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 견뎌내게 할 ‘가벼움’이란[책과 삶]
허송세월
김훈 지음
나남 | 336쪽 | 1만8000원
“핸드폰에 부고가 찍히면 죽음은 배달상품처럼 눈앞에 와 있다.” 작가 김훈이 산문 45편을 묶은 <허송세월>을 냈다. 이 산문집의 서문 격인 ‘늙기의 즐거움’의 첫 문장이다. 늙어서 즐기지 못하게 된 등산, 음주, 흡연 등에 대해 썼다. 김훈은 사계절의 변화를 보듯이 자신의 늙음을 받아들인다. 특유의 하드보일드한 실존적 태도, 아름답게 건조한 문장은 여전하다.
<허송세월>의 1부 ‘새를 기다리며’는 김훈이 일상에 대해 적은 산문들이다. 김훈은 소설이든 산문이든 자신의 글에 희로애락하고 생로병사하는 인간의 삶을 담아왔다. 밥을 먹어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지겨움에 대해 적었다. 여든 살에 가까워진 김훈은 이제 무너지는 육신의 무거움을 허송세월의 가벼움으로 견뎌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2부 ‘글과 밥’은 글쓰기와 먹거리에 대한 산문들이다. 김훈은 작가가 되기 전에 신문기자였다. 주어와 동사를 중시하고 형용사와 부사를 멸시하는 문장론은 유명하다. 김훈은 “사물이나 현상은 수식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적었다. 500원짜리 계란프라이를 두고 전전긍긍하는 식당 주인을 보며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몽둥이’를 생각한다. 좁은 식당에서 서로 모르는 노동자들이 마주앉아 혼밥을 먹는 모습을 보고선 ‘먹는다’는 행위의 경건함을 생각한다.
3부 ‘푸르른 날들’에는 정약용, 안중근, 박경리 등 여러 인물들에 대한 산문을 담았다. 어린 시절의 추억과 소망을 담은 글, 한국 정치와 언론을 비판한 강연문, 노동자의 안전을 호소하는 연설문 등도 실었다. 개별적 삶에 대한 존중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보인다. “이 세상을 향해서 어떤 어조로 말해야 하는지를 늘 생각하고 있겠습니다. 말에 대한 저의 말이 너무 많지는 않은지, 걱정됩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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