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휴진 말고 휴가 떠나는 의사 [슬기로운 기자생활]

임재희 기자 2024. 6. 20.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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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검사받으러 다니는 병원에서 몇주 전 진료가 끝날쯤 의사가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뗐다.

병원에 고용된 의사가 노동자로서 휴가를 쓰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의사의 피로도는 환자 안전과 직결돼서다.

결국 의사 고용을 민간 병원에 떠넘긴 셈인데, 전공의보다 인건비가 비싼 전문의로 의사를 늘리자면 건강보험 재정이 추가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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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을 찾은 환자와 보호자가 차량을 기다리는 가운데 의료 관계자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재희 | 인구복지팀 기자

가족이 검사받으러 다니는 병원에서 몇주 전 진료가 끝날쯤 의사가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뗐다. “원래 2주 뒤에 만나는데, 이번엔 3주 뒤에 만나도 괜찮을까요? 그사이 몸이 안 좋아지면 언제든 병원에 연락 주세요.”

의사가 진료 예약을 미룬 주는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집단 휴진을 예고한 6월18일과 다른 주였다. ‘사직서를 내는 걸까?’ 진료실 밖에서 만난 간호사에게 물었다. “○○○ 선생님, 2주 뒤에 무슨 일 있나요?” 간호사가 웃으며 답했다. “그 선생님, 그 주에 여름휴가 가세요.”

병원에 고용된 의사가 노동자로서 휴가를 쓰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휴가 다녀온다는 의사의 말은 낯설었다.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를 둘러싼 의-정 갈등이 계속된 지난 4개월간 만났던 의사들은 휴가와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2022년 전공의 실태조사를 보면, 인턴·레지던트는 주 77.7시간을 일했다. 근로기준법이 정한 법정 근로시간(주 52시간)을 훌쩍 넘었다.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자, 교수들은 진료·수술에 당직까지 섰다. 한 의과대학 교수는 “의대 증원 반대도 반대지만, (체력적으로) 더 버틸 수가 없어서 진료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의사의 휴가는 환자에게도 필요하다. 의사의 피로도는 환자 안전과 직결돼서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의-정 갈등이 커지자 2018년 방영한 제이티비시(JTBC) 드라마 ‘라이프’ 클립을 추천했다. 병원 원장이 환자에게 약을 잘못 투여한 암센터 의사들한테 “환자를 죽였다”며 몰아세우는 내용이다. 암센터장은 “우리가 환자를 죽였으면, 의사를 죽인 건 병원이다. 인건비 줄이겠다고 우리를 끝없이 돌리는 댁 같은 사람들”이라고 맞섰다. 김승섭 고려대 교수팀이 2015년 발표한 논문(‘한국 전공의들의 근무환경, 건강, 인식된 환자안전’)을 보면, 레지던트 8.7%가 3개월 동안 의료 과실을 저질렀다고 답했다. 진료 중 자신도 모르게 졸았다는 이도 68.6%나 됐다. 의사의 노동시간을 줄여 충분한 수면이 이뤄지면 의료사고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는 여럿이다.

환자나 보호자가 되어보지 않은 이는 드물다. 그때면 ‘지금보다 의사가 많아져 더 안전하고 친절하게 치료받았으면’ 하는 바람 역시 간절했을 것이다. 올해 환자 가족이 된 나도 중소병원과 대학병원을 드나들며 “의사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밤샘 당직 뒤 지친 얼굴로 환자를 보는 의사가 줄어들기를 바랐다. 노동자가 작업장에서 주의사항들을 지키려면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하듯 의사도 다르지 않다. 특히 의사의 주의의무는 생명과 직결된다.

정부가 내년도 의대 증원을 확정했지만 실제 현장의 의사가 늘어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전공의 92%가 병원을 떠나 있어서만은 아니다. 정부가 어떻게 의사를 늘린다는 건지가 불확실해서다. 국립대병원 교수 1천명 확대 외에 정부가 직접 의사를 고용해야 하는 공공병원 확대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결국 의사 고용을 민간 병원에 떠넘긴 셈인데, 전공의보다 인건비가 비싼 전문의로 의사를 늘리자면 건강보험 재정이 추가로 들어간다. 그런데도 건강보험료를 어떻게 하겠다는 이야기도 없다. 국민들이 지난 4개월 불편과 피해를 감수한 건 의대생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환자를 안전하게 돌볼 의사들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lim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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