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한의 메디컬리포트]의료가 살려면 환자의 병원이용도 바뀌어야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2024. 6. 20.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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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대한의사협회 주최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의대 증원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올 2월 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 후 의료계가 4개월째 요동치고 있다. 18일 서울 여의도에선 4년 만에 약 1만2000명(경찰 추산·주최 측 추산 약 4만 명)의 의사들이 모여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문제를 제기하며 사직서와 휴학계를 제출한 전공의(인턴, 레지던트)와 의대생들은 여전히 대부분 병원이나 학교로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의대 교수들은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4개월 동안 대신하며 피로가 누적된 상태다. 그래도 언젠가는 전공의들이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앞으로 계속 돌아오지 않을 것이란 점이 갈수록 명확해지면서 교수 사이에선 ‘더 이상은 참고 일하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생겼다.

지금까지 큰 의료공백이 없었던 것은 정부가 노력한 결과라기보다 50, 60대 의대 교수들이 밤낮으로 병원을 지킨 결과다. 그런 의대 교수들을 정부는 ‘구상권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며 압박했다.

몸과 마음이 지친 의대 교수들은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돌아오길 바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정부에 전공의 대상 행정처분 취소 등을 요구했다. 그런데 정부는 ‘철회’는 할 수 있어도 ‘취소’는 어렵다고 선을 그으며 사태 수습이 어려워졌다. 상당수 의대 교수들은 “열심히 의료공백을 메웠는데 범죄자 취급까지 하니 자존심이 뭉개졌다. 더 이상 일하기도 지쳤다”고 한다.

지금의 상황은 오랜 기간 의료계의 문제점이 누적된 결과다. 특히 생명과 관련된 필수의료 분야가 3D 업종으로 여겨지며 의사들이 지원하지 않는 문제는 수년 동안 지속돼 왔다.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 등이 이런 문제를 여실히 드러내는 현상이었다. 이미 의료계 곳곳에서 곪아 터지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다.

무엇보다 원가에 못 미치는 의료 수가(건강보험으로 지급되는 진료비)가 문제다. 의료 수가의 왜곡은 진료의 왜곡을 만드는 것이다. 의사들이 보험이 적용되는 내시경 수술보다 치료 결과는 비슷하지만 5배 이상 진료비를 받을 수 있는 비보험 로봇 수술을 선호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양성자 치료보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5배나 더 비싼 중입자 치료에 관심을 갖는 것도 같은 이유다. 현재 구조에선 이런 비보험 지출은 계속 늘어날 것이고 국민들의 의료비도 계속 증가할 것이다. 또 국민들은 실손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비싼 비보험 치료를 받을 수 없다. 요즘 유행하는 줄기세포 치료를 받는 상당수 환자가 실손보험 가입 환자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의료계에선 결국 국민들이 건강보험료를 더 내는 방식으로 현재의 저수가 구조를 해결하지 않으면 의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엔 쉽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어느 정부도 국민에게 불편과 부담을 주는 방식의 의료개혁에 나서지 못했다.

이번 의대 증원으로 인해 의료계의 치부가 모두 드러난 만큼 이를 바로 세우는 것은 정부의 몫이 됐다. 국민들에게 더 많은 부담이 필요하다고 용기 있게 얘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지난 4개월 동안 많은 국민들이 알게 된 게 있다. 대학병원급 응급실은 정말 중증인 환자들만 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경증 환자가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면 주변 작은 병원으로 돌려보내고 대신 정부는 대학병원에 응급환자 회송료를 지급하고 있다.

경증 환자나 만성 질환자들이 단순 약 처방을 위해 대학병원에 외래 진료를 신청할 경우 본인 부담금을 늘리거나, 환자 회송료를 지속적으로 지급하는 등의 방식으로 이를 막아야 한다. 불편하지만 중증 환자만 대학병원을 이용해 달라는 캠페인도 필요할 것이다.

또 한국은 대학병원 닥터 쇼핑이 가능한 나라다. 한 곳에서 진단을 받으면 서너 곳을 더 찾아서 추가 진단 및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닥터 쇼핑은 결국 의료비 증가를 불러오기 때문에 가급적 이를 줄이는 의료 정책이 필요해 보인다. 주치의 제도, 환자의 의료 선택 자유 제한, 의료 전달 체계 강화 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정부가 내야 한다.

정부도 이를 알고 있다. 당장 다음 달 1일부터 연간 진료 횟수가 365회를 넘으면 진료비의 90%를 환자가 부담하게 한 것도 환자들의 과잉진료 탓에 건강보험 재정에 손해를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한 정책이다. 환자들이 덜 편해야 의료계가 살 수 있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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