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처하면 지체 없이 군사 원조’…냉전시대 문구 그대로 부활

유새슬 기자 2024. 6. 20.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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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러 조약’ 뭐가 담겼나
리무진 받은 김정은, 푸틴에 풍산개 선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9일 금수산영빈관 정원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북한의 국견인 풍산개 한 쌍을 선물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조약 4조, 자동 군사개입 시사
유엔헌장 ‘자위권’ 명분 삼아
8조 ‘방위력 강화, 공동 조치’
북·러 연합훈련 진행 가능성
16조 ‘일방적 강제 조치 반대’
유엔 등 제재에 맞대응 피력
10조 ‘무역·경제·기술 교류’
국제사회 제재 위반 가능성 커

조선중앙통신이 20일 공개한 북·러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에서 가장 눈에 띄는 조항은 한쪽이 무력침공을 받으면 지체 없이 군사적 원조를 제공한다는 4조다. 냉전기 소련과 북한 사이 조약에 담겼던 자동 군사개입 조항이 28년 만에 부활한 셈이다. 양국이 사실상 군사동맹 관계를 회복한 것이어서 한반도 정세가 냉전기로 회귀했다는 우려가 나온다.

조약 4조는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들로부터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 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로씨야 련방의 법에 준하여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했다. 유엔 헌장 51조는 국가의 자위권을 규정한다. 1961년 체결된 조·소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 조약과 비교할 때, ‘북·러 법에 준하여’라는 단서가 추가된 것만 제외하면 문구가 사실상 동일하다. 1961년 조약은 1996년 폐기됐다.

이번 조약 3조는 한쪽에 대한 무력침략 행위가 벌어질 직접적인 위협이 있으면 양쪽이 이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가능한 실천적 조치들을 합의할 목적으로 쌍무 협상 통로를 지체 없이 가동시킨다”고 규정했다. 이는 2000년 북·러 우호친선 및 협력 조약(북·러 신조약)에 담긴 “쌍방은 즉각 접촉한다”는 내용과 유사하다.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가 무력 개입할 여지를 둔 것이다.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군사 지원을 할 토대를 마련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한국은 북핵위기를 명분으로 미국과의 안보 초밀착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데 북·러가 여기에 맞대응한 격이다. 유엔 헌장 51조를 준용한 것도 사실상 역내 불안정의 원인을 한·미·일로 돌리며 자위권을 명분 삼아 군사력을 행사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다만 법에 준한다는 단서는 러시아가 속도 조절할 장치를 마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러시아 연방 헌법에 따르면 영토 밖에서 러시아 군사력을 사용하려면 상원 재적 의원의 과반수가 찬성해야 한다.

조약 8조는 “전쟁을 방지하고 지역적 및 국제적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방위능력을 강화할 목적 밑에 공동조치들을 취하기 위한 제도들을 마련한다”고 명시했다. 이 조항을 기반으로 북·러가 연합 군사훈련을 진행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북·러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무력화하는 데 공동 대응하겠다는 점을 명문화했다. 조약 16조는 “치외법권적인 성격을 띠는 조치를 비롯하여 일방적인 강제 조치들의 적용을 반대한다”고 했다. 러시아가 상임이사국으로 있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는 물론이고 한·미 정부의 독자 제재에도 맞서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국제사회 제재를 위반할 가능성이 다분한 경제협력 분야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조약 10조는 “무역경제, 투자, 과학기술 분야들에서의 협조” “호상무역량을 늘리기 위해 노력” “세관, 재정금융 등 분야들에서의 경제 협조” “과학기술 분야에서 교류와 협조를 발전”시킨다고 했다.

‘포괄적’이라는 명칭에 맞게 이번 조약의 조항은 총 23개에 달한다. 1961년 북·러 간 조약은 조항이 6개, 2000년 신조약은 12개였다. 에너지·기후·보건·농업·교육·문화·관광·체육 분야 협력뿐 아니라 테러·인신매매·자금세탁 등 국제범죄에 대해서도 상호 협력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번 조약은 최고인민회의 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단독 비준을 받아야 발효한다. 북한은 이달 말 제8기 제10차 노동당 전원회의를 연 다음 최고인민회의를 개최할 것으로 보인다.

유새슬 기자 yoos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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