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무서워요”…지진 후 ‘이 질환’ 발병 위험 높아져
지난 12일 전북 부안에서 규모 4.8의 지진이 발생했다. 현재까지 신고된 지진 피해는 900건이 넘었지만 인명피해는 없었다. 그런데 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직접적인 인명피해가 없더라도 거주민들의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특히 지진이 허혈성 심장질환의 발병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충남대 의대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이목이 집중됐다. 해당 연구는 지난 2월 국제학술지인 ‘BMC 공중보건(BMC public health)’에 게재됐다.
16년도 경주 지진, 허혈성 심장질환 유발…1년 이내 발병률 가장 높아
충남대 의대 연구팀은 2016년 9월 12일 경북 경주시에서 발생한 국내 지진계기 관측 이래 최대 규모(5.8)의 지진에 집중했다. 연구진은 해당 지진과 심장질환 사이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 2014년 이후 거주지를 변경하지 않은 경주 지역 주민 54만 858명을 대상으로 병원 또는 응급실 방문 이력을 조사했다.
대상자의 2010년부터 2019년 사이의 의료기관 방문 이력을 확인한 결과, 지진이 허혈성 심장질환 발생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밝혀졌다. 지진이 발생하기 전에는 경주 지역 주민의 허혈성 심장질환 평균 발생률이 다른 지역보다 3%가량 낮았던 데 비해, 지진 발생 이후에는 다른 지역보다 최대 58% 높은 위험비를 보인 것이다. 특히 지진이 발생하고 1년 이내에 발생한 경우가 절반을 넘으며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허혈성 심장질환이란 심장벽의 근육(심근)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인 관상동맥이 막혀 심장 근육이 괴사하는 질환을 통칭한다. 만약 6시간 이내에 혈관이 다시 개통되지 않으면 심근의 영구적인 괴사가 일어날 수 있다. 흔히 알고 있는 심근경색, 협심증 등의 질환이 허혈성 심장질환에 포함되는데, 특히 급성 심근경색이 나타난 경우 환자의 10명 중 3명은 병원에 채 도착도 하기 전에 사망할 정도로 치명률이 높다.
지진에 대한 두려움, 허혈성 심장질환 유발하는 생리적 반응으로 나타나
연구팀은 지진이 허혈성 심장질환을 유발하는 데에는 심리적 원인이 작용한 것으로 추정했다. 지진과 여진으로 인한 두려움 등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교감신경과 내분비계에 영향을 미쳐 허혈성 심장질환의 위험을 높인다는 것.
교감신경 활성도와 뇌하수체를 통한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HPA) 축 호르몬 분비가 증가하면 심근수축력이 증가해 맥박수가 늘고, 혈관이 수축하면서 혈압이 상승한다. 외부의 위협에 대처할 수 있도록 혈관 내피세포의 기능 변화, 발한, 혈소판 응집 증가 등 다양한 생리적 변화도 함께 나타난다.
이러한 변화가 일정 수준으로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생리적 반응으로 문제가 되지 않지만, 과도하게 발생하는 경우에는 허혈성 심장질환에 더해 혈관 내피세포의 기능 부전, 부정맥 등 심장 건강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해외에서도 지진과 허혈성 심장질환 사이 인과 관계 여럿 발표해
그동안 해외에서도 지진과 허혈성 심장질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여러 보고가 있었다. 199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규모 6.7의 지진이 발생한 지 5시간 만에 심장질환으로 추정되는 사망자 비율이 증가했다고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지진 발생 시각이 새벽 4시인 점으로 미루어 보아 사망 당시 신체 활동이 없었을 것으로 예측되는 점이나, 가장 대표적인 증상이 흉통이었던 점 등을 고려해 심근경색에 의한 급성심장사망을 의심했다.
일본은 규모 6.8의 지진이 발생한 2004년 이후 3년간 급성심근경색 관련 사망률이 지진 발생 이전 5년과 비교했을 때 14% 증가했다고 보고한 바 있다. 뉴질랜드에서는 2010년과 2011년 각각 규모 7.1과 6.3의 지진이 발생한 후 5주간 급성 심근경색과 심근병증으로 인해 입원한 환자의 수가 급증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지진 증가 양상…평소 스트레스와 심혈관 건강 관리 필요
국내에서 지진계기 관측이 시작된 1978년 이후 지진의 강도와 빈도가 꾸준히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고, 더 빈번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측된다. 일부 전문가는 대지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따라서 지진 후 발생할 수 있는 심혈관 질환에 대한 평소 대비가 필요해 보인다.
우선 지진이 발생한 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불안, 우울, 불면 등의 심리적 증상이나 어지러움, 구토 등의 신체적 증상이 나타난다면 스트레스 대응 정신건강 교육 수료나 심리 상담 등의 치료가 필요하다. 일상 속에서는 재난에 대한 뉴스를 반복해서 시청하지 말고. 평소처럼 생활하도록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다. 만약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적극적으로 도와줄 것이 권고된다.
지진이 발생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심장 건강을 꾸준히 관리해 주는 것이 좋다. 비만이나 고혈압, 당뇨 등의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 체중과 혈압, 당 수치 관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기저질환이 없는 경우에도 콜레스테롤이 적은 음식과 식물성 식품을 식단에 많이 포함해 섭취하고,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건강을 관리해 주면 도움이 된다. 이때 순간적으로 큰 힘을 주는 운동은 심장에 무리를 줄 수 있으니 자제하고, 일정한 속도와 힘으로 진행하는 달리기 등이 권장된다.
최재아 하이닥 건강의학기자 hidoceditor@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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