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당신은 지금 어디에 살고 있나
오는 7월 열리는 하계 올림픽을 이유로 프랑스 정부는 지난 13개월간 1만명이 넘는 노숙인들을 파리에서 쫓아냈다. 도시정화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이들을 버스에 태워 지방의 임시수용시설로 퇴출시키고 거처로 삼던 텐트를 철거하는 등,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계층에 대한 비인간적 처사로 물의를 빚었다. 겉으로만 그럴듯해 보이는 도시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쫓겨났는지를 생각해보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홍대의 두리반, 이태원의 테이크아웃 드로잉, 서촌의 궁중족발…. 핫플에 자리 잡은 가게들이 월세를 버티지 못하고 쫓겨난다는 이야기는 어느새 익숙하다. 더 비싼 임대료를 낼 수 있는 자가 나타나면 도시는 언제라도 공간을 일구어낸 자들을 쫓아낼 준비가 되어 있다. 떠난 자리마다 엄청난 양의 건축물 쓰레기가 버려지고, 화학물질로 범벅된 고급 인테리어에 눈길을 빼앗긴 사이 정든 이웃은 쉽게 잊힌다. 전세금을 올려주지 못해 매년 이사를 다니는 우리들의 처지도 다르지 않다. 이웃 간의 살벌한 갈등은 사람들의 마음이 팍팍해서가 아니라 한곳에 오래 머무르며 신뢰와 정을 나눌 틈이 없기에 발생한다. 미처 이웃을 만나기도 전에 우리는 서둘러 이사를 가야 한다.
<보이지 않는 도시>의 저자 임우진은 도시라는 공간이 사용자를 수동적이고 외롭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최소한의 공간에 최대한 많은 사람을 수용하기 위해 층과 층을 나누고 내부와 외부를 분리하고 격리시켜 서로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현대건축의 구조와 배치로 인해, 사람과 사람 사이가 단절된다는 것이다. 먼저 공간에 대한 주도권이 생겨야 그 뒤에 애착이 자리 잡고, 이웃과의 관계맺기나 자신을 둘러싼 공간을 향상하려는 의지와 공간 감수성도 뒤따르기 마련인데, 현대인들은 현실에서 자신의 장소를 찾지 못한 채 스마트폰으로 도피한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접하게 된 것 대신 거리낌 없이 현관문을 열어놓고 지내던 동네 사람과 헤어지고, 생활용품을 택배로 받고 배달음식으로 편리하게 식사를 할 수 있게 된 것 대신 신뢰할 수 있는 단골 가게를 잃어버리고, 갭 투자로 얼마간의 이익을 올리게 된 것 대신 임대인이 사기꾼일까봐 두려워하며 살거나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잃게 된 트라우마의 공간에서 쫓겨나지도 못하고 버티는 상황에 놓여 있다.
우리가 기후위기에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자신조차 자신의 장소를 잃어버린 무기력한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기후위기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자연과 인간의 단절이라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과 인간 사이의 단절을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한다. 우리 자신의 장소를 되찾아야 한다. 브랜드 아파트가 아니라 마을과 동네가, 기업이 아니라 사람이 소외되지 않는 공동체가 되살아나야 한다. 지리학 교수 에드워드 랄프는 ‘장소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 안에서 자신을 확장시키고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맥락이 필요하다’고 했다. 당신은 지금 ‘장소’에서 살고 있는가? 공간조차 되지 못한 매물에 살면서 다만 아직 쫓겨나지는 않았을 뿐은 아닌가? 그것도 아니면 현실에 발 붙일 곳 하나 없이 그저 스마트폰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나?
최정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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