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노동자가 있다 [세상읽기]

한겨레 2024. 6. 20.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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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2일 오전 경기도 광명시 코스트코 광명점 앞에서 ‘혹서기 코스트코 카트노동자 사망 49재 추모집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김인아 | 한양대 교수(직업환경의학)

지난 19일, 서울에 첫 폭염주의보가 발효되었다.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 잠깐의 시간 동안에도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작년 한 대형마트에서 카트를 정리하던 노동자가 사망한 게 이즈음이 아닌가 싶었다. 찾아보니 딱 1년 전인 2023년 6월19일이었다. 처음 그 뉴스를 들었을 때의 황당함이 다시 기억났다. 누구나 한번은 가 봤을 공간인 마트의 주차장에서, 건강한 청년이, 더군다나 폐색전증으로 사망했다는 뉴스를 쉽게 믿을 수 없었다. 아니 얼마나 심하게 일을 했길래 탈수가 심해져 나타나는 폐색전증으로 사망했다는 건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날도 폭염주의보가 내린 날이었고, 10시간 동안 26㎞를 걸으며 카트 정리하는 일을 했다고 했다. 그런 날씨에 26㎞라니, 버스를 타기 위해 잠깐 500m만 걸어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날씨에 말이다.

황당한 뉴스는 얼마 전에도 있었다. 육군 훈련병이 훈련을 받다 쓰러져 사망했는데 그 원인이 횡문근 융해증이라는 것이었다. 훈련병이 더운 날씨에 완전군장을 하고 뛰는 과도한 신체활동을 하면서 열사병과 같은 질환이 생겼고, 이로 인해 횡문근 융해증으로 진행된 것일 수도 있다고 하였다. 횡문근 융해증은 근육세포의 심각한 손상이 원인인 경우가 일반적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근육에 손상이 갈 정도의 운동을 하는 경우 특히 더운 날씨에 수분을 충분히 공급하지 않은 상태에서 근육을 과도하게 쓰다가 발생하기도 한다. 더운 날씨 옥외에서 일하다가 어지러움이나 구토 증상 등 열탈진 증상을 보이다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도대체 훈련을 어떻게 시켰으면 그렇게 됐을까 싶었다.

첫번째 사건이 발생한 날은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최고 기온 33도의 날씨였다. 두번째의 훈련병 사망사건은 낮 최고기온 28도에서 발생했다. 기온도 차이가 있고 발생 상황도 달라서 언뜻 달라 보이는 두 사건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땀을 너무 많이 흘렸고, 어지러움에 탈진을 할 정도로 신체적 피로감이 심했다. 더운 날씨에 격렬하게 몸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흔히 열사병이라고 불리는 온열질환의 원인은 높은 기온 때문으로 알려져 있지만, 습도가 높아지면 발생 가능성이 더 높아지기 때문에 열지수라는 것을 활용해 위험을 평가하기도 한다. 그런데 훈련병 사망사건에서 알 수 있듯 기온이 중요한 고려 사항이긴 하지만 절대적 기준은 아니다. 기온이 30도 이하라고 해서 온열질환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온열질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최근 우리나라 노동자 온열질환 예방 관리의 기준이, 대기온도에 습도를 반영한 체감온도로 수정되었다. 체감온도로 31도가 넘으면 사업장에서 폭염에 대비한 조치들을 해야 한다는 지침도 나왔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체감온도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는 있으나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또 기상청이 발표하는 체감온도와 개별 사업장 환경에 따른 체감온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뜨거운 콘크리트나 철판 위에서 일을 하는 경우,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곳에서 일하거나 환기가 잘 안되는 환경에서 일하는 경우, 자동차 엔진처럼 다른 종류의 열원이 있는 경우 등은 특히 그렇다. 체감온도가 낮더라도 각종 의복과 보호구의 특성, 노동 강도, 휴식 시간과 일하는 시간의 배치, 적절한 수분 공급의 유무, 노동자 개인의 질환과 연령 등도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즉, 노동자가 일하는 환경의 기온과 습도 관리는 기본일 뿐 아니라 노동자 개인이 느끼게 되는 육체적 부담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현재 고용노동부의 정책은 강제력이 없는 가이드라인에 불과하다. 따라서 강제력이 없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기상청의 체감온도가 아니라 일하는 곳의 현장 체감온도를 직접 측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휴식 시간과 업무 강도 등을 조정하도록 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느끼는 증상과 육체적 부담을 고려하여 적절한 주기와 장소에서 쉴 수 있도록 조처할 필요도 있다. 지자체들이 횡단보도 앞에 그늘막을 만들고,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스마트 버스정류장을 만들어 주민들에 대한 폭염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정작 노동자들에 대한 대책은 그 속도도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누군가에겐 에어컨이 있는 실내로 가기 위해 잠깐 스쳐 지나가는 장소가 어떤 이에게는 일터일 수 있다. 거기에도 노동자가,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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