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동현의 예술여행] [19] 이변 없는 평안한 세계의 풍경
런던 햄프스테드 히스와 켄우드 하우스
급작스러운 불볕더위에 정신을 못 차리는 요즘이다. 뉴스를 보면 농작물 감소나 자연재해 등, 여러 문제를 촉발하는 기상 이변이 올해 큰 이슈인 듯하다. 이렇게 이변을 거듭하는 세상을 접하고 있자니, 예측 가능하고 평안한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다. 아마 큰 이변 없이 기분 좋은 결말을 맺는 ‘로맨스 코미디’ 영화가 여전히 인기를 끄는 이유일 것이다.
이제는 로맨스 코미디 영화의 ‘클래식’으로 평가받는 ‘노팅 힐’ 또한 이러한 스토리 라인을 충실히 따른다. 미국 할리우드의 유명 여배우와 영국 노팅 힐의 작은 여행 서점 주인의 로맨스다. 노팅 힐 포토벨로 마켓, 사보이 호텔 등 런던의 유명 장소가 많이 나와서 런던 가이드 영화 같기도 하다. 영화를 보면서 남주인공이 여배우의 ‘거짓’ 험담을 들은 영화 촬영 장소가 궁금했다. 아름다운 곳이었다. 찾아보니 런던 햄프스테드 히스에 있는 켄우드 하우스다.
햄프스테드 히스는 도시에 있는 넓은 황야, 숲이다. 화창한 봄날에 이곳을 찾았다. 입구부터 오솔길과 그 옆으로 목초지와 숲, 호수가 펼쳐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산책, 일광욕을 하거나 수영을 하고 있다. 흡사 19세기 인상파 그림에서 보던 여유로운 풍경들이다. 한참을 올라가자 켄우드 하우스가 눈에 띈다. 켄우드 하우스는 17세기에 지은 대저택으로 주인이었던 에드워드 기네스 백작이 1927년 국가에 기증했다. 여기에는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조슈아 레이놀즈, 토머스 게인즈버러 등 우리가 미술사에서 익히 접한 화가들의 미술 작품들이 걸려 있다. 평생 자화상을 80여 점 그려 유명한 렘브란트의 ‘두 원이 있는 자화상(1665~1669)’도 이곳에 있다. 미술관, 박물관의 딱딱한 분위기가 아니라 고풍스러운 저택 내부를 방문한 느낌으로 미술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색다른 경험이다. 집 안(혹은 미술관)을 둘러보고 나온다. 저택 앞 정원은 멋진 봄날을 즐기는 사람으로 북적인다. 나도 풀밭에 자리를 잡고 가만히 눕는다. 푸른 하늘과 구름이 아름답다. 평안한 풍경이다.
요즘은 날씨도 이변을 드러내지만, 세상도 이례적으로 날이 선 듯한 분위기다. 좀 더 부드럽고 예측 가능한 세계가 돌아오기를 바라며, 영화 ‘노팅 힐’의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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