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돈선의 예술인 탐방지도 -비밀의 방] 74. 날아라 민은홍
중학교 음악선생님 잠재력 알아봐
전국 학생 콩쿠르 ‘대상’ 음악계 주목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수석 입학·졸업
춘천시향 협연·콘서트·오페라 공연 등
성악 대중화 목표 실력으로 승부
‘미소 천사·천상의 소리’ 별칭
가곡 중에 내가 제일 많이 듣는 노래가 있다. ‘그리운 금강산’이다. 이 노래의 전주곡이 울리기만 하면 나는 설레기 시작한다. 우리 겨레의 숨결과 우리 겨레의 혼과 우리 겨레의 아름다움이 비단결처럼 흐른다. 한국인이라면 어찌 그러하지 않겠는가. 조수미를 비롯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노래를 불렀던가. 그리움과 설렘이, 잔잔한 밀물이 되어 나를 채운다.
나는 오늘 민은홍의 ‘그리운 금강산’을 듣는다. 그렇게 오래오래 나는 금강산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떠올린다. 나는 민은홍의 노래에 취한다. 맑고 아름다운 음색이다. 금강산을 부르듯이, 간절함 하나로 외쳐 부른다면, 그 부르는 이의 가슴 속에 오래오래 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렇다. 우리의 가슴속에 오래오래 남는 메아리가 분명히 존재한다. 바로 민은홍이다.
유월 십 일 월요일, 볕이 좋은 오후다. 그니의 스튜디오는 피아노 한 대가 놓여있을 뿐인 간결한 공간이다. 성악가 민은홍은 경남 양산에서 공연을 마치고 돌아왔다. 양산문화예술회관에선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이 공연됐다. 민은홍은 그레텔 역을 맡아 열연했다. 토요일 연이은 두 번의 공연이었는데, 관중석이 꽉 찼다고 한다. 늘 긍정적인 마음의 소유자인 민은홍은 한 점 피로감도 내비치지 않은 채 명랑하게 입을 연다. 그니의 말은 노래처럼 즐겁다. 민은홍은 공연 포스터와 공연 사진을 내게 보여준다. 그레텔로 분장한 그니는 유월의 장미처럼 웃는다.
민은홍은 지금까지 일천 회의 공연을 해왔다. 노래는 민은홍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사실 민은홍이 성악가가 된 결정적 계기는 중학교 때 음악을 가르친 윤병하 선생님 때문이었다. 부모님은 외동딸을 피아니스트로 키우고 싶어 했다. 하지만 윤병하 선생님은 민은홍의 천부적인 목소리를 알아보았다. 아버지는 결국 선생님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열아홉 되던 해 민은홍은 전국 학생음악 콩쿠르에서 은상을 받았다. 그리고 4년 후엔 최고상인 대상을 받음으로써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윤병하 선생님의 혜안이 틀림이 없었음을 증명해준 결과물이었다.
민은홍은 강원대 음악학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민은홍은 430년 전통의 로마 산타체칠리아 국립음악원을 당당히 수석으로 입학했다. 음악인이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산타 체칠리아. 성악계의 별 조수미가 수학한 학교라서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알려진 학교이다. 그곳에서 레베카 베르그 교수에게 사사한 민은홍은 1등으로 조기 졸업했다. 수석 입학에 수석 졸업인 그니에겐 배움에 대한 열망이 뜨거웠다. 그래서 동 음악원에서 다시 전문과정인 음악 교수법과 로마 A.I.D.M 아카데미 과정을 동시에 이수했다.
