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부처님이 세상 굽어보는 경주 남산, 법륜스님과 함께 오르다 [정용식의 내 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5cm의 기적’ 열암곡 마애불을 보기 위해 두어 달 전 경주 남산에 오른 뒤 글을 썼다. 당시 새갓곡에서 출발해 열암곡을 지나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까지 보고 왔다. 남산의 여러 탐방로 중 일명 ‘봉화골 역사문화탐방로’를 택했던 것이다. 유적과 불상, 탑 등 700여점의 문화재가 있는 경주 남산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인데, 일부만 보고 왔기에 언젠간 다른 탐방로를 걸으며 더 많은 유물을 보고 싶었다. 특히 문화재가 제일 많이 모여 있다는 삼릉계곡을 통해 금오산 정상에 오르고 남산의 마스코트인 삼층석탑과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썼다는 용장사지도 가보겠다고 다짐했다.
다짐은 의외로 빠르게 현실이 됐다. 다시 경주 남산을 방문할 기회가 생긴 것. 특별히 이번 방문길엔 ‘즉문즉설’로 유명한 법륜스님(정토회 지도법사)이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얼마 전 한 대기업 회장과 법륜스님을 함께 만나는 자리에서 남산 열암곡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는데 “기회가 되면 함께 가보자”는 스님의 제안이 있었다. 알고 보니 법륜스님 고향이 경주이고 정토회 회원들과 여러번 경주 답사를 했던 덕분에 남산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한단다.
삼릉계곡 초입부터 스님의 박학다식하고 세세한 설명을 들으며 경주 남산 2차 탐방에 나섰다.
경주 남산 삼릉골 초입부터 ‘철갑을 두른 소나무’가 지천에 널렸다. 애국가 2절의 구절(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의 남산이 경주 남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세 릉이 소나무숲에 둘러싸여 삼릉골 초입을 지키고 있다. 올라가는 길에 흩어져 있던 조각난 불상들을 모아둔 장소가 있었는데 이곳이 가장 많은 문화재를 탐방할 수 있는 구간임을 직감했다.
삼릉곡 2사지 석조여래좌상 앞에 섰다. 높이와 너비가 각각 1.6m에 달하는 꽤 큰 좌상이나 머리(불두)와 왼쪽 어깨, 양손이 훼손되어 있다. “불교라는 몸체는 있지만 머리(지혜의 가르침)와 팔(자비로운 실천)이 없음을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고 법륜스님이 설명했다. 마치 현재 우리 불교계를 보는 것 같다며 스님은 안타까워했다.
좀 더 위쪽에 올라가니 풍만한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입술이 붉은 마애보살상이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고 가파른 길을 더 오르니 두 개의 큰 바위면에 여섯 분의 부처와 보살을 선으로만 새긴 선각육존불(線刻六尊佛)이 나온다. 바위의 윗면에는 지붕을 설치했던 흔적과 배수로마저 보인다. 조금 더 올라가니 경주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소나무 사이 서쪽을 향해 있는 넓은 바위에 선으로 새긴 선각여래좌상이 10m의 높은 두 동강 난 바위면의 위아래를 장식하고 있었다.
화강암으로 조성된 여래상이 화려한 연꽃 대좌위에 앉아 있다. 삼릉계 석조여래좌상(보물)이다. 워낙 커서 누가 가져가지 못했다는데, 목 부분이 잘리고 광배(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것)가 깨진 상태로 발견됐다. 흩어져 있던 부위를 찾아서 복원을 거듭한 끝에 지금의 모습이 됐다. 옆에는 어느 고승이 수행했음직한 토굴이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먼발치 바위 절벽에 부처의 머리와 어깨선이 선각으로 새겨진 불상이 보이고(삼릉 선각마애불) 부근엔 석조여래좌상(현재는 국립박물관에 소장)이 있었던 터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다. 상선암이라는 암자에서 불경소리가 요란하다. 잠시 멈춰 숨을 고르고 다시 오르다보니 바위에 하반신만 남아 있는 불상이 길목을 지키고 있다.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남산 제일 높은 곳에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이 있다. 커다란 바위에 6~7m 높이의 거대한 불상을 조각해 놓았다. 많은 사람들이 찾을 것 같은 신성한 기도처로 보인다. 하지만 마애불 위에 매달린 듯한 위험스런 바위 때문인지 접근이 통제돼 있다. 여기를 관리하는 상선암 관계자의 안내로 다행히 아름다움을 가까이서 감상하고 기도를 드릴 수 있었다. 발걸음을 정상 방면으로 옮긴 끝에 해발 468m 금오봉 정상에 다다랐다. 등산객들이 정상 표지석을 배경 삼아 사진 찍기에 여념 없다. 우리 일행도 이곳에서 단체사진을 남겼다.
금오봉을 올랐으니 이제 내리막길일 것 같은데, 더 높은 고위봉(495m)이 있다고 한다. 내리막 오르막을 반복해야 할 것 같다. 남산을 500m 미만의 산이라고 얕잡아 오르다가는 큰코 다치기 쉽다. 일단 김밥과 경주 황남빵으로 간단히 점심요기를 하고 고위봉으로 방향을 잡았다. 가는 길에 용장골 꼭대기에 거대한 연꽃대좌(蓮華臺座)가 새겨져 있는 큰 바위가 나온다. 바위에 올라서니 고위산 정상, 토함산 등이 훤히 바라다보인다. 과거엔 이 연화대좌 위에 불상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비어있다. 불상은 낭떠러지 계곡 어디엔가 조용히 묻혀 있을 것만 같다.
