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협만 받아도 협력”... 북·러, 전시 아니어도 군사지원 길 터놨다

양지호 기자 2024. 6. 20.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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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오른쪽)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9일 저녁 평양 목란관에서 열린 정상회담 회담에서 와인잔으로 건배하고 있다. 북·러가 20일 공개한 조약 전문에는 “쌍방 중 어느 일방이 무력 침공을 받으면 타방은 지체 없이 군사적 원조를 제공한다”는 조항이 담긴 것으로 나타났다. /AFP 연합뉴스

북한이 러시아와 ‘포괄적인 전략적동반자관계에 관한 조약’을 체결한 지 하루 만에 조약 전문을 공개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사실상의 ‘자동 군사 개입’ 조항이 포함돼 있는 내용을 부각시켜 새 조약이 ‘군사 동맹’ 성격이 있음을 과시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새 조약의 핵심은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규정한 4조다. ‘지체 없이’라는 표현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도 없는 것이다. 1953년 체결한 한미상호방위조약 2조는 “어느 1국의 안전이 외부로부터 무력 공격에 의해 위협을 받고 있을 때 이를 저지하기 위한 수단을 강화시키고 이를 추진할 조치를 협의와 합의하에 취할 것”이라고만 돼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한미 조약에는 구속력도, 자동 개입 조항도, ‘군사적 원조’ 같은 표현도 없다”며 “문구만 보면 북·러 조약이 더 강력한 형태”라고 했다.

그래픽=김성규

북·러 중 한 국가에 “무력 침략 행위가 감행될 수 있는 직접적인 위협”이 조성되면 지체 없이 위협 제거를 위해 소통하겠다고 한 3조 역시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군 정보 소식통은 “코에 걸면 코걸이식 해석으로 전쟁 상태가 아닐 때도 군사 지원을 확대 적용할 수 있는 길을 터놓은 것”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한·미 연합훈련 등에 대해서 북한이 ‘침략 행위가 감행될 수 있는 위협’이라고 주장하면서 러시아에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장용석 서울대통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원은 “북·러 조약 2조에는 ‘전 지구적인 전략적 안정’이란 표현이 담겼는데 이는 핵보유국 사이에서 ‘핵 균형’을 뜻하는 표현”이라고 했다.

푸틴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북한과의 군사기술 협력”도 처음으로 공식화했다. 실제로 조약 10조에는 “우주·평화적 원자력 등 공동 연구 장려”라는 대목이 있다. 우주 기술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로, 원자력은 핵무기 개발 기술과 직접적으로 연계돼 있다. 북한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러시아의 정찰위성 및 위성발사체, ICBM 재진입 및 다탄두 각개 목표 설정 재돌입 비행체(MIRV), 핵잠수함 등의 기술을 이전해 달라고 요구했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북·러 조약의 자동 군사 개입 조항이 실제로 작동할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시선도 있다. 한·미 동맹을 통한 미군의 자동 개입은 조약 문구보다도 2만8500명 규모의 한반도 주둔 주한 미군과 연합사령부의 전시작전권 통제 및 한미 연합 작계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반면 북한에는 러시아의 주둔군이 없다.

러시아는 이번 조약이 ‘방어적 성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4조에 대해 “한쪽이 공격당할 경우 다른 쪽은 유엔헌장 51조와 국내법에 따라 모든 필요한 지원을 제공한다는 것”이라며 “모스크바나 평양에 대한 침략을 계획하는 사람들이나 이에 반대할 수 있다”고 했다. 유엔헌장 51조는 유엔 회원국에 무력 공격이 있을 경우 개별적·집단적 자위권을 가질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유엔헌장 51조와 러시아 국내법이 즉각적인 군사 개입에 ‘브레이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은 “1961년 조·소 조약은 우리 입장에서 큰 안보 위협은 아니었다”며 “세상 종말이 온 것처럼 긴장하기보다는 북·러의 향후 대응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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