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기록의 기억] (128) 철마는 달리고 싶다
1953년 종전과 함께 군사분계선이 그어지면서 원산으로 가던 경원선과 신의주로 가던 경의선은 운행이 끊겼다. 경원선의 철원 ‘백마고지역’, 경의선의 임진각에 가면 ‘철도중단점’이라는 표시와 함께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유명한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임진각 철도중단점 표지석 바로 뒤를 보면 ‘미카3-244호’ 증기기관차가 있다. ‘미카’(일왕을 가리키는 ‘미카도’에서 유래) 시리즈는 원래 미국에서 일본에 납품한 것인데, 임진각에 있는 것은 1944년 일본에서 자체 제작한 것이다. 기관차에 ‘영등포 공작창 1979년 9월19일’의 명판이 박혀 있는 것으로 볼 때 1980년 영등포 공작창이 폐지되기 1년 전 영등포에서 임진각으로 이전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철마는 달리고 싶다’ 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은, 허물어지고 부식된 사진 속의 ‘철마’다. 1971년 사진에서 보듯이 이 기관차는 비무장지대인 파주시 장단역에 녹슨 채 방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로 불린다. 산(mountain)의 영어 발음을 음차하여 ‘마터’라 불린 이 기관차는 산악지대가 많은 이북의 화물 운송에 주로 쓰였다.
‘마터2형 10호’ 기관차는 왜 장단에 방치되었을까? 운행 중 중공군의 폭격을 맞아 탈선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이 아니다. 당시 이 기관차를 몰았던 한준기 기관사의 증언에 따르면, 1950년 12월31일 연합군의 군수 물자를 평양으로 수송하던 중 중공군의 남하로 황해도 한포역에서 화차를 돌렸다.
하지만 장단역에 도착하자마자 한 연합군 차량에서 20여명의 미군이 내려 기관차를 향해 난사했고, 화구가 터져 불길이 일어났다. 인민군과 중공군이 사용할 수 없게 불태우라는 명령이 떨어졌던 것이다. 그 후 인민군이 철로를 막고 있는 화차를 탈선시켰고, 탈선된 그 자리에서 철마는 반세기 이상 들풀과 함께 살았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경의선 복원 합의 후 철마는 2004년 등록문화재 제78호가 되었다. 부식 제거와 보존처리 작업을 거쳐 철마가 임진각에 온 것은 2009년 6월25일이다. 한·미 동맹은 끝없이 강화되고 북은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고 말하고, ‘대북전단’과 ‘오물 풍선’이 서로 날아다니는 지금, 갈기갈기 찢긴 이 철마의 아픔이 더 아리다.
김찬휘 선거제도개혁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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