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조기총선 '1차 상대'는 극우 아닌 좌파"

송진원 2024. 6. 20.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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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식 언사로 좌파동맹 먼저 공격해 부동층 끌기 작전
2차 투표서 反극우 결집 시도…당 내부선 불안·불만
18일 브르타뉴를 찾은 마크롱 대통령의 얼굴이 한 지역민의 선글라스에 반사됐다.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극우 언사'를 써가며 좌파 진영의 공약을 비판하는 것은 단순 말실수가 아닌 계산된 선거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차 투표에서 좌파 연합을 먼저 누르고 2차 투표에 올라가 극우 국민연합(RN)과 맞붙으면 승산이 없지 않다는 판단이 깔렸다는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18일(현지시간) 행사차 브르타뉴 지방을 방문해 좌파 연합 신민중전선(NFP)을 겨냥해 "이민 친화적"이라고 낙인찍고 그들의 성소수자 성별 변경 절차 간소화 공약을 "어불성설"이라고 비난했다.

이민에 비판적이고 성소수자 인권에 소극적인 극우 인사의 입에서나 나올 법한 수준의 발언이었다.

NFP 측의 거센 비판을 불러온 이 발언에 대해 일간 르몽드는 20일 마크롱 대통령의 실수가 아니라 전술로 봤다.

마크롱 대통령은 브르타뉴를 방문하기 전 파리에서 지역 신문사 편집장들과 만나서도 같은 식으로 NFP를 공격하며 이번 선거 운동은 무엇보다 1차 투표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언급했다.

좌파 동맹과 극우 사이에 낀 집권 여당이 1차 투표에서 NFP를 누르고 2차 투표에 진출하면 반(反) RN 진영의 표를 흡수해 다수당 지위를 사수할 수 있다는 계산이라고 르몽드는 보도했다.

프랑스 총선 1차 투표에서 당선되려면 등록 유권자 수의 25% 이상, 당일 총투표수의 50% 이상을 득표해야 한다. 여러 정당이 한꺼번에 경쟁하는 구도여서 1차 투표에서 바로 당선되는 경우가 드물다.

2차 투표엔 1차 투표에서 등록 유권자 수의 12.5% 이상을 득표한 후보자가 진출한다. 이 조건을 충족하는 후보가 없거나 1명뿐이라면 상위 득표자 2명이 2차 투표에 나서 최다 득표자가 당선된다.

마크롱 대통령 입장에선 1차 투표에서 NFP보다 많은 표를 얻어야 여론조사에서 선두인 RN과 2차 투표에서 겨뤄볼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첫 번째 단계가 NFP의 극단적 공약이나 균열을 부각해 좌파 동맹을 분열시키는 것이라고 르몽드는 지적했다.

좌파 정당들은 정치적 스펙트럼이 다소 다르지만 극우 집권을 막겠다는 대의로 이번 총선에서 동맹을 맺었다. 이들 가운데 극좌 정당인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는 친 하마스, 반유대주의 성향을 띄어 좌파 진영 내에서도 종종 비판이 나오곤 한다.

엘리제궁의 한 고문은 르몽드에 "NFP에 합류했지만 그들의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RN에 많은 표를 던지는 농촌 표심을 얻기 위해 이런 발언을 내놨다는 분석도 있다.

마크롱 대통령이 문제의 발언을 한 브르타뉴는 그동안 극우 사상에 가장 저항적인 지역으로 꼽혀 왔다. 그러나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 RN은 이 지역에서 25.6%의 득표율로 다른 정당들을 크게 눌렀다.

이 투표 결과에 대해 좌파 성향의 브르타뉴 도지사는 앞서 "브르타뉴도 프랑스 내 공포와 민주주의에 대한 피로감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고 진단했다.

브르타뉴 주민들 만나는 마크롱 대통령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일간 르파리지앵은 이런 배경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농촌 인구와 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짚었다.

엘리제궁에 가까운 한 인사는 "대통령은 RN이 아직 확실히 표를 확보하지 못했고, NFP는 사람들을 겁준다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LFI와 그 동맹 세력을 공격함으로써 흔들리는 유권자를 일깨우면 우리에게 돌아설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지역 신문사 편집장들을 별도로 만난 것도 이런 지방·농촌 민심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마크롱 대통령의 이런 전략이 실제 투표 결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미디어 역사학자 알렉시스 레브리에는 르몽드에 "마크롱 대통령은 극우파의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암묵적으로 상대를 옹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거부감이 커져 집권 여당 후보들에게 악영향이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내부에서 나온다.

집권 여당의 한 후보자는 르파리지앵에 "대통령이 이런 발언을 할 때마다 우리는 점수를 잃는다"며 "그는 입을 다물고 자신이 만들어놓은 이 상황에서 우리가 빠져나올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집권 여당의 한 후보는 마크롱 대통령의 브르타뉴 발언을 뉴스에서 듣자마자 한 장관에게 "7월7일(2차 투표일)까지 그를 가두면 안 되겠느냐"는 문자를 보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s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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