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역삼동 현대아이파크 화재, 스프링클러 없었다
20일 오후 1시 22분쯤 서울 강남구 역삼동 현대 아이파크 아파트 10층에서 불이 나 3시간여 만에 꺼졌다. 16층 꼭대기층까지 시커먼 연기가 삽시간에 올라왔고, 시뻘건 불길이 치솟았다. 연기가 자욱해진 아파트 단지(541세대·2006년 완공) 전체에 타는 냄새가 진동했고, 시커먼 연기는 수km 바깥에서도 보일 정도였다.
이날 화재로 10층에서 에어컨 실외기 수리 작업을 하던 기사 임모(51)씨가 양손과 왼발에 심한 화상, 연기 흡입과 안구 손상으로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9층에서 발견된 11개월 남아와 15층에서 옥상으로 대피한 5개월 남아도 연기를 들이마셔 병원으로 옮겨졌다. 주민 14명은 소방대원 유도를 따라 옥상으로, 3명은 지상으로 피신했다. 22명은 자력으로 대피했다.
화재가 발생한 10층 아파트 세대는 전소했고 윗층 여섯 세대도 심하게 타거나 그을렸다. 소방 관계자는 “낮 시간대 주민 상당수가 직장·학교에 있어 대참사를 면했다”며 “지난해 2명이 사망한 도봉구 아파트 화재처럼 새벽에 불이 났다면 피해가 훨씬 컸을 것”이라고 했다. 강남소방서는 신고 즉시 인원 286명, 장비 45대를 동원했다. 불길은 오후 4시 26분에야 완전히 잡혔다.
노모와 돌배기 딸과 피신한 한 주민은 “아이가 연기라도 들이마실까봐 이유식도 안 들고 미친듯이 뛰어나왔다”고 했다. 또다른 중년 여성은 “옥상에 시부모님과 5개월 된 아기가 있는데 날도 더운데 몇 시간째 거기서 움직이질 못하고 있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이들은 일상복에 슬리퍼 차림으로 소방대원 안내에 따라 젖은 수건으로 입과 코를 가린 채 4시 8분쯤 전원 구조됐다.
화재가 발생하자 인근 도성초에선 학생들을 강당에 보호 조치했다. 강남구청은 이재민 대피소를 마련하는 한편, 이재민을 인근 숙박 업소로 안내했다. 진화 작업과 현장 수습을 위해 한때 역삼로 5개 차로가 전면 통제됐다. 강남구는 화재 발생과 교통 통제 사실을 알리는 재난 문자를 발송했다.
에어컨 수리 기사 김씨는 이날 경찰에 “에어컨 작업 과정 중 용접을 하다가 실외기 옆에 놓인 비닐봉지에 불이 붙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어컨 설치·수리 때 배관에 쓰이는 동관 용접 과정에서 불꽃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양 손으로 불을 꺼보려다가 심한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이 아파트엔 스프링클러가 설치돼있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2003년 건설 허가를 받을 당시엔 16층 미만 층에는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가 아니었다. 2007년 이후에야 전층에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됐다. 긴급 대피한 한 주민은 “작동하는 스프링클러를 아예 보지 못했다”고 했다.
역삼동 아파트에서 진화가 한창이었던 오후 3시54분, 인근 대치동 학원가의 6층짜리 건물에서도 불이 나 20여분 만에 꺼졌다. 인명 피해는 없었다. 전날 오전에도 양천구 목동의 한 주상복합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불이 나 소방대원 17명이 부상하고 주민 110여명이 긴급 대피했다. 지하 2층 분리 수거장에서 난 불이 12시간 가까이 꺼지지 않는 상황에서 폭발이 발생하기도 했다.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인 경찰과 소방 당국 안팎에선 “이례적 6월 폭염이 화재와 연관이 있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목동 화재 때도 스프링클러가 정상 작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소방 당국은 “폭염으로 냉방 수요가 폭증하며 화재가 자주 발생한다”며 “각지에서 6월 기온이 최고치를 경신하는 만큼 화재 위험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소방청 등 자료를 보면 2018~2022년 에어컨 화재는 1234건으로 원인은 대부분 과열·전선 손상 등 전기 문제였다. 기온이 높은 오후 시간에 화재 건수가 많았다.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에어컨은 전기를 많이 사용하므로 전선 과열을 방지하기 위해 고용량 전선·전용 콘센트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며 “실외기실에 물건을 쌓아둬 창고처럼 쓰면 과열로 화재가 발생하거나, 화재 후 확산 위험성이 커지니 실외기만 둬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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