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서 선수로 나선 ‘이주민 엄마들’ 농구 실력 ‘깜놀’”
“아이들의 보호자라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농구를 해보니 엄마들 실력이 정말 좋았습니다. 한 마디로 ‘깜놀’(깜짝 놀라다)입니다.”
한국농구발전연구소 천수길(64) 소장은 지난해 10월 새 농구단을 창단했다. 결혼이주여성으로 이뤄진 ‘맥파이스 마더스 농구단’이다. 독일, 중국, 일본, 베트남, 캄보디아 등에서 온 이주여성 약 20명이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 서울시 용산구 문배동 용산구문화체육센터 대강당에서 모여 맹훈련을 한다.
‘농구 전도사’로 불리는 천 소장은 배재고와 단국대에서 농구선수로 뛰었고 대한농구협회 이사를 지냈다. 2006년 보육원 어린이로 꾸린 ‘드림팀’ 운영을 시작으로 그는 소외계층에 농구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2010년에는 이주청소년 농구단인 ‘글로벌팀’을 창단했고, 이후 약 14년 동안 이주청소년을 위한 농구팀을 주로 꾸려왔다.
천 소장은 원래 이주청소년이 농구를 통해 성장해 한국 사회의 주역이 되는 일을 꿈꿨다. 그가 이주청소년들의 롤모델로 꼽았던 사람이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다. 어려운 청소년기를 보냈지만 농구를 통해 차별과 아픔을 극복하고 미국 대통령까지 된 그가 이주청소년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오바마 대통령 재임기 때는 대통령과 농구단의 만남을 추진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이주여성 농구단 창단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지난해 한겨레 창간기획 ‘이주시대, 스포츠로 경계를 넘다’에 소개된 안산 이주여성 배구단 ‘유니버셜 스타즈’의 이야기를 접한 것이다. 그간 아이들이 농구 경기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러 오던 이주여성들이 단순히 보호자가 아니라 “스포츠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천 소장은 아이들과 함께 찾아온 이주여성들에게 “같이 농구를 해 볼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시범적으로 연습경기를 열었더니, 이주여성들은 잊고 살았던 스포츠 본능을 순식간에 되살렸다. 코로나19로 기업 후원 등이 끊기며 기존 이주청소년 농구단 세 팀(글로벌 프렌즈, 컬러풀 농구단, 파스텔 프렌즈)의 운영이 쉽지 않음에도 이주여성 농구단 창단을 미룰 수 없었던 이유다.
사실 농구단 창단 초기까지만 해도 천 소장은 걱정이 많았다. 워낙 엄마들 삶이 바쁜 데다가 서울은 물론 경기도, 인천 등 다양한 지역에 회원이 있다 보니 매주 평일 오전 이어지는 훈련에 참여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참여할 수 있어도 금세 열정이 식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실제 첫 공식 훈련에는 절반 가까운 인원이 불참하기도 했다.
작년 10월 결혼이주 여성 20명으로
맥파이스 마더스 농구단 만들어
한겨레 ‘이주여성 배구팀’ 기사 보고
엄마들이 주체가 되는 농구팀 구상
선수들 “농구단 덕분에 삶의 활력”
2014년부터 이주청소년 농구팀 운영
“엄마들 도전 응원할 후원자 찾아요”
하지만 그런 우려는 기우였다. 천 소장은 “다들 한국 생활이 바빠서 참여가 힘들 법도 한데 두 번째 훈련부터는 멀리 인천은 물론 서울 광진구 군자동에서도 훈련을 위해 찾아왔다”며 “코트에서 땀 흘린 뒤 만족감에 찬 눈동자를 보면 새벽부터 나와 훈련을 위해 준비했던 고생이 눈 녹듯 사라졌다”고 했다.
천 소장과 단원들의 열정이 만나 농구단은 빠르게 성장했고, 창단 약 한 달 만인 지난해 11월에는 제24회 용산구청장배 농구대회 개막식에 참가해 시범경기를 가졌다. 정식 심판이 있는 곳에서 농구공을 튕기는 첫 무대였다. 천 소장은 “평소에는 엄마들이 아이들의 훈련을 지켜봤는데 이날은 가족들이 엄마가 코트에서 뛰는 모습을 담기 바빴다”며 “9월 중에 또 다른 대회 출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농구단은 이주여성들의 든든한 버팀목도 되고 있다. 캄보디아에서 온 이수민(33)씨는 “감독님과 농구단 덕분에 삶의 활력도 찾고 매주 목요일이 정말 즐겁다”며 “여기서 언니들을 만나서 함께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1주일 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확 사라진다”고 했다. 천 소장은 “체력훈련 할 때는 울상을 짓더라도 끝나고 나면 대화를 하면서 금세 웃음꽃이 피어난다”고 했다.
여전히 현실적인 고민은 있다. 어머니들의 도전을 뒷받침할 든든한 후원자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천 소장은 “매일 후원사 걱정에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운영하는 농구단은 4곳으로 늘었는데 후원은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이라며 “욕심일 수도 있겠지만, 다문화인식 개선과 미래인재 양성을 함께 할 후원사가 절실한 게 솔직한 마음”이라고 했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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