당시 여러 나라 예술가들과 수학했는데, 북한 학생들과의 만남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들 중 메조소프라노 황은미는 북한 최고 반열의 성악가가 되었다. 이탈리아에서 7년 동안의 공부 중에도 민은홍은 현지 대회에 나가 입상하는 등, 당시로선 상당히 주목받는 성악가로 성장해 있었다. 그니의 이탈리아풍의 음색은 독특하고 청아했다. 그런 민은홍을 이탈리아 음악계는 미래의 자산으로 평가했다. 그냥 이탈리아에 남아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한 것은 월송리 농부인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를 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성을 다해 딸을 뒷바라지한 아버지 어머니 곁으로 가고 싶었다. 오랜 숙고 끝에 민은홍은 귀국길에 올랐다. 귀국한 민은홍은 2010년 신년 음악회에서 춘천시향 협연으로 오페라 마농의 아리아를 불렀다. 맑고 원숙한 그니의 노래는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엄했다. 대학에서 시간 강사를 하며 노래를 병행했지만, 민은홍을 정식 교수로 채용하는 대학은 없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유학하고 귀국한 음악인들 대부분이 그랬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가고 자신의 존재가 희미해지면, 더 이상의 출구를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430년 전통의 산타체칠리아 국립음악원 수석 입학과 수석 졸업은 졸업장에 남는 기록일 뿐이었다. 여기에선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할 필요가 있었다. 실력으로 모든 걸 보여주자. 이 결심은 민은홍을 새로운 세계로 이끄는 힘이 되었다. “성악을 대중화하여 모든 이가 클래식의 애호가가 되게 하자”라는 모토를 스스로 세웠다.
그로부터 민은홍은 어디에서건, 어느 때건, 관객이 적든 많든, 노래를 불렀다. 자신을 불러주는 곳이면 어디든 갔다. 단 몇 명이라도 자신의 노래를 듣고자 하면 정성을 다해 노래했다.
차츰 민은홍의 이름이 전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실력 있는 성악가, 겸손하고 친절한 성악가라는 평을 받았다. 민은홍은 오페라나 콘서트, 시향과의 협연 등 큰 공연 중에도 틈만 나면 예술인들, 직장인들, 가족들의 작은 모임, 초중고 학생들, 요양원 어른들을 찾아 노래를 불렀다.
어른들은 미소 천사, 천상의 소리란 별칭으로 민은홍을 환호했다. 그리고 따뜻이 손을 잡아주곤 했다. “세상에 이런 풍부하고 아름다운 노래를 어디서 들어보겠어”라며. 대단한 인기였다. 그래서 민은홍의 고정 팬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왔다. 자신을 이화준이라고 소개하면서 예술문화 기획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민은홍의 노래에 매력을 느낀 그는 민은홍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그건 진심이었다.
민은홍의 매니저가 된 이화준은 다음카페를 개설하여 ‘소프라노 민은홍’을 개설했다. 그리고 민은홍의 공연, 일상생활, 팬 관리 등 민은홍의 활동 영역을 총괄 관리하고 체계화해 나갔다. 카페 ‘소프라노 민은홍’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운영되는 카페 중 하나로 성장했다.
민은홍은 그로부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지금은 강원대 출강과 더불어 2016년부터 지금까지 강원대 백령 오페라단 단장이란 중책을 맡고 있다. 또한 박사과정을 마친 후, 박사학위 논문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민은홍은 음악계의 중요 이사직을 두루 역임했고, 춘천연극제 홍보대사, 강원대 총동창회 부회장, 국제연극제 조직위원, KBS 춘천 FM ‘이야기가 있는 클래식’ 고정 게스트, 전국 관악경연대회 운영위원 등 음악 활동과 더불어 사회활동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두루 참여했다.
클래식은 대중 앞에 서야 한다. 이것이 민은홍의 생각이기에 민은홍은 사람들과 만나서 듣고 이야기하고 노래하곤 했다.
어느 대학교수가 민은홍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 적이 있다.
“클래식을 대중화한다는 일로 클래식의 질을 떨어트리는 우를 범할까 심히 염려된다.”
이에 민은홍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대답해 주었다고 한다.
“노래는 다 아름다워요. 대중음악이든 클래식이든요.” 시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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