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300] 강을 건너려는 진흙 보살

유광종 종로문화재단대표 2024. 6. 20.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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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성규

“진흙 보살이 강을 건넌다면(泥菩薩過江)…”이라는 퀴즈의 물음에는 “(남은커녕) 자신조차 보호하지 못한다(自身難保)”는 정답이 따른다. 진흙은 물에 금세 녹아내리기 때문이다. 헐후어(歇後語)라는 문답 형식의 중국 민간 언어다.

답에 등장하는 ‘보신(保身)’의 개념은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는 일이다. 이를 친절하게 일깨우는 성어가 명철보신(明哲保身)이다. ‘명’이나 ‘철’은 다 사람의 지혜를 가리킨다. 슬기롭게 대처함으로써 위험으로부터 저를 지킨다는 뜻이다.

예로부터 중국은 다난(多難)의 땅이었다. 참혹한 전란(戰亂)이 수도 없이 닥쳤고, 큰 면적에 넓게 번지는 가뭄과 홍수 등 각종 재해도 늘 잇따랐던 곳이다. 그곳에서 생존하려는 노력이 이런 언어 습속으로 이어졌다.

유방(劉邦)을 도와 한(漢) 왕조를 세우는 데 큰 공을 이뤘으나 권력을 탐하지 않음으로써 제 명을 지킨 장량(張良), 월(越)나라 구천(勾踐)을 보필해 오(吳)나라를 꺾었으나 역시 선뜻 물러났던 범려(范蠡) 등이 ‘명철보신’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중국의 ‘명철’ 전통은 아주 풍성하다. 다양한 경험적 사례가 모이고 쌓여 명청(明淸) 무렵에 이르러서는 ‘삼십육계(三十六計)’라는 대표적 저작이 등장한다. 그러나 목적을 이루고자 서슴없이 사술(詐術)까지 동원하는 조잡한 내용들이다.

‘명철’이 대표하는 중국의 지혜는 본래 훌륭했다. 그러나 후대로 가면서 제 이익을 챙기는 ‘보신’으로만 이어진 점이 문제다. 다양성 속 경합이 뿜어냈던 슬기로움의 지적 전통이 줄곧 잔꾀로만 기울어 ‘문명의 퇴행’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현대 중국의 집권 공산당은 그런 퇴행을 거스를 수 있을까. 전망은 썩 밝지 않다. 체제 안정만을 내세우며 국민들을 우민(愚民)으로 만드는 정도가 날로 심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마치 진흙 보살이 강을 건너려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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