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 원전센터”… 푸틴, 외교 고립 탈피 ‘총력’

홍주형 2024. 6. 20. 18:4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빈방문 전 매체 칼럼서 직접 밝혀
러·베트남 정상회담 계기 협력 강화
“서로의 적대국과 동맹 안 맺어” 합의
서방 주도 ‘러 포위망’에도 불참할 듯
푸틴 5기 시작 후 반서방 결집 역점
美 러브콜 공산국가와도 긴밀히 협력
전쟁 탓 축소된 외교력 복원 잰걸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 베트남 등 아시아 지역의 우방국들을 잇달아 찾는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으로부터의 외교적 고립에서 탈피하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다섯번째 임기를 시작하면서 반서방 혹은 독립노선을 유지하는 국가와의 결집을 통해 세를 불리고, 전쟁 이후 다소 줄어든 러시아의 외교적 영향력을 복원하려는 시도다.
북한에 이어 베트남을 국빈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20일(현지시간) 하노이 주석궁에서 베트남 서열 1위 응우옌푸쫑 공산당 서기장과 악수하고 있다. 하노이=AP연합뉴스
푸틴 대통령은 북한 방문을 마치고 다음 순방 국가인 베트남에 20일(현지시간) 새벽 도착해 국빈 방문 일정에 들어갔다. 푸틴 대통령은 베트남 국부 호찌민 묘소를 찾아 헌화하고 국가 서열 1위 응우옌푸쫑 공산당 서기장과 회담했다. 또 응우옌 서기장과 무역·경제·과학·기술·인도주의 등의 분야에서 양국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고,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원칙을 확인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이 교육, 에너지, 의료 등의 분야에서 체결하는 합의서도 약 20건이라고 크레믈궁이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 방문에 앞서 전날 베트남 공산당 기관지 난단에 칼럼을 기고하고 러시아 국영 원전기업인 로사톰의 지원을 받아 “베트남에 원자력 과학기술 센터를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소개했다. 또 러시아 에너지 기업 노바텍이 베트남에서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를 시작할 계획이라고도 언급했다. 푸틴 대통령은 기고문에서 베트남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균형 잡힌”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베트남과 러시아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상황에 대해 비슷한 평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과 베트남 서열 2위 또럼 베트남 국가주석은 이날 회담 후 서로의 적대국과는 동맹을 맺지 않기로 합의했다. 이번 합의에 따라 베트남은 미국 등 서방이 주도하는 러시아 포위망에 앞으로도 가담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베트남 서열 2위인 또 럼 주석이 환영식에 참석하고 있다. 타스연합뉴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집권 5기를 공식 시작한 이후 중국, 벨라루스, 북한, 베트남 등을 찾았다. 중국과 북한은 서방의 견제를 받는 확실한 반서방 국가이고, 베트남은 공산국가이지만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의 일원으로서 미국이 전략적으로 공을 들이고 있다. 반서방 국가 간 결집을 도모하고, 미국의 러브콜을 받는 공산국가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외교적 고립으로부터 탈피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또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이후 서방으로부터 고립되고 있는 러시아가 극동 지방과 아시아 쪽으로 눈을 돌리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베트남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하노이 주석궁에서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푸틴 대통령의 외교적 고립 탈피 노력은 단순히 반서방 결집에 그치지 않는다. 반서방 국가들을 결집하는 것과 동시에 그물망을 넓히고 있다. 친정부 성향 러시아 평론가 페트르 아코포프는 “조만간 한국은 제재 체제에서 벗어나 가장 먼저 러시아로 돌아오는 국가 중 하나가 될 것”이라며 푸틴 대통령의 한·러 관계 복원 의지를 강조하기도 했다.
러시아의 노력은 일정 부분 효과를 보고 있다. 베트남을 비롯한 아세안 국가들은 진영을 막론하고 미·중·러 등 주요국 어디와도 척을 지지 않고 등거리를 유지하는 ‘아세안 중심성’ 외교를 추구하고 있다. 또 러시아로부터 얻을 수 있는 실리적 이익 때문에라도 러시아와 멀지도, 밀착하지도 않는 관계를 이어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베트남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하노이 주석궁에서 또 럼 베트남 국가주석을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다. AP뉴시스
친서방 국가인 인도 역시 등거리 외교 원칙에 따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지 않는다. 브라질,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신흥국가 협의체 브릭스(BRICS) 국가들은 최근 우크라이나평화정상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는데, 러시아는 올해 브릭스 정상회의 개최국으로서의 입지를 활용해 개발도상국들을 규합하려 하고 있다.

다만 동북아에서 한·미·일 협력에 대항하는 북·중·러 3각 동맹 구도는 형성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은 이번 푸틴 대통령의 방북과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설정하는 조약 체결 뒤 양자 간의 일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되풀이했다. 중국으로서는 서방 견제에 북한과 러시아가 필요하지만, 서방과의 관계 호전을 위해선 두 나라와 드러내놓고 밀착하는 것도 부담이다.

홍주형 기자 jhh@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