◇덕수궁 동쪽 담장, 세 번 옮겨지어

대한제국 시절 덕수궁 동쪽 담장 끝은 지금의 서울광장에 있었다. 일제강점기 총독부가 광화문에서 숭례문에 이르는 넓은 직선 도로(현 세종대로)를 내면서 동쪽 담장이 처음으로 옮겨졌다. 이때 담장이 궁궐 안쪽으로 크게 물러났다. 해방 후인 1959년 이승만 대통령은 “덕수궁 동쪽 돌담을 허물고 보기 좋은 철책을 쳐서 행인이 덕수궁 내 풍경을 볼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그 후 이 대통령이 하야하고 민주당 정권과 공화당 정권이 연이어 들어섰지만 돌담 철거와 투시형 철책 담장 설치는 그대로 추진됐다. 1961년 10월, 기존 돌담 대신 높이 3.12m의 투시형 철제 담장이 들어섰다. 이때 도로가 6m 넓어지면서 철책 위치도 궁궐 안쪽으로 더 들어갔다. 투시형 담장은 찬반 논란을 일으켰다. “산책하면서 궁궐 안쪽을 볼 수 있게 됐다”며 반기는 이도 있었지만 “철책이 덕수궁과 도로의 경계만 표시하는데 그쳐 미적 고려가 부족한 흉물이 됐다”는 지적도 있었다. 7년 뒤인 1968년, 당시 국회의사당(현 서울시의회) 앞 도로가 확장되면서 덕수궁 동쪽 담장이 또다시 옮겨졌다. 국가유산청은 처음엔 담장 이전에 반대했지만 철책을 원래의 돌담으로 되돌리는 조건으로 동의했다. 그 결과, 덕수궁 경내로 16m 더 후퇴해 지은 것이 지금의 덕수궁 동쪽 담장이다. 덕수궁 돌담이 문화재로서 가치가 불분명하다는 주장은 이런 역사에서 비롯됐다.

◇서울시장 선거 때 “경복궁 담장 개방하자” 제안도

박영선 전 의원이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며 덕수궁과 경복궁 담을 일부 헐어 시민에게 개방하자고 제안했다. “궁궐은 서울의 랜드마크인데 지금의 고궁은 시민이 접근하기 불편하다”면서 “담장 흔적은 남겨두되 안이 들여다보이도록 해서 왕족의 궁궐에서 시민의 궁궐로 바꿔보자”고 했다. 경복궁은 동십자각과 연결됐던 동쪽 담장이 일제 때 헐린 적 있고, 지금도 담 일부를 헐어 국립민속박물관 출입구로 쓰고 있다. 이 출입구 쪽 담장을 지금보다 넓게 개방하거나 정면의 광화문 쪽 담장을 개방하면 경복궁 내부의 흥례문·근정전과 그 뒤의 북악산·인왕산을 눈높이에서 동시에 조망할 수 있게 된다. 궁궐의 유지 관할권을 가진 국가유산청은 반대한다. 궁궐 담장이 궁궐에 영역성을 부여하고 궁궐 가치를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서울시도 지난해 덕수궁 담장 개방을 제안했지만 국가유산청은 전통 방식으로 복원해 반세기 넘게 존속해온 담장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유럽은 ‘투시형’이 대세...궁전의 아름다움 가두지 않아

일제가 종묘 관통도로(현 율곡로)를 내며 둘로 나뉘었던 종묘와 창경궁이 재작년 율곡로를 지하화하고 그 위에 흙을 쌓으며 다시 연결됐다. 그 사이로 320m 산책로가 만들어졌다. 이 산책로의 종묘 쪽엔 담장이 들어섰지만 창경궁 쪽엔 사람 키만 한 투시형 철제 펜스가 설치됐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펜스 사이로 창경궁 경내를 볼 수 있다. 덕수궁에도 내부를 조망하며 산책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덕수궁 돌담 1.1㎞ 가운데 영국대사관과 접한 북쪽의 70m 구간이다. 기존 돌담 안쪽에 보행로를 깔아 시민을 위한 산책로를 조성하고 산책로와 덕수궁 사이에 높이 1m 경계 난간을 설치했다. 창경궁과 덕수궁의 투시형 담장은 궁의 경계를 나누거나 외부인 침입을 막는 기능만 할 뿐, 유럽의 궁궐 담장 같은 장식미가 없다. 1961년 설치됐던 덕수궁 철제 담장이 7년 만에 사라진 데는 궁궐의 아름다움과 조화하지 못한 이유도 컸다. 투시형 담장이 실현되더라도 유럽의 궁들처럼 조형미를 살리거나 전통과 조화하는 모습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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