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병일 칼럼] 한국 의료, 이제 `불편해질 결심` 해야할 때

2024. 6. 20.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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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병일 플루토미디어 대표

7월부터 불필요한 의료를 과도하게 이용한 환자의 부담이 늘어난다. 연간 외래진료 횟수가 365회를 초과하는 사람은 초과 진료에 대한 요양 급여비용 총액의 90%를 부담해야 한다.

정부가 이런 대책을 마련할 정도로, 한국 국민은 병원을 자주 가고 있다. 우리 국민 1인당 의사에게 외래 진료를 받은 횟수가 1년에 15.7회였다(2016~20년 5차 보건의료 실태조사). 경제협력개발기구(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5.9회)의 약 3배에 달한다. 우리가 특별히 병약한 민족은 아닐테니 분명 다른 이유, 즉 OECD 국가들에 비해 의료비 부담이 덜하거나 병원의 환자 진료 수용능력이 크다거나 등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입원도 많이 한다. 입원 환자의 평균 재원일수(16.1일)가 OECD 국가(8일) 대비 2배다. 병상도 많다. 인구 1000명당 병상 수(13.2병상)가 OECD 국가(4.4병상) 대비 3배나 된다.

이런 통계 수치를 보면 한국의 의료는 좋아 보인다. 해외에서는 그런 평가를 받는다. 미국, 캐나다 등의 교포들은 건강검진이나 치료를 위해 한국을 찾는다. 훨씬 빠르고 싸고 품질도 좋다고 말한다.

그런 한국 의료가 지금 위기다.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이 기사화되더니 의사 숫자가 OECD 국가 평균보다 적다며 의대 정원 2000명 증원과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이 발표됐다. 그러자 지난 2월 대부분의 전공의들이 미래가 안 보인다며 사표를 내고 수련 병원을 떠났고, 대학병원들은 파행을 계속하고 있다.

정부의 목표는 의대 증원을 통한 필수과와 지역 의사 증원이다. 문제는 목표와 정반대로 필수과의 많은 전공의들이 수련을 포기했다는 데 있다. 그들은 일반의로 일하거나 미국이나 일본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필수의료의 표본이자 헌신의 상징'인 이국종 대전국군병원장은 지난 19일 한 강연에서 "현재 의료계는 벌집이 터졌고 전문의는 더 이상 배출되지 않아 없어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만약 내년 3월에 신규 의사 0명, 신규 인턴 0명, 신규 레지던트 0명, 그리고 신규 군의관과 공보의 급감이 현실화되면 한국 의료와 사회는 혼란에 빠질 것이다.

해법은 없나? 발상을 전환해 '공급'이 아닌 '수요' 측면을 볼 필요가 있다. 이제는 우리가 '불편할 결심'을 해야 할 시점에 온 것 같다. 의료수요(의료 이용 횟수)를 OECD 회원국 평균 수준(우리의 3분의1)으로 줄이는 '불편함'을 감수하겠다는 결심 말이다.

현 위기상황의 해결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곧 적자로 돌아설 건보재정을 보면 어차피 지금의 '박리다매' 의료 시스템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현재로서는 필수의사 숫자를 오히려 감소시킬 가능성이 있는 공급 확대보다는 의료수요 제한에 초점을 맞춰 먼저 필수의료와 지방의료 정상화의 방법을 찾아보자.

건강보험 통계에 따르면 60대 A씨는 2021년에 358일을 병원에 가 1425회나 외래진료를 이용했다. 주로 요통이었고 하루 8곳의 병원을 갔다. 소아과 의사들은 하루에 3~4곳의 병원을 '의료쇼핑'한 보호자를 많이 본다고 말한다. 감기 등 경증의 경우 개인부담 의료비를 인상해 의료수요를 억제해 보자. 응급실도 '불편할 결심'을 해보자. 지금은 비응급 환자가 너무 많다. 비응급의 경우 비싼 의료비를 내도록 하면 응급실 뺑뺑이는 해결 가능하다. 119 구급대도 비응급 환자는 비싸게 받아야 한다.

지방의료 황폐화도 이대로는 해결 방법이 없다. 과거 경북대 등 지역의 국립의대들은 수준이 서울 유수의 의대와 비슷했다. 하지만 지역의 환자들이 서울의 '빅5' 병원으로 가면서 쇠락하기 시작했다. 중증 환자가 많이 오고 치료 경험이 누적되어야 좋은 의술이 가능한 선순환이 시작된다. 이제는 지역별로 방문 가능한 병원을 제한하는 방안도 시행할 때가 됐다. OECD 국가들이 그렇고, 과거의 우리도 그랬다. 빅5 전원은 담당 의사가 결정하도록 하자. 환자가 있어야 지역 의료를 살릴 수 있다.

국민은 '불편할 결심'을 하고, 리더는 "불편해지자"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필수 의료와 지방의료를 살리려면, 나아가 저출생 고령화 시대에 폭증할 의료비 지출을 제어해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려면, 이제 '의료수요 제한이라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시점에 왔다. 지금은 우리가 자발적으로 불편을 선택할 수 있지만, 이번에 해결하지 못하면 재정부족과 필수의료, 지방의료 붕괴로 곧 타의에 의해 불편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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