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증언] 육지 며느리가 지켜본 4·3의 고통…김용순 할머니의 기억
[KBS 제주] [앵커]
4·3의 역사를 증언으로 기록하는 KBS 연속기획 순서입니다.
김용순 할머니는 4·3으로 풍비박산 난 북촌리로 시집와 평생 트라우마로 고통받던 남편과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4·3이 당사자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안겨줬는지 김용순 할머니의 이야기를 유용두, 강재윤 기자가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김용순/4·3 희생자 유족 : "(북촌리 사람들) 다 불러서 사람을 쭉 세워놓고, 우리 시어머니가 먼발치에서 봤데요. 쭉 세워놓고 이제 그 사람들을 총으로 다다다다 쏘니까 이제 넘어진 거예요. 거기서 (군인들이) 팍 밟으니까 윽하는 소리가 나더래요. 그러니까 그렇게 다 밟고 지나갔데요. 그때 이제 우리 시할아버지, 시할머니, 다 거기서 우리 시아버지 형제들이 다 그렇게 돌아가셨데요. 섣달 열여드레 날 북촌 동네는 명절이야 명절, 제사가 없는 집이 없어요."]
[김용순/4·3 희생자 유족 : "우리 시어머니는 그때 당시 이제 뭐 해 먹을 것도 없고 농사도, 밭도 없으니까 이제 사람들 말 들어서 그렇게 하지 말고 저 아기를 키우려면 저기 어디 하르방을 얻어가라. 그 영감이 또 우리 남편을 괴롭히고 또 막 하니까 이제 도저히 안 되겠다 해서 우리 시어머니가 거기서 나왔어요. 무당 대심방이 거기 신풍리에 살았어요. (시어머니가) 그 대심방 쫓아다녔어요. 따라 다니면서 이제 생활을 연명해 간 거예요."]
[김용순/4·3 희생자 유족 : "시누이가 우리 큰 집 바깥채 살았어요. 경남 양산시. 시누들도 다 여기서 못 사니까 다 육지로 나갔죠. 이제 우리 아이 아빠가 거기 누나네 집에 온 거예요. 와서 저를 그때 보고 그냥 한눈에 (반했다고.) (시집와서 보니) 뭐 기가 찼지요. 우리 시어머니는 신풍리 살았는데 나무집이 아니고 그냥 막힌 공터에다가 움막같이 해서 살고, 아무런 뭐가 재산이 없으니까. 우리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혼인신고를 안 하고 우리 아이 아빠를 낳았어요. 우리 시누이하고 다 그러니까 호적에 올라갈 수가 없죠. 사람들한테 물으니까 그러면 단독호적을 해야 된다고 해서 단독호적을 해 갖고 저하고 혼인신고했죠. (4·3 유족 신청도) 아주 많이 힘들었죠. 아주 여러 번 가고 하다가 힘드니까, 이제 제적을 못 떼니까 이제 변호사를 샀죠."]
[김용순/4·3 희생자 유족 : "(남편은 4·3으로 집안이 망해서) 나만 이렇게 하냐 그것을 매일 비관하면서 그냥 술을 (매일 마셨죠.) 동문시장에서 고기 장사도 하고, 커피 장사도 하고 내가 안 해본 것 없이 다 해봤으니까. (남편이) 천대받은 것, 고생한 것은 말도 못하고 그런 데다가 또 그런 병마저 있어서 내가 인생이 불쌍해서 가지도 못하고 너무 비참하고 정말 불쌍하기도 하고 말할 수 없죠. 우리 애들까지도 그 4·3 때문에 우리 애들이 무슨 죄가 있냐고, 그것 때문에 다 잃은 거예요."]
유용두 기자 (yyd9212@kbs.co.kr)
강재윤 기자 (jaeyu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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