매월당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쓰고 머물렀다고 하는 용장사지와 그곳에 바위산 전체를 기단으로 삼은 것처럼 보이는 삼층석탑은 먼발치에서만 바라보았다. 세 개의 바퀴 같은 삼륜의 대좌 위에 가부좌하고 앉은 목이 없는 석조여래좌상은 결국 보지 못하고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아쉬움은 또다시 남산길을 올라야 하는 과제로 남았다.
용장사지 방향이 아닌 봉화골 역사문화탐방로로 이어지는 이영재로 넘어오다 보니 깊은 산속에 웬 인공호수가 나온다. 고위봉 아래 농업용수를 위해 만들었다는 남산 고위지(高位池)인데 높은 산이 아님에도 남산계곡에 물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도 했다. 저수지 주변에 단풍이 들면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할 듯하다. 인적이 드문 계곡을 따라 걷다 보니 깊은 계곡에 자리 잡은 ‘용장계 지곡 제3사지 삼층석탑’(보물 1935호)이 아름다움을 드러냈다. 기단부에 큰 석재를 사용하고 지붕돌이 윗면까지 계단식으로 되어있는 형태가 특이했다. 이곳도 과거엔 절이 있었던 곳인듯 넓은 터를 형성하고 있다. 계곡 틈새로 시원한 바람이 새로 들어와 이마에 맺힌 땀을 식혔다. “행복 바람이 불어오네요”라는 일행의 외침에 일행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워낙 많은 불교 유물이 있는 삼릉 문화역사탐방로를 뒤로하고 백운재와 백운암을 지나 고위봉을 등지고 천룡사지로 넘어왔다. 여전히 찻길조차 없고 휴대전화 전파도 잘 터지지 않는 곳이다. 고위봉 아래 앞이 훤히 트여 먼 산등성이가 아름답게 펼쳐진 널따란 분지에 천룡사지 삼층석탑(보물)과 넓은 절터(유적 발굴 중)를 바라보니 옛 영화가 보이는 듯하다. 천룡사지에서 급경사길을 20여 분 걸어 내려오다가 만나는 와룡사를 통해 틈수골로 빠져나오니 경주 시내로 통했다.
신라의 흥망성쇠와 함께한 ‘노천 박물관’ 남산은 신라의 귀족불교를 대변했던 토함산과 달리 신라 민중불교의 터전이었다고 한다. 골골마다 산재해 있는 마애불 석탑, 석불 등 불교 유물들을 모두 다 볼라치면 아직도 몇 날 며칠은 족히 필요해 보인다.
지난번 남산 방문 때는 탐방로에서 우연히 만난 ‘경주, 역사를 품은 여행’를 쓴 심상섭 작가의 도움말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웠는데, 오늘은 영광스럽게도 법륜스님의 세밀한 설명과 함께 삼릉 역사 탐방로와 천룡사·와룡사 가는 고위봉 탐방로를 성공적으로 답사했다. 그러나 국사곡 탐방로, 포석정지 탐방로, 약수골과 비파골, 용장사지 등 가야 할 곳은 여전히 많다.
법륜스님은 평화운동가요, 제3세계를 지원하는 구호활동가이며, 수행공동체 정토회를 세워 인류의 문명전환을 실현해가는 사상가다. 2002년부터 대중들과 만나는 즉문즉설(卽問卽說)이 명성을 더하면서 ‘국민 멘토’ 역할도 하고 있다. 그간 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각자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힘을 키워주고 있다.
법륜스님은 경주 태생으로 남산 인근에 스님이 다녔던 초등학교 폐교 부지에 두북수련원을 조성하고 아나바다장터와 수련시설, 즉문즉설 스튜디오 등을 만들었다. 인근 논밭에서는 스님이 트랙터를 직접 몰며 정토회 회원들과 함께 농사를 짓는다. 두북수련원 운동장에는 며칠 전 수확한 밀이 초여름 볕을 받고 있었다. 일과 수행의 조화를 이루고자 하는 선농일치(禪農一致)의 실행일까.
지난 13일에 전북 장수군 죽림정사에서 정토회 주관으로 ‘독립운동가 백용성 조사 탄신 160주년 기념 한반도 평화와 국민통합을 기원하는 만인대법회’가 열렸다. 장수 죽림정사는 백용성 조사가 태어난 곳이다.
그는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구한말 불교의 지성화, 대중화, 생활화를 목표로 불교개혁과 국민계몽운동을 전개했다. ‘일하지 않고는 먹지도 말라’며 선농일치를 주창한 실천불교의 선구자이다. 더불어 3·1 독립선언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 중 만해 한용운과 함께 불교 대표로 참가하여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이기도 하다.
백용성 조사는 동학 최제우 선생의 절친이었던, 스승 혜월스님의 “대한정국 800년을 예비하라”는 유훈에 따라 민(民)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만들고자 한평생 매진했다. 독립운동가를 양성하고 그들의 가족을 뒤에서 돕는 일과, 독립운동 자금 마련 등을 수행하다 1940년 입적했다. 독립운동에 애쓴 공을 인정받아 건국공로훈장에 추서됐다.
이날 국민대법회는 백용성스님의 유훈을 계승하고자 ‘평화로운 한반도, 국민이 행복한 사회, 지속가능한 발전’을 핵심가치로 담은 만인평화선언이 선포됐다. 이 행사에서 법문을 전했던 도문 큰스님(조계종 원로스님)은 12세 되던 해에 출가했는데 용성스님으로부터 도문이라는 법명을 받았다고 한다.
도문스님은 용성스님의 손주 상좌(제자)로서 지금까지 스승의 유훈을 계승하고 실현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법륜스님은 그 도문스님의 제자로서, ‘강대국의 종속국이 되지 말고 주인국이 되어라’, ‘대한정국의 주인이 되어 세계평화를 선도하라’는 용성스님의 가르침을 이어 나가고 있다.
글·사진 = 정용식 ㈜헤럴드 상무
정리 = 박준규 기자
ny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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