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민의 정치 포커스] 이재명과 한동훈의 급소
차기 대통령 지지율 조사에서 압도적 여·야 1위인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전당대회 출마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모두 관례를 깬 출마다. 총선 참패에 책임지고 물러났던 비대위원장이 당대표에 다시 출마한 유례가 없다. 2004년 총선 때 당을 이끌었던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총선 패배 직후 전당대회에서 대표가 된 사례가 있으나 그땐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인한 괴멸적 패배를 막아내 ‘박다르크’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큰 공으로 평가받았다.
이재명 대표의 연임 도전도 김대중 총재 이후 처음이다. 유력한 대선 주자인 두 사람의 출마로 두 당 모두 ‘당권·대권’ 분리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 국민의힘은 대선 1년 6개월·민주당은 1년 전부터 대선에 나가는 사람은 대표를 맡지 못한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선에 출마하려면 선거일 1년 전에 사퇴하도록 돼 있는) 당헌 25조 2항을 그대로 두되 ‘특별하고 상당한 사유가 있을 때는 당무위원회의 의결로 당대표 및 최고위원의 사퇴 시한을 달리 정할 수 있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사실상 사문화됐다.
국민의힘 황우여 비대위원장은 “당대표가 자기가 나가는 대선을 주도하지 않아야 공평한 것 아니냐는 게 당헌의 취지”라며 당헌 수정에 반대했다. 결국 한동훈 전 위원장은 ①2027년 대선 불출마 ②(대선 1년 6개월 전인) 2025년 9월 대표 사퇴 ③당대표가 돼서 당헌 수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여·야의 대선 지지율 1위인 한동훈과 이재명은 2027년 대선에서 맞붙을 수 있을까. ‘법원의 시간’에 쫓기는 이재명과 ‘대통령의 시간’에 맞서야 하는 한동훈 모두 넘어야 할 허들이 많다. 담대한 도전일까? 무모한 도전일까?
‘이재명 대통령’을 가로막는 위협은 ‘사법 리스크’만이 아니다. 민주당의 ‘다수당 폭주’가 더 위험하다. 민주당의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모두 ‘여소야대’ 상황에서 대통령이 됐다. 독재에 대한 기억은 대통령과 압도적 여당의 결합을 두려워한다. 2020년 180석을 확보한 민주당의 ‘검수완박’ 독주도 정권 교체 이유 중 하나다. 2022년 대선 이후 2년 동안 윤석열 대통령을 지켜본 국민은 겨우 115석으로도 야당과 협치를 하지 않는 대통령이 150석 이상의 의석을 갖는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충분히 예상했다. 대치가 독재보다 낫다는 판단이 총선 결과다.
지금 민주당은 4년 전보다 훨씬 심하다. ‘3년은 길다’며 노골적으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말한다.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됐지만 이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안동완 검사를 탄핵했다. 손준성·이정섭 검사 탄핵 심판도 진행 중이다. 민주당은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을 수사한 검사들 탄핵도 추진하고 있다.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도 탄핵 대상이다.
개혁신당을 빼더라도 189석을 확보한 야권은 무슨 법이든 통과시킬 수 있다. 국회 상임위도 원하는 대로 법사위·운영위·과방위원장도 모두 차지했다. ‘집권 야당(?)’이라고 자조하는 국민의힘은 민주당 힘 자랑 앞에서 한없이 무력하다. 언뜻 보면 민주당이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듯 보인다. 과연 그런가.
특검이든 법안이든 대통령은 모두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다.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하면 200석 이상으로 재의결할 수 있을까. 탄핵은 헌재에 막힐 것이고, 방통위원장은 탄핵 전에 사퇴하고 다른 사람 임명해서 결국 대통령 뜻대로 할 것이다. KBS 사장 임명도 막을 수 없었듯 MBC 사장 해임도 막지 못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하고 싶은 걸 막을 순 있어도 이재명 대표가 원하는 건 얻을 수 없다. 대통령 탄핵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고, 임기 단축 개헌은 대통령이 거부하고, 정치적 타협은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 모두 원하지 않는다면 남은 카드는 지금처럼 ‘비토크라시’ 상태가 계속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재명 대표가 얻는 게 뭘까. 사법 리스크 허들을 모두 넘고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다 치자. (개혁신당을 뺀) 189석 의석을 가진 채로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하고 싶은 대로 모든 걸 할 수 있는’ 대통령을 국민이 용인할까.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이 전략적으로 고민할 지점이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도 험로가 예상된다. 임기가 3년이나 남은 시점에 (대통령과 갈등 관계에 있는)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가 당대표가 되겠다고 나선 사례는 없다. 만약 한동훈이 대표가 된다면 여권은 ‘이중 권력’ 상황에 놓이게 된다. 영남 현역 의원들과 윤석열 대통령을 한 축으로, 수도권 당협 위원장들과 한동훈 대표를 한 축으로 대립하는 형국이 될 것이다. 윤 대통령의 레임덕은 불가피하다.
한동훈이 말하는 ‘이·조 심판’이 지금은 이철규와 조정훈을 말한다는 데서도 알 수 있듯 이번 전쟁은 내전이다. 내부 공격이 방어하기 더 어렵다. 게다가 상대는 백전노장이다. 윤상현 의원은 ‘당권·대권’ 분리 당헌으로 포문을 열었다. 2027년 대권 포기, 당헌 개정, 2025년 9월 사퇴 중에 어떻게 할지 밝히고 출마하라고 압박했다.
불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의원도 가세했다. 한동훈 위원장이 출마한다면 ①총선 참패에 대한 성찰 ②당 개혁 방향 ③대한민국 미래 비전에 대해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다. 출마 여부가 불확실한 유승민의 출마 가능성도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반윤’ 지지 기반이 겹치는 유승민이 출마한다면 결선투표의 변수가 될 수도 있다.
높은 지지율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화가 투사된 것이 분명하지만 윤 대통령에 대한 당원과 지지층의 태도는 양가적이다. 한편으로는 대통령 국정 운영 태도에 화가 나지만 한편으로는 대통령과 당대표가 충돌할까 우려가 큰 것도 사실이다. 유력한 대항마인 나경원 의원은 그 점을 겨냥했다. “우리 당은 친윤, 비윤, 반윤 또는 친한, 반한 이런 것들과 결별했으면 한다”며 “제가 지금껏 걸어온 정치에는 친(親)도 반(反)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한동훈의 급소를 찔렀다. 이젠 되돌아갈 수도 없다. 루비콘강을 건너며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한 말대로 “주사위는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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