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포럼] 실존 없는 현존재로 살지 말자
실존주의는 인간을 다음과 같이 보고 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로서 아무리 노력해도 세계에 대한 확실성을 가질 수 없어 권태를 느낀다(파스칼 1623~1662)' '인간은 자유가 선고된 우연한 존재이다(사르트르 1905~1980)' '인간은 존재 이유가 없어 불안이라는 기분에 휩싸인다(하이데거 1889~1976)' '세상은 최악의 세계이며, 인간은 맹목적으로 삶의 의지를 갖지만 그 의지의 근원은 모른 채 살아간다(쇼펜하우어 1788~1860)' '인간은 부조리 속에 습관적으로 살거나, 자살하거나, 반항한다(카뮈 1913~1960)'.
이러한 난국 속에 실존주의가 제안한 삶의 태도는 다음과 같다. '신 앞에 선 당당한 단독자로서 절망을 극복하고 답을 찾아라(키에르케고르)' '상황에 종속된 현존재로서의 나를 극복하고, 한계상황을 해독하며 실존으로 도약해라(야스퍼스 1883~1969)'. 참고로 야스퍼스는 나치의 탄압과 2차대전 이후에 친나치 활동을 했던 교수들의 따돌림 속에서도 실존을 의식하며 상황에 지배되지 않았다.
이 밖에도 '복종하며 참는 노예의 도덕에 매몰되지 말고, 과감한 결단을 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 허무를 극복해라(니체 1844~1900)' '죽음을 자각해 후회 없는 삶의 의미를 살려라(하이데거)' '부조리한 세상에서 무기력해지지 말고 반항하고 깨어 있어라(카뮈)' '고정관념이 아닌 순수의식으로 세계와 관계를 맺고, 실존을 파악하라(후설 1859~1938)' '존재하는 것들에 연민을 가져라(쇼펜하우어)' 등이 있다.
이렇게 실존주의는 미완, 가능성의 존재인 인간이 학교·직장 등의 주어진 현실에서 살아가는 고뇌를 조명했다는 점에서 기관이나 기업에 대한 경영평가를 할 때 상기되는 철학이다.
작은 세계이지만 조직의 성과, 조직과 외부의 상호작용, 조직 내 구성원의 개별적 경험, 조직의 논리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딜레마를 경영평가를 통해 마주하게 된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정당하지 않은 직급 강등, 해고, 조롱, 고립 등의 인사 불이익이냐 승진이냐를 둔 선택의 기로, 집단 따돌림의 고통, 부조리를 방관하고 있는 구성원의 죄책감 등으로 구성된 한계상황을 보게 된다.
실존주의는 인간에게 고정불멸의 본질이 없다고 했으니, 인간으로 이루어진 조직이 부여받은 기능과 목표한 성과로만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즉 경영평가에는 역사성을 가진 상황, 생동하고 변화하는 구성원의 고충 또한 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어떤 기관들은 구성원의 오래된 억울함을 해결하기보다 치부를 덮고 적지 못하게 하며, 자신들을 칸트 식의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존재로 가정해달라고 떼를 쓴다. 공익을 위한 사실 적시임에도 명예훼손을 운운하며, 평가자에게 피평가자의 생각을 강요하고, 평가의 의미를 퇴색시키기도 한다. 심지어 일부 인사들은 억지를 부리다가도 복도에 나와서는 친절한 척하며, 변화할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해 개인적인 처세를 펼치기도 한다. 한계상황을 해독해야 할 외부 평가자는 사정을 잘 모른다면서 알려고 하지 않고, 타자의 고통을 외면하기도 한다.
야스퍼스가 말한 인간이 겪는 죽음, 고통, 투쟁, 죄책감 등의 한계상황을 개선하고 상황을 파악하는 실존이 되려면 상황에 결정당하고 종속되지 않아야 한다. 문명사회는 그런 노력으로 만들어진다. 실존 없는 현존재로 살지 말자.
이종은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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